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맞춤법과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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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맞춤법과 제국주의
  • 김제완
  • 승인 2004.04.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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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 이번에 프랑스 칸영화제에 갔다왔지요?
리포터 : 예 지난주에 깐느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아나운서 : 그리고 파리의 센강을 무대로 한국영화 촬영이 있었다죠?
리포터 : 돌아오는 길에 빠리의 쎄느강에도 갔는데요...

지난 봄  TV를 시청하다가 위와 같은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방송국의 아나운서는 칸영화제, 파리, 센강이라고 발음하고 있다. 이에 반해 리포터는 깐느영화제, 빠리, 쎄느강등 프랑스어의 발음대로 말을 하고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

국립국어연구원의 홈페이지에는 외래어표기법을 검색하는 기능이 보인다. 예를 들어 '센강'을 검색 칸에 넣으면 친절하게도 다음과 같이 정답과 오답이 예시된다. "센 강(O), 쎈 강(X), 세느 강(X), 쎄느 강(X)"
센강이 맞고 쎄느강이 틀리다고 OX로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역시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외래어표기법을 충실히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은 '어리석은 백성을 어여삐 여겨'  600년전에 한글을 창제했다. 과학적인 원리에 표현영역이 넓은 한글은 외국의 언어학자들에게도 우수한 언어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후예들이 만든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외래어 표기법은 도무지 기준이 무엇인지 알수 없는 등 문제투성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때문에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보다도  현지어와 한국어의 이중언어권에서 생활하는 재외동포들이 이 문제로 인한 혼란을 고스란히 겪고 있다.

그렇다면 도무지 무엇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언어학적 전문지식을 동원해 논리를 펼칠 능력은 없지만 기자의 경험에 비추어 프랑스어와 한글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마디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맞춤법에 규정된 칸영화제 센강 파리라는 말은 어느 나라 말인가. 프랑스사람이 하는 발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바로 미국인이 프랑스에 와서 하는 발음이다. 프랑스어를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 우리의 맞춤법이다. 힘이 센 나라의 언어가 약한 나라 언어표기를 지배하고 있는 격이다. 그러니 언어표기에도 제국주의 지배논리가 관철돼 있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영어에 맞서 자국어를 보호하기 위해 불어보호법을 제정해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사람들이 한국에서 불어가 영어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진다. 

기자는 프랑스에서 10년이상 동포신문을 펴내면서 줄곧 파리가 아닌 빠리라고 표기해왔다. 그런데 재외동포신문에는 파리라고 표기한다. 맞춤법통일안이라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의의 조언에 굴복한 것이다.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에 밀려났다.

지난 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했을 당시에 중국전문가인 리영희선생은 모택동대신에 마오쩌뚱, 주은래 대신에 주언라이라고 그의 글에 표기했다.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이어서 독자들이 어색해하고 불편을 겪었으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정착이 됐다. 외래어표기법도 뒤쫒아왔다. 이같은 사례에서 보듯 한글맞춤법도 사용자들이 나서서 올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맞춤법통일안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는 교육부 산하의 국립국어연구원이다. 이 국어연구원에서도 젊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전해진다. 최근 들어 미얀마어의 표기법이 합리적으로 바꾸는등  제국주의적 관례에 따른 불합리한 표기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재외동포들이 이에 힘을 보태준다면 곧 잘못된 규정들을 쉽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표준어는 당대의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교양있는 재외동포들이 한글맞춤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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