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재외동포 고난과 상처에 관심 기울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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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 재외동포 고난과 상처에 관심 기울여야
  • 김귀옥 본지 편집위원, 한성대 교수
  • 승인 2012.11.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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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는 18대 대통령선거가 연일 톱뉴스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재외국민 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재외동포들의 오랜 주장과 노력에 의해 한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2012년 4·11총선에 시행되었던 재외국민 실투표율은 2.5%라고 하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수치로 나타났다.

그 결과를 둘러싸고 비관론과 낙관론, 노력 계속론 등이 나왔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난 총선 때 12만여 명보다는 10만 여명이 늘어난 22만여 명이 선거인명부를 작성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추정하는 선거권자인 223만여 명의 10%정도 되는 수치이다. 명부 작성자 전원이 투표하지는 않을 지라도 아마도 이번 대선에서는 지난 총선보다는 좀 더 높은 투표율을 보일 것 같다. 아무튼 현재 수준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없으면 다른 나라의 재외국민 투표율 20~40%대를 올리기란 쉽지 않을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재외국민 투표제를 시행해야 하는 진정한 필요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첫째 이유는 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래로 세계적 탈냉전과 세계화·정보화의 진전은 단위국가의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한 번 해외로 나가면 다시 고국을 밟는 일은 특별한 일로 여겨졌다. 여러 소설가의 소설 제목과 같이,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고 여겨졌다. 최근 들어 정보통신혁명은 자기 나라의 경계를 약화시키고, 세계를 걸쳐 교류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둘째, 선거민주주의의 확대이다. 한국은 1948년 이래로 국내 거주 국민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민의 경제나 교육 활동의 무대나 삶의 현장은 다공간적이고, 영구적이지 않다. 한국민들의 다양한 활동 무대로 인해 국가의 역할도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국내외의 다양한 공간에서 활동하도록 하면서도, 국민적 정체성,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해야한다. 그 일환이 선거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셋째, 선거권과 같은 참정권의 보장은 국내 정치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영주권을 가진 재외동포들에게는 한국 정부는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간헐적으로 한국대사관측이 베푸는 불고기파티와 같은 한국 행사에서 재외동포는 주역이 되기보다 대사관의 행사를 빛내주는 배경으로 취급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진정 자신의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랑하도록 하는 방법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며, 의무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넷째, 더 중요한 문제로는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는 해외국적 재외동포에게도 국가적 대사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의 재외동포 참정권은 어찌 보면 평소에 국내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에 따라 커다란 기금마저 투척해온 재외동포에게 국내 문제에 관심을 가질 기회의 권리를 박탈할 가능성도 있다.

20세기 이래로 한국민들은 일제 강점기와 분단·전쟁의 이유로 한반도를 떠나야 했던 디아스포라 난민이었다. 재일동포로부터 중국, 러시아, 미국 등의 동포 1세대들은 차별과 수탈 속에서 피와 눈물로 번 돈을 해방과 전쟁 복구, 통일과 평화를 위해 투척해왔다. 1970, 80년대 고국을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 왔던 재일동포 유학생들은 수많은 조작 간첩단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고난을 당했다. 본국으로 귀국 후에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치를 떨며, 고국에 대해 고개를 돌렸다. 중국 조선족 역시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모국의 재발견’의 열정은 거듭되는 차별과 사기와 같은 부정적인 사건들에 의해 중국으로의 귀환을 가져왔다.

그런 사이 재외동포들에게 조국은 영광보다는 트라우마를 상징했다. 상당수의 재외동포들은 조국으로 인해 입은 상처를 잊기 위해 한국국적을 저버려야 했다. 재외국민에게 사상 처음 부여된 참정권에 대해 국적을 버려야 했던 재외동포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이 새삼스럽게 참정권을 갖기 위해 한국적을 회복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영주권자의 상당수는 사실상 한국과의 심리적 거리를 두고 살아왔기 때문에 불편한 선거 참여 방식을 감수하면서까지 투표하려 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 정부는 재외국민의 낮은 선거인명부 작성이나 재외동포의 대선이나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낮은 관심에 대해서 진정 의문을 갖기 바란다. 현대사에서 재외동포들은 사실상의 ‘기민’의 심정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국적을 바꾸었다고 민족적 정체성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사랑하도록 한국 정부는 그들의 고난과 상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국내 문제에 대한 재외동포들의 낮은 관심을 탓하기 보다는, 왜 관심 갖기가 어려운가를 헤아려주고, 그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조국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다양한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