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캄보디아 북한식당의 별난 음식값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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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캄보디아 북한식당의 별난 음식값 계산법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3.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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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씨엠립 북한'랭면'집에 가다

▲ 씨엠립 북한식당 ‘평양랭면관’ 공연모습.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여성들은 북한에서도 소위 ‘출신성분’이 좋고, 예능에도 재능이 있는 젊은 여성들로만 선발되었다고 전한다.
오늘도 저녁시간대가 되자, 어김없이 대형관광버스들이 씨엠립 시내에 위치한 북한식당 앞 주차장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한국관광객들이었다.

‘천안함사건’과 ‘연평도사건’이후 현지 한인회와 한국의 모 유명여행사가 북한식당 출입 거부 캠페인을 벌인 적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별다른 효과는 거두지 못한 듯 싶었다.

5백 여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이 대형식당에서는 오늘도 북한식당의 젊고 예쁜 종업원들의 화려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멋진 노래솜씨에 춤과 바이올린 솜씨까지 쉴새 없이 이어지는 퍼포먼스에 관광객 대부분은 넋을 잃고,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일부 관광객은 스마트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녀들이 공연을 펼치는 무대 뒤에 TV모니터가 보였다. 놀랍게도 대부분 우리나라 삼성전자 제품이다. 예전에 기자가 프놈펜에 있는 한 북한식당 종업원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여기 설치된 TV가 남한에서 생산되는 제품인 줄 아냐?"는 기자의 우문(愚問)에 그 종업원 여성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일본이 만든 전자제품보다 우리 동포들이 만든 제품이 더 좋지 않습니까?"라며 예상치 못한 현답(賢答)을 건네준 적이 있다. 보기좋게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 수도 프놈펜에 있는 김일성 대원수 거리. 과거 북한과 캄보디아는 ‘형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외교적으로 매우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었다. 2년전 세상을 떠난 노로돔 시하누크국왕은 북한 김일성주석의 도움으로 평양인근에 ‘장수원’이라 이름 붙여진 전용별장에서 산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97년 훈센총리의 쿠데타 이후 최근에 이나라 정부가 북한보다는 남한과 경제적 지원과 협력을 바탕으로 더 친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캄보디아 북한식당이 처음 문을 연 것은 지난 2003년경이다. 지금 북한식당이 있는 씨엠립 시내는 어느새 호텔들이 빼꼭히 들어서 시내중심지가 되어 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주변은 들판과 공터로 휑한 도로변에 북한식당이 위치해 있었다. 식당 초입은 비포장길이라 비만 오면 질퍽거려 들어가기조차 망설여지는 불편한 곳이었다.

게다가 개업 당시는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던 식당이었다. 북한여성의 얼굴이 그려진 식당광고판도 조잡한 수준이었고, 식당측도 직접 영업홍보에 나서지 않는 눈치였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대문마저 굳게 닫혀 있어 도무지 식당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때로는 음산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현지인들도 이곳에 북한식당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저 대로변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찾는 배낭족이나 개인여행객들이 거의 손님의 전부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 이 곳 북한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생활은 개인외출이 불가능할 만큼 우리의 예상처럼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매일 3~4번 펼치는 반복되는 공연과 손님접대는 육체적으로도 감당하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캄보디아에서 생활하는 게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북한여성은 “고국에 빨리 가서 부모, 형제들을 보고 싶습네다”라는 말로 속마음을 대신했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씨엠립 현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던 한국인 사장이 '평양랭면관'간판이 걸린 그 북한식당을 우연히 방문했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손님들에게 끼니때마다 거의 비슷한 메뉴를 대접하기 힘들던 터라,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평양냉면을 손님들에게 제공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지금은 한국관광객 수만 연간 40만명 이상이 몰려들어 성업중인 한식당만해도 5~60개가 넘지만, 당시에는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여행사 사장은 처음 찾아간 북한식당이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북한사람을 만난다는 사실 때문에 불쑥 겁부터 났다고 한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한국인 단체손님들을 받아줄 수 있느냐고 북한식당 책임자에게 즉석제안을 했다.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북한식당 책임자는 호의적이기까지 했다. 내친 김에 단체손님들을 데려 오는 만큼 가격을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그 북한식당 책임자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한 말이 당시로서는 충격이었다고 그 사장은 훗날 전했다.

"단체손님들이 들어오면  당연히 우리들도 일을 더 많이 해야 하고 준비도 그만큼 더 많이 해야 하는데 힘든 만큼 음식가격을 더 올리면 올렸지 어떻게 내릴 수가 있습네까?"

사회주의 속성을 이해 못한 한국인 여행사 사장이나, 자본주의를 이해 못한 북한식당 책임자 둘 다 할 말을 잃고 그날은 건성으로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그 북한식당이 개업휴점 상태로 6개월 정도를 더 끌더니, 결국 식당 책임자가 제 발로 여행사를 찾아와 단체손님 음식가격을 협상하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기대했던 만큼 가격협상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결국 체제차이로 벌어졌던 웃지못할 해프닝이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이다.

이후 입소문을 타고 다른 한국계 여행사들도 손님들을 데리고 그 '랭면'집을 찾기 시작했고  그 '해프닝'이 요즈음엔 이 지역의 북한식당들이 한국관광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코스가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 북한식당에서 판매되고 있는 인민작가들의 작품. 대부분의 북한식당에서는 유명 인민작가들의 작품들과 인삼, 녹용 등 건강식품도 진열해서 파는 등 외화벌이에 앞장서고 있다.
북한이 다소 개방적으로 바뀐 이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당시 상황이 그냥 웃어 넘기기엔 뒷맛이 씁쓸한 ‘에피소드’였다. 10여년 전만해도 북한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와 그 시스템에 대해 얼마나 이해가 부족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인지라 당시 교민사회에서도 이 이야기가 한동안 화제였다고 한다.

거의 3년만에 찾은 이 북한식당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기자의 눈을 잡아 끈 것은 식당 한쪽 벽면에 걸린 액자였다. 시하누크 전 국왕과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는데, 아마 국왕이 생일축하공연을 마치고 왕궁 내에서 함께 찍은 기념촬영사진이 아닌가 짐작이 갔다. (참고로, 지난 2012년 10월 15일, 세상을 떠난 노로돔 시하누크 캄보디아 국왕은 과거 70년대 망명시절 김일성 주석의 도움을 받아 북한에서 생활할 만큼, 북한과는 오랫동안 친분관계가 돈독했던 국왕이었다. 생전 그는 생일 때마다 종종 이 북한식당종업원들을 왕궁으로 초대해서 축하공연을 펼치게 하고 답례로 선물도 나눠주곤 했었다.)

▲ 현지 한인회가 제작 배포한 북한식당 출입 금지 캠페인 스티커의 모습. '천안함사건'과 '연평도포격사건' 발발 당시 재캄보디아한인회와 일부 한인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교민들의 북한식당 출입 자제를 바라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구하기 힘든 자료라는 생각에 무심코 카메라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여종업원 한 명이 기자 앞을 가로 막아섰다. 눈살까지 찌푸리며 그 여성은 "공연 외 사진촬영이 절대 안 된다"고 기자에게 주의를 주었다. 언뜻 보니 낯선 얼굴이었다.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웃던 다른 북한 여성들은 그 사이 3년간 근무를 모두 채우고, 거의 대부분 평양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지금은 새로 온 종업원들로 모두 교체되어 있어서 아는 얼굴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최근에 새로 개업한 평양아리랑식당을 포함해 4곳,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관광지 씨엠립에는 2곳의 북한식당이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캄보디아 북한식당 수가 중국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조금은 민망한 기분으로 자리로 돌아와 나머지 공연을 관광객들 속에 파묻혀 감상했다. 30여분간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진 북한여성들의 공연은 "다시 만나요"라는 제목의 ‘피날레곡’으로 끝났다.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어느 북한식당을 가더라도 늘상 보고 들어온 비슷비슷한 ‘고정 레퍼토리’라서 별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처음 공연을 본 관광객들의 표정은 예상했던 대로 몹시나 감동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 캄보디아 대형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북한 김치. 최근 캄보디아 훈센총리가 북한식당에서 현지 마트에 납품중인 김치를 남한에서 수입한 김치로 착각, TV생방송 연설 도중 "럭키마트에서 한국김치가 진열판매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이렇게 김치를 수입해 먹으면서 정작 왜 우리 캄보디아 음식은 해외로 수출하지 못하느냐"고 정부관료들을 질타하는 내용이 나온 적이 있다.
문득 웃음 속에 가려진 이곳 북한식당 여성들의 진짜 생활모습을 관광객들이 알게 된다면, '과연 지금처럼 웃으며 평양냉면을 즐기고, 감동스럽게 공연까지 감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 라는 북한식 억양이 섞인 여종업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를 떴다.

캄보디아관광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캄보디아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가 무려 42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관광객 중 상당수가 이 식당을 찾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진 날에도 북한이 다시 미사일을 쏘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북한식 감성 마케팅(?)이 적어도 북한식당 안에서 만큼은 남한에서 온 손님들에게 확실히 먹혀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그런 하루였다.

고국에도 봄은 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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