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흔적 없이 사라진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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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흔적 없이 사라진 운전사
  • 이병우 총경리
  • 승인 2015.07.0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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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총경리(상양 국신광전 실업 유한공사)
  10여 년 전에 지인들과 중국 연길(延吉)에 간 적이 있습니다. 도착한 시간이 점심때라 식사를 간단히 하고 현지에 사는 중국 친구(조선족 교포)가 도문(圖們)이라고 하는 북한과 인접한 도시를 가자고 해서 택시를 타고 갔었습니다. 문제는 오후에 출발해서 저녁에는 다시 돌아와야 하는 관계로 가능한 빨리 갔다 와야 한다는 겁니다. 운전기사 말로는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지만 속도를 내면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가 있다고 하더군요. 별로 믿고 싶은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녁 시간까지 돌아오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하니 일단은 택시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이런 종류의 택시는 절대로 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정신이 없더군요. 그야말로 그런 곡예 운전이 없었습니다. 거의 200킬로를 육박하는 속도로 별로 좋지도 않은 고물 택시를 잘도 몰면서 가더군요. 쉽게 말해서, 운전자가 아차 하는 순간이면 제 목숨은 그 걸로 객지에서 끝장이 나는 겁니다. 도착 할 때까지 아무 생각이 안 났습니다. 제발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를 했습니다. 아마 짐짝을 싣고서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달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중국에 살면서 한번도 장거리 택시를 탄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그 때의 긴장했던 순간은 아주 생생합니다. 살아서 돌아 온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중국의 교통질서와 운전자들의 운전 습관은 굉장히 위험하고 불안합니다. 고속도로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역주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겁을 할 노릇입니다. 중국인 특유의 이기적이고 실리적인 사고방식인 겁니다. 잠시만 역주행하면 멀리 있는 다음 톨게이트까지 안 가고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편리한 발상입니다. 더군다나 중국의 고속도로는 비싼 통행료 때문에 오고가는 차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설사 중앙선을 침범하여 사고를 냈다하더라도 결코 자기가 전부 잘못한 것이 아닌 겁니다. 바쁘고 급한 사정 때문에 중앙선을 넘고 있는데 그 걸 못 보고 그냥 와서 박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겁니다. 기가 막힌 발상입니다. 공안(경찰)이 오고 잘잘못을 가려줘도 별로 승복하는 눈치가 아닙니다. 이 또한 중국인들의 속성이고 기질입니다. 죽어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질 않는 겁니다. 이런 황당한 경험을 우리 한국인들은 중국에서 많이 겪었을 겁니다. 웬만하면 좋게 이해하려고 해도 사고를 낸 당사자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하물며 우리 측이 가해자인 경우에는 상상이 안 되는 광경을 봐야 합니다.

  중국을 사랑하고 싶고, 중국인과 친구로서 잘 지내고 싶었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면서 온갖 정이 다 떨어집니다. 저 또한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가 있습니다. 굽어진 고가도로 언덕을 지날 때 맞은편에서 중앙선을 넘은 승용차가 갑자기 돌진해 오는 바람에 급하게 피하려다가 난간을 받은 겁니다. 물론 마주오던 차는 이미 달아나고 없습니다. 여기 저기 몸이 아팠지만 워낙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절절 매니까 택시 기사가 100위안을 던져주면서 다른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걸로 끝입니다. 하도 괘씸해서 중국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가 전화를 하더군요. 그때서야 부랴부랴 연락이 오는 겁니다. 급기야는 제 사무실까지 택시 회사의 높은 사람이 찾아와서 통 사정을 하며 합의를 해 달라고 합니다. 괜찮다고 했더니 거의 우격다짐으로 저를 극진하게 모시고(?) 파출소로 가더군요.

  알고 보니 외국인이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당사자가 직접 “나중에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겁니다. 또한 저의 합의를 보증 할 중국 친구도 한 명 와서 연대보증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파출소에 압류된 차를 가져 갈 수가 있는 겁니다. 저는 상대의 극진하고 친절한 배려와 안내를 받으며 이런 절차를 무상으로 마무리 해 주었습니다. 풀죽은 택시기사가 안 된 겁니다. 그런데 저의 서류 작성이 완성되는 순간부터 택시 기사와 회사 관계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더군요.

  중국소설에 나오는 손오공처럼 귀신같이 사라지고 없더란 말입니다. 밖에는 비가 줄줄 오는데 집으로 갈 길은 멀고 우산도 없고, 그래도 약간의 미련이 남아서 그 사람들을 찾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의 효용가치는 이미 다 끝난 겁니다.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택시를 잡으러 걸어가야 하는 제 신세가 한심하더군요. 어쩌겠습니까? 그냥 허허 웃고 말았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사람들은 후련하고 저는 서운했던 겁니다. 그러나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집에 가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최고의 대책입니다.

  엊그제 길림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에서 우리 정부의 공무원들이 타고 가던 버스가 사고가 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보았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저의 지난 날의 안 좋은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뭐라 할까? 외람되지만, 결국은 이런 사고가 언젠가는 한번 정도는 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고나 할까, 그런 겁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나오질 않았지만, 제 소견으로는 과속이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과속하던 버스가 급커브를 만나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어쩌면 우리 측 관광 안내원은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 다음 일정에 차질이 없을 거란 생각도 했을 겁니다. 물론 운전자의 과실이 제일 클 겁니다. 졸지에 변을 당한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면 저도 가슴이 우울해 집니다.

  한편으로는 중국에 오래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중국은 정말로 교통안전이 늘 문제가 되는 곳입니다. 기차와 비행기 일부를 제외하면 일반 버스나 승용차는 위험하고 또 위험한 순간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중국 생활 5년 차 정도가 되면 가능한 비행기보다는 기차를 타는 겁니다. 2시간이면 갈 거리를 굳이 기차를 타고 4시간 가는 데는 그 이유가 다 있는 겁니다. 단체 관광을 가더라도 버스 기사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여야 함은 말 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일정표에 맞추어 바쁘게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운전사에게 운전을 잘 하라고 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조심해서 가라고 팁을 주어야 합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중국은 아직 우리의 생각만큼 안전하지도 않고 질서가 잡힌 사회도 아닙니다. 사고가 나더라도 우리 식으로 처리가 안 되는 곳입니다. 억울하고 답답해도 우리가 중국의 사고 현장에서 취할 방법은 아마 없을 겁니다. 망인(亡人)을 왜 냉동실이 아니고 냉장실에 보관했냐고 백 날 이야기 해 본들, 아마 부질없는 일일 겁니다. 그나마 그런 작은 도시에 냉장 시설이 있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감사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제 경험으로는 더 이상 뭘 기대해서도 안 되고 기대해도 별 소용이 없을 듯합니다. 중국 사람과 중국 정부가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중국이 현재 그런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부디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조속한 마무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