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사건’과 ‘연평도사건’이후 현지 한인회와 한국의 모 유명여행사가 북한식당 출입 거부 캠페인을 벌인 적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별다른 효과는 거두지 못한 듯 싶었다.
5백 여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이 대형식당에서는 오늘도 북한식당의 젊고 예쁜 종업원들의 화려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멋진 노래솜씨에 춤과 바이올린 솜씨까지 쉴새 없이 이어지는 퍼포먼스에 관광객 대부분은 넋을 잃고,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일부 관광객은 스마트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녀들이 공연을 펼치는 무대 뒤에 TV모니터가 보였다. 놀랍게도 대부분 우리나라 삼성전자 제품이다. 예전에 기자가 프놈펜에 있는 한 북한식당 종업원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여기 설치된 TV가 남한에서 생산되는 제품인 줄 아냐?"는 기자의 우문(愚問)에 그 종업원 여성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일본이 만든 전자제품보다 우리 동포들이 만든 제품이 더 좋지 않습니까?"라며 예상치 못한 현답(賢答)을 건네준 적이 있다. 보기좋게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개업 당시는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던 식당이었다. 북한여성의 얼굴이 그려진 식당광고판도 조잡한 수준이었고, 식당측도 직접 영업홍보에 나서지 않는 눈치였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대문마저 굳게 닫혀 있어 도무지 식당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때로는 음산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현지인들도 이곳에 북한식당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저 대로변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찾는 배낭족이나 개인여행객들이 거의 손님의 전부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씨엠립 현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던 한국인 사장이 '평양랭면관'간판이 걸린 그 북한식당을 우연히 방문했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손님들에게 끼니때마다 거의 비슷한 메뉴를 대접하기 힘들던 터라,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평양냉면을 손님들에게 제공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지금은 한국관광객 수만 연간 40만명 이상이 몰려들어 성업중인 한식당만해도 5~60개가 넘지만, 당시에는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여행사 사장은 처음 찾아간 북한식당이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북한사람을 만난다는 사실 때문에 불쑥 겁부터 났다고 한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한국인 단체손님들을 받아줄 수 있느냐고 북한식당 책임자에게 즉석제안을 했다.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북한식당 책임자는 호의적이기까지 했다. 내친 김에 단체손님들을 데려 오는 만큼 가격을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그 북한식당 책임자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한 말이 당시로서는 충격이었다고 그 사장은 훗날 전했다.
"단체손님들이 들어오면 당연히 우리들도 일을 더 많이 해야 하고 준비도 그만큼 더 많이 해야 하는데 힘든 만큼 음식가격을 더 올리면 올렸지 어떻게 내릴 수가 있습네까?"
사회주의 속성을 이해 못한 한국인 여행사 사장이나, 자본주의를 이해 못한 북한식당 책임자 둘 다 할 말을 잃고 그날은 건성으로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그 북한식당이 개업휴점 상태로 6개월 정도를 더 끌더니, 결국 식당 책임자가 제 발로 여행사를 찾아와 단체손님 음식가격을 협상하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기대했던 만큼 가격협상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결국 체제차이로 벌어졌던 웃지못할 해프닝이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이다.
이후 입소문을 타고 다른 한국계 여행사들도 손님들을 데리고 그 '랭면'집을 찾기 시작했고 그 '해프닝'이 요즈음엔 이 지역의 북한식당들이 한국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코스가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거의 3년만에 찾은 이 북한식당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기자의 눈을 잡아 끈 것은 식당 한쪽 벽면에 걸린 액자였다. 시하누크 전 국왕과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는데, 아마 국왕이 생일축하공연을 마치고 왕궁 내에서 함께 찍은 기념촬영사진이 아닌가 짐작이 갔다. (참고로, 지난 2012년 10월 15일, 세상을 떠난 노로돔 시하누크 캄보디아 국왕은 과거 70년대 망명시절 김일성 주석의 도움을 받아 북한에서 생활할 만큼, 북한과는 오랫동안 친분관계가 돈독했던 국왕이었다. 생전 그는 생일 때마다 종종 이 북한식당종업원들을 왕궁으로 초대해서 축하공연을 펼치게 하고 답례로 선물도 나눠주곤 했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 라는 북한식 억양이 섞인 여종업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를 떴다.
캄보디아관광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캄보디아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가 무려 42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관광객 중 상당수가 이 식당을 찾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진 날에도 북한이 다시 미사일을 쏘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북한식 감성 마케팅(?)이 적어도 북한식당 안에서 만큼은 남한에서 온 손님들에게 확실히 먹혀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그런 하루였다.
고국에도 봄은 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