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무형문화재, 부(富) 창조하는 문화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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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무형문화재, 부(富) 창조하는 문화콘텐츠"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2.11.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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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문화콘텐츠 콜로키움… 장경률 전 연변일보 신문연구소장

올해 퇴임한 장경률(사진) 전 연변일보 신문연구소장은 "우리민족 고유의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것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며, "다만, 문화란 '국경'을 넘어 인류 모두가 향유해야 할 자산이란 것을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장경률 전 소장은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센터장 임영상)가 지난 14일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개최한 문화콘텐츠 콜로키움에서 '무형문화재, 중국 조선족의 가장 큰 정신적 재부'란 주제의 강연을 진행하며 "날이 갈수록 조선족무형문화재의 경제적·물질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조선족들에게 큰 부를 창조하는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조선족무형문화재 형성은 우리 민족이 두만강, 혹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이라는 대륙에 발을 들여놓고 정착한 그 날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1860년대 조선에 대기근이 들면서 두만강을 넘어 몰래 농사짓고 수확하는 이른바 '일귀경작'(日歸耕作, 밤에 강을 건너와 씨앗을 심은 후 새벽에 돌아감), '춘경추귀'(春耕秋歸, 봄에 건너와 산속에 숨어 일년간 농사를 지은 후 가을에 수확)가 나타나면서 본격화 됐다.

이후 청나라의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우리 민족이 연변지역을 포함해 중국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났는데, 그 유형으로는 △가난을 이기지 못해 가족 혹은 가문 전체가 이동 △독립투사들이 가족을 이끌고 정착 △일제에 의한 강박이주 등이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민족 특유의 문화도 가지고 건너왔으며, 그 형태도 지방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그 실례로 경상도마을(안도현 장흥향 새마을)의 '농악'이 있으며, 배초구 '상모춤', 팔도구 '농악무', 명월구 '학춤' 및 '접시춤' 등이 있다.

중국조선족무형문화재는 이미 성급무형문화재로 76개, 전승인 30명, 국가급무형문화재로 16개가 등재돼 있다. 특히 연변의 '농악무'가 세계비물질문화유산의 영예를 안았고, '아리랑'이 중국의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 제5회 중국 무형문화재의 날을 맞아 연변지역 축제에서 경상도마을의 농악무가 펼쳐지고 있다.

그는 '조선족무형문화재가 한국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반문할 수 있고, 동북공정과도 연계해 의구심을 표할 수 있다'는 질문에 "중국조선족무형문화재의 모태는 조선반도 역시 한반도이고, 여기서 유래된 것만은 사실이다"며 "하지만 150여년 전 중국땅을 밟고 그 땅에 정착하면서 나름대로 특색있는 문화를 창출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조선족들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는 흑룡강성, 요녕성 등의 지역은 특유의 지리적, 기후적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한반도에서 가지고 온 문화에 구애받지 않고 나름대로 계승 및 발전시켜 왔다는 설명이다. 단일형태의 문화만을 고집하는 순결주의 보다는 '문화공존'이라는 보다 열린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인 듯하다.

▲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자 하는 연변조선족들의 숙원으로 개관된 '중국 조선족민속원'은 조선족들의 풍속과 음식문화, 거주문화의 정수를 한자리에 모았다.

특히, '아리랑'이 중국에서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과 관련해 "이제부터는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소실되지 않고 보존·발전시킬수 있도록 명분이 마련된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며 "한국인들도 동족인 조선족이 민족의 전통문화예술을 지켜가고 있는데 대해 거부할 이유는 없으며, 지금 우리 세대가 보존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을 맞이해 지난 9월 '중국조선족민속원'이 개관됐다"며, "조선족 문화유산 중 값진 것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선발해 전시하고 영구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