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 칼럼] 한국인의 잠재의식 ‘왕(王)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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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 칼럼] 한국인의 잠재의식 ‘왕(王)질’
  • 신성대 동문선 대표
  • 승인 2015.05.2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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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산 아수라들

  인도에는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귀신을 아수라(阿修羅)라고 부르는데 싸움귀신이다. 하여 교만심과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 죽으면 이 아수라가 사는 세계로 떨어져 영원히 싸움질을 하게 되는데 그곳을 아수라장이라 부른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살인, 자살, 편 가르기, 물어뜯기, 왕(王)질, 쩐(錢)질, 갑(甲)질, 완장(腕章)질이 난무하고 있다.

  한국인의 무의식, 아니 의식에는 봉건적 사고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 같다. 바로 ‘왕질’이다. 역사를 통해 배웠든, 엉터리 사극을 보고 익혔든, 어쨌든 한국인들은 습관적으로 커다란 의자만 봐도 대왕님 폼을 잡고 앉는다. 이 땅에 백백교(百百敎)가 번성하는 것도 교주가 되어 왕질을 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해서 저들만의 ‘왕국’을 세운다고 어마어마한 땅을 사 모아 성전 아닌 궁전을 짓는 것이겠다. 아무렴 왕을 조상으로 두진 않았으니, 분명 천민 콤플렉스에서 생겨난 강박증일 게다.

  하여 한국 드라마에서 회장님은 하나같이 조폭 두목이다. 부하들 시켜 뻑하면 미운 놈 뒷조사 시키고, 잡아 가두어 죽도록 패는가 하면, 무릎 꿇이고 심지어 죽이기를 밥 먹듯 한다. 게다가 한국 남성은 그럴듯한 자리 하나 차지하면 거의 예외 없이 변학도가 된다. 싫다는 여성을 막무가내 ‘제 것’으로 만들겠다며 오기를 부린다. 한국 드라마의 기본 코드가 <성춘향>과 <심순애>다. 이런 가학적인 드라마에 한국인들은 부지불식간에 짐승남이 되어버린다. 아직 봉건 된장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다.

  사람을 물격(物格)으로 보는 한국의 졸부들. 대통령이나 재벌 오너나 왕질에서는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고객은 왕이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아 서민들은 서민들대로 기회만 닿으면 왕질을 하려 든다. 근본이 하인근성이다. 그렇지만 백수의 왕 사자나 호랑이도 함부로 갑질하지 않는다. 과연 옛날 임금님이라고 해서 용상에 쩍 벌리고 앉아 호통 치며 제 눈에 거슬리는 놈은 무조건 잘랐을까?

 
     값싼 수입품 '종복문화'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해방 후 자주 독립을 외쳤지만 진정한 자주정신, 주인정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저 남 따라 경제성장하고 민주화 되면 우리도 주인이 되는 줄 알았다. 해방 후 급속하게 밀려들어온 미8군 양키문화, 저급한 미국대중문화인 LA문화를 보고 따라하다가, 70년대 후반 일본식 친절 굽신 서비스를 별 생각 없이 받아들여 부지불식간에 종복문화가 몸에 배어버렸다. 그 바람에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양반문화는 한복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갑(甲)은 을(乙)이 만든다. 스스로 인격임을 포기하고 물격 내지는 동물격도 마다하지 않는 주변머리 을(乙)들의 종복 하인 근성도 문제다. 아무렴 인간사회에서 갑을 관계가 없을 수는 없다. 다만 갑이면 갑답게 살자는 것이겠다. 다시 말해 갑이면 갑다운 품격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는 말이다. 을 또한 마찬가지다. 비즈니스 협상이라면 상대적 열세를 매너와 품격으로써 극복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갑이 되었을 때 갑질을 하지 않는다.

 

     인간존엄성과 올바른 주인의식

▲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및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
  한국인들은 한자의 인(人)을 사람이라 해석하고 여기에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이 배어있다. 하지만 한문에서 인(人)은 자기가 배제된 타인(他人)을 뜻한다. 자기는 아(我)라 하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아집(我執)이라 한다. 따라서 인간(人間)이니 인문(人文)이니 하는 것도 모두 사람, 즉 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인권 역시 개인이 ‘독립된 개체’로서 요구하는 권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인정해 주는 권리이다.

  한국의 ‘갑질’문화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그 개선에 지대한 공을 세운 ‘땅콩 리턴’ 사건의 조현아 전 대한항공부사장이 143일 만에 풀려났다고 한다. ‘반성’이란 상투적인 변명 대신 ‘인간존엄성’에 대한 깨우침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신의 존엄을 위해서 말이다.
 
  인격(人格)은 동격(同格)이다. 월급 받는 ‘쟁이’라 하여 스스로 비하시켜 무릎 꿇을 이유 또한 없다. 난동부리는 제 회사 부사장이 아니라 회장도 끌어내리기 위해 리턴 시키는 사무장이 나와야 대한민국의 품격이 바로 선다. 인격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지 갑(甲)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인장으로서 행동하는 것을 민주(民主)라 한다. 당연히 주인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