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과연 이웃국가들과 진정 화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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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과연 이웃국가들과 진정 화해할 수 있는가?
  • 김이수 민주평통 SF지역협의회장
  • 승인 2012.09.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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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으로 주변 국가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던 독일과 일본이 전후(戰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독일은 주변국가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와 화해의 노력으로 EU통합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주변 국가들과는 여전히 영토 문제와 과거 전쟁범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이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주변국들에게 많은 희생과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이에 대한 가해의식이 부족해 과거 전쟁범죄를 부정하는가 하면 오히려 자신들이 원폭에 의한 피해자라는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승리의 여세로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시작했고, 1937년 중국 난징 점령시는 수십만의 중국 민간인을 학살하기도 했다. 또한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시작한 태평양전쟁 때에는 일본인은 물론 수많은 아시아 각국 국민들이 강제동원돼 3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을 위해 주변국들로 부터 강탈한 물자와 자원 또한 엄청난 것이었다.

특히 강력히 비난 받아야 할 일은 전쟁에 참가한 일본 병사들의 성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동남아, 중국등 22개국에 위안소를 설치해 20여만명의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 있던 한국은 가장 많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는 피해를 입었다. 수만명의 한국여성 피해자 중 지금 살아 있는 분은 60명뿐으로 이들은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정부의 진심어린 사죄와 법적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벌써 집회 횟수가 1,000회를 넘은 것을 보면 그분들의 마음에 쌓인 응어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20개월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명의의 담화를 통해 당시 위안소 설치 및 모집 위안부 관리및 이송 등에 관해 일본군의 관여를 폭넓게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한 일본이 최근 주변국들과 영토문제로 충돌을 빚자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최근 국회 답변에서 “군위안부를 강제연행 했다는 사실을 문서로 확인할 수 없었다”며 정부 관여사실 자체를 부정했고 아베 신조 전총리는 “재집권하게 되면 고노담화를 재검토하겠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시모토 도오루 오사카 시장도 “위안부가 일본군에 의해 폭행, 협박을 받아 강제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며 과거 일본 정부가 인정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견해를 뒤집는 이중성을 드러내 주변국들의 감정을 격앙 시켰다.

이렇게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20년전에 발표된 고노 담화를 앞다퉈 부정하는 모습은 이웃국가들에게 준 고통에 대해 가해의식 부재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 유산의 잘못된 자부심에서 기인한 자기부정의 전형이다. 오죽하면 자국 유력 언론이 비상식적인 과거사 부정을 보다 못해 “가지가 아니라 줄기를 보자”며 정치인들의 우경화 포퓰리즘에 대해 자성을 촉구하고 나설 정도일까.

일본군의 성노예 문제는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태국, 베트남,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등 당시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배나 침략을 당했던 나라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던 네덜란드 여성들까지 대상으로 삼은 반인도적 범죄이다. 미 하원은 2007년 “위안부는 일본정부에 의한 군대 강제 매춘제도로서 잔학성과 규모 면에서 전례없는 20세기 최악의 인신매매 사건의 하나“라고 일본정부에 사죄 촉구를 결의했다. 이러한 미국내 관심이 모아져 2010년 10월 미 뉴저지주에 기림비가 건립됐다.

한국 내에서도 2011년 12월 민간단체 주도로 일본정부에 진심어린 사죄를 호소하기 위해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됐는데 일본 우익 인물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야밤에 ‘독도는 일본땅’ 이라고 새겨진 말뚝을 박고서 이를 촬영해서 유투브에 올렸다고 한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어려운 시절에 매춘은 매우 이익이 남는 장사”라는 망언을 했다. 일본 사회에 퍼져 있는 비뚤어진 내셔널리즘의 단면을 떠올리게 하여 씁쓸함마저 느낀다.

일본은 고노 담화로 사과하고 금전적 보상을 하려 했지만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민간기금 형태로 꼼수를 부리자 상당수 피해 할머니들이 수령을 거부하는 등 환영을 받지 못했다. 1970년 12월 독일 빌리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독일의 도덕적 용기를 상징하는 것임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90세 가까운 고령의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진정한 사죄와 화해를 서두르지 않으면 일본은 옹졸한 가해자라는 족쇄를 영원히 풀지 못 할 것이다.

일본은 패전후 침략전쟁의 최고 책임자였던 천황이 면죄부를 받으면서 전범 청산이 미완에 그쳤고 군국주의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특수로 큰 호황을 누렸고, 그 덕택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면서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반면 한국은 36년간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되었지만 미·소 냉전시대의 대립 속에서 남북 분단의 비극을 겪었다.

일본은 경제성장에 힘입어 국제사회의 선도국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역사 교과서에서 주변국에 대한 침략과 고통을 준 과거사 교육을 주저하는가 하면 주변국들과 영토문제로 대립 중이다. 한국과는 독도 문제로, 러시아와는 쿠릴열도, 중국과는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독도는 일본이 한반도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1905년 불법적으로 편입한 후 1945년 한국이 독립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마찰을 빚고 있다.

일본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독일처럼 정치지도자의 적극적인 사죄와 반성을 통해 주변국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세계 리더로서 회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간 일본이 보여준 수사적 사과와 반성은 역사의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변국들로 부터 감동과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 주변국들 사이에서 그간 일본이 보여준 모습이 혼네(진정으로 바라는 마음)가 아닌 다테마에(필요에 의한 표면상의 방침)로 비춰지고 있다.

일본이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과 상호 윈윈(Win – Win)하는 공동체로 조화로운 관계로 상생 하길 원한다면 스스로 부끄러운 과거와 정면으로 맞서는 자발적인 인식전환과 도덕적 용기를 내야 한다. 끝까지 자기 부정을 고수 한다면 국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일본은 나이토 세이추 교수을 비롯한 일본 지성인들의 역사에 대한 양심의 소리를 외면 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일본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철저하게 반성하고행동으로 사죄하여 역사의 진실에 정직하며 후세에 떳떳한 좋은 이웃으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충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