'우연' 잘 다룬 것이 성공 비결, 폴란드 권영관 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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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잘 다룬 것이 성공 비결, 폴란드 권영관 한인회장
  •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 승인 2016.04.1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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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한국을 빛내는 한인회장들 ②
▲ 2013년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폴란드 한인회의 모범사례를 설명하고있는 권영관 회장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폴란드 선두주자 교포로서 폴란드로 이민하게 된 동기와 초기 생활은?

권영관 폴란드 한인회장은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먼저 ‘우연’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대학 진학의 갈림길에서 전혀 생각을 해오지 않았던 한국외국어대학의 폴란드어과를 선택, 1회 입학생으로 들어가게 됐다. 소련연방에 속해 있던 공산국 폴란드가 해방이 돼 개방정책을 발표하자, 1991년 2월 한국학생으로는 처음으로 유학을 갔다.

서부 경남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물 좋은 하동에서 태어난 권영관 회장은 남강이 흐르는 진주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던 그는 ‘폴란드인의 영혼’이라고 하는 유명한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였던 프레데릭 쇼팽, 지동설의 창시자 코페르니쿠스, 노벨상 수상자 퀴리 부인 등이 모두 폴란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그가 폴란드어과를 택하고 폴란드까지 온 것은 ‘우연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처음 바르샤바에 도착했을 때 폴란드 사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공산 압제에서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분위기 속에 모든 것이 희망적이었습니다. 세찬 변화의 물결을 체험하면서 나의 고향 하동의 벌판같이 유럽의 대평원인 폴란드에서 어렴풋한 나의 미래를 더 뚜렷하게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권영관 회장은 한국외국어대학 폴란드어과 1회 입학생으로서 폴란드어를 더 완벽하게 구사해 모교와 조국에 대해 보람 있는 일을 하는 한국인이 되자는 각오도 하게 됐단다. 마침 한국대기업들이 폴란드로 들어오기 시작해 좋은 기회가 왔다. 삼성전자 폴란드 지점에 입사하게 됐다. 학업을 병행하면서 5년간 근무했다.

“지금은 폴란드의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모습이 많이 변하고 안정됐습니다만, 1990년대 초반은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90년대 말경에 아파트에 도둑이 침입해, 가재도구를 가져갔었습니다. 그 도둑이 세 번이나 침입을 해 결국 이사를 가기도 했습니다. 구입한지 6개월 된 봉고 차량도 백화점에 세워 두었는데, 도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폴란드는 유럽 정상급의 치안상태를 유지하는 나라가 됐다고 말한 권영관 회장은 초기에 고생을 하고나니까 기쁜 일들도 찾아오게 됐다고 회고했다. 삼성전자 지점의 근무를 마치고 개인사업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폴란드어로 된 계약서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폴란드인과 임대차 계약을 성사시키고 돌아오는 새벽이었습니다. 새벽하늘의 별빛이 무척 아름다웠던 기억이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깊이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 2012년 송년모임에서 개회인사를 하는 권영관 회장

한국-폴란드 국교수립은 1989년으로 알고 있는데, 폴란드 한인회의 창립, 발달과정은?

“폴란드 한인회는 1995년 창립됐습니다. 그해 연말 한인 송년모임이 한인회의 결성모임이자 첫 모임이었습니다. 저는 한인회 창립부터 한인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젊은 나이의 저는 결성식 당시 무대설치 보조를 맡았습니다. 1·2·3회 한인회장은 폴란드에 사업상 거주했던 분들이었습니다.”

회장들이 이민자이거나 장기 거주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활동이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인회라는 틀은 유지됐다. 초기에 이룩된 한인회 사업 중 중요한 것은 폴란드 거주 한인들의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공유와 의사소통을 나름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한-폴란드 수교가 있은지 16년, 한인회가 창립된지 6년 쯤 지나자 한인사회도 커지고 장기 거주자, 이민자들도 늘어났습니다. 한인회 개혁론도 나오게 됐습니다. 2005년에는 뜻있는 한인사회지도자들이 모여 한인회를 재창조 하다시피 크게 개혁했습니다. 회장과 임원들을 현지인으로 구성했습니다. 그 개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권영관 회장은 처음에 회원으로 입회해 이사가 됐다. 한인회의 총무, 감사, 부회장을 맡아 열심히 일했다. 폴란드 한글학교 창설에도 참여해 교사로 출발, 사무총장이 돼 발전을 도왔다. 2008년엔 한국 지방자치제 하에서 가장 해외자문위원제를 장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경상북도의 해외자문위원을 맡았다. 2009년부터는 민주평통 자문위원회 폴란드지역 위원이 됐다. 

“저는 2011년 연말 정기총회에서 드디어 투표선거를 통해 한인회 7대 회장으로 선출됐습니다. 8대 회장으로 재임, 4년간 봉직 했습니다. 작년 말 임기 만료로 신임회장이 나왔어야 하는데, 후보자가 없었습니다. 회원들과 임원들이 정관에 따라 입후보자가 없을 경우엔 전임회장이 1년간 더 할 수 있다고 해, 현재 연장 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폴란드 한인회는 2013년 10월 서울서 열린 세계 한인의 날 대회에서 전 세계 한인회 중 우수한인회로 표창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재외동포재단에서 해마다 우수 한인회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방식은 신청서를 내면 재외동포재단에서 서류와 자료심사를 통해 후보 한인회를 선정해 발표합니다. 후보 한인회장들이 나와서 발표를 하면, 한인의 날에 모였던 전 세계 한인회장들이 투표해 선정하는 것입니다. 폴란드 한인회가 우수한인회로 선정돼, KBS방송에 특별 출연해 그 내용을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 권영관 회장은 그 때 한 보고를 다시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제가 한 일 중에서 첫째로 소개로 하고 싶은 것은 폴란드 한인회 공식 홈페이지의 제작입니다. 2011년 개설된 홈페이지는 한인회 관계사항들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폴란드를 소개하는 정보의 산실로 생각하고 제작하고 있는데, 현재 까지 방문자 수가 700만이 넘습니다. 둘째로 폴란드 정착 한인들의 현지화 교육행사로 정보세미나(연 2회), 폴란드어 무료강좌(상·하 반기), 역사문화 탐방(바르샤바 중심)으로 현지 이해와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 실천해 왔습니다.”

권영관 회장은 한국인 폴란드 씨름협회 결성을 돕고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한국 국기원 폴란드 시범단 초청, 한국 국악연주단 초청, 법륜스님 공개강좌 조직, 남성 보컬팀 ‘유엔젤스’초청 송년 모임, 세한 아카데미 입시 설명회 등을 주최했다고 말했다. 한인들이 필요로 하거나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단체의 폴란드 방문도 추진했다고 밝혔다.

“폴란드는 오랜 고난의 역사 가운데 아름다운 예술과 철학을 창조한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압니다. 한국서 이를 배우러 오는 유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한인회는 한인 음악가들의 능력 향상을 도모하고, 한국동포들과 현지인들이 함께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짧은 회장 임기동안 폴란드 한인회를 우수한인회로 만들었는데, 이제 또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요?

“올해 한 해는 덤으로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임으로, 지난 활동 중 부족했던 역할이나 더 필요한 부분에 성심을 다 하고자 합니다. 지난 3월 23일에는 자녀들의 입시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국내 유수의 학원 입시 담당자를 초청, ‘입시설명회’를 개최했습니다. 4월 16일에는 ‘제 2회 바르샤바 역사 문화 탐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권영관 회장은 현재 바르샤바에서 개인사업으로는 산업 재활용과 에너지 사업 분야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천연 항균 탈취제, 소각 후 발생하는 분진물 처리 고화제, 에너지 재활용형 소형 소각로, 절전형 전기 매트, 정수기 등으로 미래 산업에 필요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업화에 몰두 중이다. 무역도 겸하고 있다. 

▲ 제15대 유럽총연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남창규 회장 당선자에게 당선증을 수여하는 권영관 위원장(왼쪽)

그는 유럽한인총연합회(유럽총연)의 상임이사 겸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유럽총연의 발전에 힘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유럽한인들의 경제적인 역량을 결집해 경제적인 발전을 함께 도모하고자 유럽경제인연합회(유경련)창립에도 참여 했다. 유경련 폴란드 지도자로 그 외연의 확장에 힘을 쓰고 있다. 

“저의 가족으로는 아내와 함께 1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큰 딸 혜린은 스위스 로잔에서 호텔 경영학을 수학 중입니다. 아들 성현은 바르샤바 국제학교 중등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때까지 걸어 온 길을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우연의 계기가 많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철학자 ‘이언 해킹’의 말과 같이 ‘우연을 긍정으로 잘 길들여 온 것’이 지난날의 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재외동포신문 김운하 해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