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특집대담>재일 '고향의 집' 윤기 이사장으로부터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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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특집대담>재일 '고향의 집' 윤기 이사장으로부터 듣는다
  • 이계송 편집위원
  • 승인 2014.08.1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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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교착상태 민간외교로 풀어야...!"

▲윤기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집' 이사장
△한일간 외교관계가 갈수록 불편해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일본이 변해야 합니다. 한쪽은 일본 식민통치에 대해서 잘 가르쳤고 한쪽은 안 가르쳤습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 진주만(Pearl Harbor)를 견학시키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진주만을 폭격하고 전쟁을 일으킨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의 피해만 생각하고 비핵 3원칙(핵의 소유, 사용, 제조 반대)을 주장한 사도에이사쿠( 佐藤栄作) 총리는 노벨평화상을 받습니다. 어느 날 오사카 지하철에서 내려 처갓집으로 걸어가는데 목욕탕에서 나오던 할머니 두 분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그 전쟁에 진 것은 정말로 잘 된 일이었지..." 평화롭고 자유로운 사회가 된 지금 그 전쟁에 패한 것이 잘 됐다는 소박한 국민들의 마음을 지도자들이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이 어려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요즘 한일관계가 이렇게 되니 저 같은 사람에게도 묻고 있습니다. 침략당한 역사 그것을 이용하는 미국과의 관계입니다. 한국에서 보면 '왜 속 시원하게 독일처럼 사과를 못하는가'가 일본에서 보면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만이 있어요. 중요한 것은 서로를 아는 것입니다 .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잘 모르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잘못 이해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비슷하지 않습니다" 이런 인식이 필요합니다.

전쟁을 하지 말자는 큰 틀의 대화와 사과의 형태가 문제입니다. 정상이 방문하고 환영하는 자리에서 마지못해 한마디 하는 형식적인 사과였습니다. 일반 국민은 언제 사과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일본 국민을 향해서 반성하는 사과가 없었어요.

또 1965년 일본은 한국과 국교정상회의를 할 때 이 지역에서 다시는 전쟁을 하지말자는 큰 틀의 대화가 없었습니다. 얼마를 배상하면 될까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한중일의 아시아 공생구상이 거론되어야 합니다. 아베총리가 소리 높이는 강한 일본은 좋으나 무엇을 위해 강한 일본인가가 설명이 없어요. 이해는 되지만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80년대 교과서문제가 나왔을 때 중국에서는 크게 문제 삼았고 이에 일본은 깜짝 놀랐습니다. 중의원 의원(하라다 겐)으로 요직을 맡았던 분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만주) 진출로 알고 있는데 너의 생각은 어떤가!"

"왜 의원님은 진출로 생각하십니까?"

"그 당시에 만주까지 일본 땅이라고 노래를 불렀었지."

"그렇게 생각하시면 큰일납니다. 대동아평화를 위한 구실을 붙였지만 그것은 침략이었습니다. 남의 땅 차지하려고 나선 도둑질로 아시아인은 보고 있습니다."

"윤 군이 그렇다면 윤군 말이 맞겠지."하면서 이해를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진군 또 진군이라 배웠었지."

옛날에 5족협화 동근동조(五族協和 同根同祖)라는 말이 있었다고 어머니에게 들었습니다. 동근동조(同根同祖)는 같은 뿌리에 같은 조상이라는 뜻이죠. 일본사람들이 내선일체를 내세우고 한국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할 것을 권할 때 이 말을 자주 사용했다고 말했어요.

또 5족협화(5族協和)라는 말도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일본, 조선, 만주, 중국, 몽골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5족이 뜻을 같이하고 같이 번영을 누리며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일본인도 많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에 그때 일본이 군국주의가 아니고 진정으로 5족의 행복을 갈망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역사가 오늘과 같이 흘러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은 그렇게 가지 않고 군림하기를 원했습니다. 명치(明治)시대로부터 부풀어 오른 일본의 간덩이가 군국주의로 치솟아 분수를 모르고 아시아를 통째로 삼키려는 비극을 초래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역사지만 적어도 어른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역사란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것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이 중요하지요...! 한중일 공동교과서를 만들어 대학과정에서 가르치자고 저의 스승이 제안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어떻게 조상이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고 가르칠 수 있겠어요? 대학과정에서 한중일 공동 교과서를 만들어 남경학살에 대해 중국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이렇게 보고, 일본은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관심을 가지고 연구도 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한일간에 역사를 생각하는 현인들의 모임 같은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어머니 윤학자(타우지치즈꼬 田内千鶴子 )를 한국인이 존경한 것은 겸손한 사죄였습니다.

△일본을 좀 더 이해하려면 어떤 점을 알아야 하나요?

▲'세계의 상식이 일본에서는 비상식이 되고 일본의 상식이 세계에 나가면 비상식이 된다'는 유행어를 평론가 다게무라 겐이치(竹村健一)씨는 만들었어요. 일본을 세계의 상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일본인을 이해하려면 말로 표현 안하는 부분을 ‘표정’으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일본인의 ‘미소(친절)'를 마음으로 받아서는 안 됩니다.

딸에게 친구들은 어떻게 프러포즈 하냐고 물었더니 ‘말로 안 해요 눈으로 해요’라고 합디다. 이게 일본인입니다. 이런 일본인의 습관은 1400년전 백제와 교류가 풍성했던 성덕태자(聖徳太子)의 '和(협동정신)'를 가지고 귀한 일을 한다(和をもって貴しとなす)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 '和'의 정신이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yes or no가 분명치 않는 독특한 문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강연도 하고 일본을 알고 있지만 관청에 갈 때 아내나 딸을 동반합니다. 관리들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어 통역이 필요합니다.

△명치정부가 구미열강에 배워야 한다고 파견한 이와쿠라(岩倉)사절단이 일본 역사를 바꾼 계기가 되었는데요?

▲일본이 유럽을 배우기 위해 50여 명을 파견한 이와쿠라 사절단은 참가단의 면면과 규모를 통해 볼 때 얼마나 의지가 강렬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간입니다. 사절단의 기간으로 세계최장의 기록일겁니다. 1년 6개월 기간이었어요.

둘째는 코스입니다. 요꼬하마 항에서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 미국 동부 워싱턴, 거기서 대서양을 건너 유럽을 폭넓게 보고 듣고 온 것을 보면 생략이 없습니다. 나라가 잘 살고 군대를 강하게 하는 부국강병의 길 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귀국합니다. 일본을 개화하는데 획기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또 유럽 도시마다 교회가 있는 것을 보고 전국의 신사를 정비하고, 도시에 신사를 상징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통역으로 참가했던 니이지마(新島襄)씨는 후에 동지사대학을 세운 분입니다.

부국강병을 강조한 나머지 복지는 적당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으로 사절단이 제도는 보면서 문화를 보지 못하고 왔다고 아베시로(阿部志郎 가나가와 현립 보건복지대학 명예학장)씨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럽사회의 핵심이 기독교 정신인데 이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겁니다.

△일본은 종교문화가 아주 독특합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정치적 현안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일본인의 생활에서 신사는 생활속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종교관을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이고 야스쿠니신사 반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고 연말연시에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복 달라고 사업을 번창하게 해 달라고 빌러 가는 곳 입니다.

800만개의 신이 있는 나라입니다. 집집마다 불당이 있어 조상을 모시고 삽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다 신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한센병 병원 준공식에 참석한 사사가와 료이치(笹川良一)선생과 아침을 하는 자리였어요. 식사기도 하려고 머리를 숙였어요.

"너는 크리스찬이냐?"

"예!"

"나는 크리스찬에게는 기부를 안하지!"

놀란 저는 왜 그러냐고 물었어요.

"그 친구들 바보들이야! 일본사람 아니야. 반대만 하고 있어!"

"뭘 반대하고 있는 가요?"

"히노마루(국기), 기미가요(국가), 야스쿠니를 반대하고 있지...!"

선생은 당시 선박진흥회 회장으로 의료, 복지, 체육 분야에 일천억대를 매년 기부하는 실력자였습니다. 세계적인 봉사활동을 하셔서 제네바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앞에 선생의 동상도 세워진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까지 신칸센을 놓아 주어 일본인으로 미국에 사죄한 분으로 알고 있는데, 사죄와 화해는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리스찬이 국기, 국가, 국립묘지 반대를 하지 않습니다. 야스쿠니만은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일본에서 타 종교를 배려하여 선택의 자유를 허락해야 합니다. 국립묘지를 만들면 크리스찬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겁니다"라고 단숨에 말을 했어요.

순간 "그럼 나도 한국의 크리스찬이 될까?"라고 말씀하셔서 일행은 웃었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대부분 착하지 않습니까?

역에 내려 택시를 타려고 손을 들면 택시 기사가 고개를 뒤로 흔들어요. 그쪽으로 보면 손님들이 줄을 서고 있어요. 택시 기사도 손을 든 나를 태우면 기다리지 않아 좋을법한데 그렇게 하지 않아요. 줄을 잘 서서 감동합니다.

큰 재해에도 일본인의 대처는 실로 놀랍습니다. 주로 재해지역에는 폭동 등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재산을 잃지요. 그러나 일본의 재해지역(고베 대지진이나 동일본 대지진)에는 범죄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질서정연한 피난, 질서유지, 폭력은 물론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도 볼 수 없어요.

고베지진 때 오사카에 본사를 둔 신한은행 설립자이며 관서흥은의 회장 이희건씨는 빠르게 구조활동을 했습니다. 보증, 서류, 도장도 없는 피해지역 사람들에게 이름과 주소만 기록하게 하고 한 가족에 10만엔(약 1000불)씩을 긴급융자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융자를 해갔습니다. 대담한 결정에 직원들은 놀랐습니다. 안 갚으면 은행은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이회장은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반대로 고마웠다는 편지와 함께 답례 저금을 수백억엔이나 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지갑이나 잃어버린 물건들이 돌아오는 신뢰 사회입니다. 거품경제 때 집값이 6천만엔 하던 것이 2천만엔으로 하락해도 누구도 정부시책에 항의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입니다.

국민의식이 높아진 한국도 이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커져야할 것 같아요. 더이상 식민지 조선이 아닙니다. 6.25전쟁으로 500만이 남한으로 피난 내려와 살던 판자촌의 나라가 아닙니다. 가난해서 원조 받던 나라가 아닙니다. 미꾸라지가 용이 된 나라라고 한국인도 표현하고 지금의 발전에 감격할 때가 많습니다. 세계 10위 경제나라가 되었습니다. 소니를 포함한 일본의 전자회사 10개가 낸 이익을 합한 것보다 삼성전자 한 회사가 낸 이익이 더 많습니다. 한류 쇼크도 아주 큽니다.

△그런데 요즈음 일본인들은 옛 일본인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명치시대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국민이 존경할 만한 지도자들이 많았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영원한 영웅 사카모도 료마(坂本龍馬)라든지 매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전후 교육제도가 바뀌고 생활이 윤택하게 돼서 젊은이들의 기백이 없어졌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베지진이 났을 때 젊은이들은 놀랄 정도로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일본의 혼 야마도다마시(大和魂)는 죽지 않고 잠자고 있다가 비상 시국엔 깨어났습니다.

일본은 관료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후꾸다 다께오(福田武夫)라는 분이 외무장관을 오래 하셨습니다. 세계를 돌면 모두가 일본을 경제적 동물이라고 비난을 해서 총리가 된 후꾸다씨는 총리관저로 국장들을 불러 평화기금 1000억엔 조성을 하겠다는 뜻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국장들이 반대 했다고 합니다. 총리의 지시를 반대하는 국장들이 어떤 기준에서 반대했느냐고 물었을 때 “국민의 세금을 정치가의 인기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대답에 압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 관료문화는 지금도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총리가 각 부처 국장급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장관도 안합니다. 내려오는 관례와 순서가 있기 때문이며 이것을 정치인이 건드리면 공무원은 협조를 안 합니다. 일본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정권을 잡았으나 실패한 것은 공무원을 무시하고 정치주도를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료문화를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이 얼마나 알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문화적인 측면이지요. 일반 용어로 ‘사죄’ 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가톨릭신자는 신부에게 1년에 한번은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고백 합니다. 기독교의 출발은 죄인임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없습니다.

일본에서 충과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있습니다. 아코오로시의 (赤穂浪士)오이시 구라노스게(大石蔵助)가 억울하게 자결(셋부쿠切腹)당한 영주(殿様)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옛 동지들과 함께 심야에 기라기즈에(吉良義央)의 집에 쳐들어가 그와 부하들을 살해하고 47인의 무사들 전원이 스스로 자결한(1703年 1月 30日) 스토리는 연말연시 TV방송의 테마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작가 미시마 유끼오의 자결이나 47인 무사들의 자결을 '일본인의 미'라고 보고 있습니다. 반대로 죄를 인정 안하는 문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베의 인기가 요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높다고 하죠?

연합군사령부가 주도한 '도쿄재판’을 승전국의 입장에서 한 재판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본인의 입장에서 다시 정리하자는 것이 아베총리의 생각입니다. '대동아 전쟁은 잘못된 것이고 전범도 나쁜 사람으로 되어 있는데, 대동아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없어서 일으킨 전쟁인데 그것이 어떻게 잘못인가. 전범도 뭐가 나쁘냐. 우리가 아시아를 위해 했는데 이걸 인정 해달라. 그래야 일본 역사가 계속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지만 ‘진짜 우익은 나라가 크면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 국민이 나쁜 짓 하는 것도 있고, 깨끗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대국이다. 일본이 큰 나라라면 과거에 잘못한 것도 있을 수 있고, 그럴 수도 있다고 대범하게 사과해라. 잘못된 것이 있으면 상대방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사과해라. 일본을 소국으로 만드는 일을 하지 말라’ 라며 진짜 우익의 논객들은 아베총리를 공격하고 있어요.

'위안부도 사실 아니냐. 사실이니까 지나친 일본인이 있을 수 있고, 모자란 일본인도 있을 수 있다. 잘못했다고 하면 된다’라고 진짜 우익은 생각하고 있어요. 아베총리의 할아버지 기시 전 총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한국에 잘못했다 하여 특사까지 파견한 것은 유명합니다. 일한협력회라는 것을 조직하여 양국의 우호에 앞장 서 온 분입니다.

가나야마 대사는 주한일본국 대사로 부임하여 삼일절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놓고 대사관은 "일본을 비난하는 행사에 일본대사가 참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한국정부 주도의 행사에 서울시내 외교관이 다 모이는 행사에 불참하는 것은 대사의 임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일본을 어떻게 비난하는가를 아는 것이 대사의 임무다”‘라고 강조하고 참석했답니다.

며칠 후 정일권 국무총리와 가나야마 대사가 차를 마시는 장소에 저도 동석했었어요. 정 총리는 ‘가나야마 대사가 맨 앞에 앉아있는데 일본을 비난하는 기념사를 하면서 미안했다’라고 하셨어요. 가나야마 대사는 ‘조선총독부가 잘못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앞으로 좋아지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하셨어요. 두분은 인간적인 대화로 아주 어려운 문제를 솔직한 마음으로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살고 있는 일본 동네에서 택시를 타니까, 나를 알아보고 "손님은 신사참배 싫어하지요. 저는 찬성합니다” "당연히 일본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이니 총리가 참배해야죠. 하지만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반대하는 이유가 있어요. 한국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을 때 신사참배를 강요했었어요. 한국 국민들의 아픔을 모르죠. 안 가르쳤으니, 당신도 모르고 있겠지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참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도 보통국가로 만들려면 국립묘지를 만들면 돼요” "그런 일이 있었나요?”라고 해요.

그렇게 갈망했던 유럽 따라잡기를 한 결과, 80년대 일본은 유럽과 미국을 능가하지 않습니까?

▲‘경제적 동물’이라는 굴욕을 감수했어요. 많은 일본인들은 왜 경제적 동물이라 하는지 이해를 못하더군요. 실지로 국민들은 근면하고 절약하며 낭비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경제대국이 되어보니 행복한가 하면 행복하지 않았지요. 인간은 돈으로 만족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경제와 만족을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옛날부터 중국이나 한반도의 문화를 받아 모방하여 더 좋게 개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을 우러러보고 모방하여 왔는데 막상 선두에 서고 보니 앞이 안 보이는 겁니다. 선도주자가 있을 때는 그 목표를 보고 달려왔는데 목표가 사라져버리니 그만 방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다 버블경제로 붕괴 되었어요.

한마디로 버블경제라 하지만 은행으로부터 융자받아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사업의 규모를 늘린 사람은 늘린 만큼 아니 그 세배, 다섯배의 부채를 안고 도산을 했어요. 12억 5000엔에 구입했는데 3억엔도 못 받을 정도로 하락을 했어요. 자기책임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아무튼 한일 양국간 보이지 않은 다리 역할을 계속하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한국의 역사가 일본 고대사회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 오사카, 나라, 교토, 고베지역에 재일한국 동포들의 절반이 살고 있습니다. 해방 후에 일본이 차별을 한 그룹 중에는 백정이라 불리는 마을 출신자들과 한센병 환자들 그리고 재일동포들입니다.

한일수교 50년을 맞는 두 나라 관계에서 화해, 평화, 공생의 길로 가야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운 시대를 극복한 '재일한국인 복지연구'입니다. 재일동포가 일본사회에 공헌한 부분도 많습니다. 일본의 사회질서 유지에도 공헌하고 있지요. 재일동포들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국제화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재일동포들이 세계 평화공생에 이바지 하는 일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기여한 점도 많습니다. 갖은 모멸과 고통 가운데 살아오신 분들이지만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서 새마을 사업을, 88올림픽 때는 100억엔이 넘는 돈을 모아 협력을 하셨지요. IMF때는 한국으로 송금하는 등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한 분들입니다. 일본의 재산가 20명 가운데 한국계 기업가가 상당히 많은 것도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일본이 잘사는 나라라고 재일동포 모두가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도 많이 있지요. 저는 재일동포 고독사를 계기로 한국말을 하며 김치도 먹고 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 그런 양로원을 일본에 만들어야 한다고 제창했습니다.

재일한국 고령자분들에게 “오랫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안심하고 이곳에서 편히 즐겁게 지내십시요”라는 마음을 가진 일본인들이 모여 한국인 노인홈 '고향의 집' 만드는 일을 시작해서 30년이 되었습니다. 일본인의 양심이 모였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여 했습니다.

△UN에 <세계 고아의 날>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제 전문은 사회복지요, 관심은 한일 관계입니다. 아버지는 6.25때 고아들 식량을 구하러 나섰다가 행방불명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많이 고생하셨지요. 56세에 돌아가셔서 제가 공생원을 맡은 것이 제 나이 26세 때였습니다. 그런 부모를 가졌다고 해서 각별하게 인간애가 투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어 가는 사이에 공생주의 철학을 철저하게 몸에 익혀야만 되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장한 아이들에게 자립의 길을 열어 주겠다고 서울 소년소녀 직업훈련원을 서울시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면서 거기서 얻은 경험으로 암사동 직업훈련원 그리고 상계동의 직업훈련원을 건립하기까지 값진 경험을 쌓았습니다. 일본에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노인홈 '고향의 집'을 만들기까지의 노력과 온갖 고초는 감히 후세에 전할 만한 공생주의 실천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21세기 사람들의 화두는 더불어 같이 살자는 말로 집약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싸우지 말고 같이 살아가자는 생각은 전인류가 공감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공생원이라는 간판이 인류의 내일을 상징하는 공생의 본거지로 해석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요?

유엔에 세계 고아의 날을 재정하는 것도, 일본 전국에 '고향의 집'을 만드는 것도 공생주의의 실천입니다. 일본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 예를 들면 고령인구 증가, 인구감소, 재정의 부채증감 등을 해결하는 키워드도 공생주의에 있다고 봅니다. 일본이 변해야 합니다
.

▲<윤기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이사장은?>

-1989년 오사카 인근 사카이시에 처음으로 ‘고향의 집’을 열었다. 현재 사카이, 오사카, 고베, 교토 등 4곳에 재일동포 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운영하여 320여명이 도움을 받고 있다. 지금은 도쿄를 비롯 일본 주요도시에 10개의 노인홈을 추진하고 있다.

윤 이사장의 이런 실천은 일본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아 국제교류기금, 일본재단 마이니치신문사와 일본 외무성 표창, 사카이시가 제정한 평화공헌 대상을 받은바 있으며, 한국에서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설립한 호암재단 사회봉사상(2006), 대한민국정부의 동백장, 재일한국인양로원 만드는회 대표로 KBS해외동포상을 수상한 바가 있으며, 모교 강남대학에서 명예사회복지학 박사 그리고 고향 목포시로부터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다.

어머니 윤학자는 대한민국문화훈장 국민장, 일본정부로부터 남수포상과 훈5등 보관장을 받으셨다. 윤학자의 장례식은 1968년 목포시 최초의 시민장으로 엄수되었다. 윤기 이사장은 현재 한국 숭실공생복지재단 명예회장과 일본 '마음의가족'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세계 고아의 날을 만들고자 2012년 10월 윤학자 여사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유엔 세계 고아의 날(UN World OrphansDay)’ 제정 추진을 선언했다.

2014년 10월 26일부터 10월 31일까지 도쿄와 서울에서 고아에 관한 '세계 하이레벨 회의'를 개최하여 도쿄와 서울 선언을 발표하고 이를 토대로 2015년에 뉴욕에서 유엔 세계 고아의날 제정을 위한 포럼 및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윤기 이사장은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일생을 바친 모친 윤학자의 탄신일(10월31일)을 ‘유엔 세계고아의 날’로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2년 윤학자 여사 탄생 100주년 기념 고아의 날 제정 청원 결의문엔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은 모두 고아입니다. 어려서 되느냐 어른이 되어서 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대담 : 이계송 본지 해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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