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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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의 문제”
  • 김수영 재외기자
  • 승인 2013.03.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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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손으로 직접 위안부 기림비 세워

미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정부, ‘세계 여성의 날’ 기림비 제막

▲ 버겐카운티 기림비.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미국 현지시간) 미국에 또 하나의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이로써 미국에 세워진 기림비는 모두 4개로, 앞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Palisades Park)와 뉴욕 롱아일랜드, 로스앤젤레스 등 3곳에 한인사회나 한국 지방자치단체 등이 주도해 세운바 있다.

이번 기림비는 ‘일본군 강제 동원 위안부 추모위원회’를 중심으로 버겐카운티(Bergen County) 주민들과 버겐카운티 정부가 공동으로 세운 것으로, 한인사회가 주도한 기존의 기림비와는 달리 미국의 지방정부가 직접 만들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또한, 미국의 지방정부와 의회가 정파를 초월해 건립을 합의했고, 미국 시민들이 자발적인 모금운동을 거쳐 비용을 조달했기 때문에 일본이 개입할 여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림비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 케틀린 도노반 버겐카운티 행정장.

아울러 미국의 카운티 정부와 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정확히 여성 인권의 문제로 이해하고 추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정부는 이날 오후 3시 뉴저지주 해켄색(HACKENSACK)에 있는 카운티 법원 앞 ‘메모리얼 아일랜드’에서 ‘일본군 강제 동원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기림비 제막식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는 빌 파스크렐 뉴저지주 연방 하원의원과 고든 존슨 뉴저지주 하원의원을 비롯해 버겐카운티 프리홀더(Board of Freeholders) 등 미국 정치권 인사와 한인단체 관계자, 중국인회와 필리핀, 유대 단체 등에서도 참석했다.

▲ 버겐카운티 위안부 기림비 앞에서 버겐카운티 행정장과 존 미첼 프리홀더 및 행사 참여자들.

버겐카운티는 기림비 동판에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sexual slavery)로 강요당했던 한국과 중국, 대만, 필리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출신의 수십만 여성과 소녀들을 추모하며”라는 글을 새겼다.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처음 제안했던 존 미첼 프리홀더는 “인권은 미국의 토대다. 위안부 기림비는 버겐카운티 정부의 인권에 대한 강한 의지와 지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오늘은 항상 늘어만 가는 성매매를 멈추는 중요한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캐틀린 도노반 버겐카운티장은 “지난해 10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만난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미국 시민에게 알려도 된다며 흔쾌히 허락했다”고 경과를 설명했다.

▲ 지난해 10월 한국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소재 나눔의 집을 방문한 케틀린 도노반 버겐카운티 행정장과 일행들.

그는 “버겐카운티 위안부 기림비는 우리 커뮤니티에 정말 중요한 것이다. 작년 미첼 프리홀더 의원장이 세계 2차 대전 중 피해를 받은 여러 나라 출신의 위안부를 추모하며 기림비를 세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때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버겐카운티 법원 앞의 5개 기림비가 세워져 있다. 각 기림비와 관련된 커뮤니티들이 기림비들을 세우고 버겐카운티가 지지를 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해 매우 기쁘다”고 답했다.

2007년 연방 하원 결의안 121(위안부 결의안)을 지지했던 빌 파스크렐(민주·8지역구) 연방 하원의원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기림비 제막식을 갖게 돼 의미가 깊다. 기림비를 세운 모든 사람들 특히 시민참여센터에 감사를 표한다”며, “위안부 결의안은 학대를 당한 여성들을 추모하고 있었던 사건을 인정하고 바로 고치기 위한 것이다. 위안부의 비극적인 사건을 당파에 상관없이 모두 인정했다. 인권 이슈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위안부 여성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전 세계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강한 의지와 함께 앞으로도 더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 버겐카운티 위안부 기림비를 소개하고 있는 시민참여센터 김동찬 대표와 행사에 참여한 정치인들.

파스크렐 의원은 지난 해 시민참여센터가 워싱턴 DC 의사당에서 주최한 ‘위안부 결의안 5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해 이용수, 김복동의 생존 위안부 여성 2명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나눴던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데이빗 갠즈 버겐카운티 위원장은 “모든 버겐카운티의 프리홀더들이 버겐카운티 위안부 기림비를 지지한다”며 “우리가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시 되풀이된다. 위안부 사건이야말로 절대로 다시 반복돼서는 안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기림비 위원회를 대표해 시민참여센터 김동찬 대표는 “버겐카운티 기림비를 건립하기 위해 힘쓴 카운티 정부와 모든 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우리는 버겐카운티 법원 앞의 홀로코스트, 아이리시 기근, 아르메니안 학살, 흑인 노예제도를 기억하고 있다. 오늘 약 70년 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희생된 위안부 여성들을 기억한다. 위안부 기림비 위원회는 인권이 유린된 피해자들과 인권 침해 역사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뉴저지 버겐카운티는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사업이 시작된 곳이다. 지난 2009년 시민참여센터가 여름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버겐카운티 법원 앞에 최초의 기림비를 세우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당시 시민참여센터 인턴 학생들이 직접 거리로 나가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주민 2,000여명으로부터 받은 지지서명을 버겐카운티 행정부에 전달했고 마침내 카운티 정부를 설득했다.

그러나 당시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팰리세이드 팍 공립도서관 앞으로 장소를 옮겨 ‘최초의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세웠다. 이후 버겐카운티 시민들이 버겐카운티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버겐카운티 법원 앞 ‘메모리얼 아일랜드’에 설립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 빌 파스크렐 연방 하원의원, 고든 존슨 뉴저지주 하원의원, 버겐카운티 프리홀더들, 그리고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한인들.

메모리얼 아일랜드에는 미국 노예제도로 희생된 흑인 노예피해자와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아르메니안 대학살과 영국정부가 아일랜드에서 저지른 아이리쉬 대기근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한 기림비 등 인권문제를 다룬 다른 4개의 추모비가 설치돼 있는 곳으로 버겐카운티 정부의 인권에 대한 열망과 지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또한 이 기림비는 버겐카운티 프리홀더 위원회(카운티 의회)의 결의안(2012년 12월 통과)을 통해 설립된 것으로 70여개의 타운(시)를 대표하는 버겐카운티 법원 앞에 세워지기 때문에 버겐카운티 소속인 팰팍의 기림비가 70개 타운에 서는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평가다.

팰팍 기림비 건립을 주도했던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이번 기림비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면서 세대를 이어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를 꾸짖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뉴저지=김수영 재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