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선열 유해, 광복 67년만에 고국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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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선열 유해, 광복 67년만에 고국 품으로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2.11.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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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선열 등 3위(位), 14일 인천공항 통해 국내봉환

중국 동북3성 지역에 안장돼 있던 이경재, 이응선, 선우완 애국선열 유해가 1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봉환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에 안장됐다.

▲ 중국 동북3성 지역에 안장돼 있던 이경재, 이응선, 선우완 애국선열 유해가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이경재 선열 등 3위(位)가 이날 오전 11시 1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공항 입국장에서 박승춘 보훈처장,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외안장 선열 유해 봉영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봉영식이 끝난 후 의장병의 호위 하에 영정-훈장-유해 일렬순으로 운구행렬이 이뤄졌고, 국립대전현충원까지 의전차량을 이용해 의장병이 봉송했다.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중국에 안장돼 있던 이경재, 이응선, 선우완 애국선열의 유해가 1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봉환돼 오후 4시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에 안장된다고 밝혔다.
이어 오후 4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국가보훈처 관계자, 광복회 대표, 유가족, 장병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애국선열 약력소개, 추모사 및 헌화·분향, 조총 및 묵념 순으로 안장식이 진행됐다.

▲ 박승춘 보훈처장이 봉영사를 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봉영식에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봉영사를 통해 "조국이 광복된 지 67년이 지난 오늘에야 고국으로 모시게 됨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국의 땅에서 영면하시길 기원 드린다"고 말했다.

▲ 이경재 선생의 외손녀 김순옥 씨가 유족들을 대표해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또한, 이경재 선열의 외손녀인 김순옥 씨가 유족을 대표해 감사인사를 전하며 "늦었지만 오늘에야 비로소 외할아버지를 고국으로 모실 수 있게 돼 기쁘게 여긴다"며 "부디 고국의 땅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고 밝혔다.

▲ 박승춘 보훈처장이 봉영식에서 태극기를 헌정하고 있다.
이날 봉환된 선열 3위(位) 가운데 이경재(李景在) 선생은 3·1운동 이후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의군단의 참모 겸 비서를 담당하다 1920년 11월 마을을 습격한 일본군에 저항하다 피살당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응선(李應善) 선생은 1920년 3월경 천마산대에 입대해 활동하고, 1922년 만주로 건너가 통의부에서 활동하다 참의부 참사로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던 중 1928년 10월경 피체돼 징역 7년을 언도 받았다. 지난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또, 선우완(鮮于琓) 선생은 1943년 8월 중국 안휘성에서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해 조선의용대 제2지대에서 복무했으며, 1945년 8월까지 중국 중경에서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1구대에 소속돼 활동했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 봉영식이 끝난 후 의장병의 호위 하에 영정-훈장-유해 일렬순으로 운구행렬이 이뤄졌고, 국립대전현충원까지 의전차량을 이용해 의장병이 봉송했다.
보훈처에 따르면, 이번에 국내로 봉환된 애국선열들을 포함해 국가보훈처에서 파악한 국외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405위(位) 가운데 125位가 국내로 봉환돼 국립현충원 등에 안장돼 있다. 아직 봉환되지 않은 280位 중 소재가 확인된 105位는 현지에서 묘소를 단장해 한민족의 민족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밖에 166位는 산골(散骨)되었거나 후손이 없으며, 나머지 9位의 유해에 대해서는 관련 유족 및 단체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조사를 실시해 국내봉환 및 현지 묘소단장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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