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오히려 장점이 더 많아요~"
상태바
"다문화, 오히려 장점이 더 많아요~"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2.09.20 16: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하얀 꿈은 아름다웠습니다' 저자 이영남 씨

"파독간호사 47년, 파독광부 50년 역사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1만 2,000여명이 넘는 간호사들이 해외로 나가야만 했던 잊혀진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해야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더욱 밝게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감히 파독간호사들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됐다"

파독간호사 출신 이영남 씨가 최근 펴낸 자서전 「하얀 꿈은 아름다웠습니다」는 파독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당사자가 직접 들려준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영남 씨는 "이 책은 나 자신의 이야기이면서도, 수많은 파독간호사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저술에 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한-독 다문화가정'이 행복을 가꾸며, 현지에서 한국의 얼도 심어가는 감동 스토리는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한국사회에 또다른 모범적인 롤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녀는 지난달 여수에서 열린 KOWIN(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행사에 참여하며, 다문화 관련단체에 자신이 직접 쓴 책을 기증해 다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줬다.

영남 씨의 자녀들이 모두 한국어에 능숙하고 양국 문화에도 매우 친숙하게 된 것은 그녀의 탁월한 자녀교육 방법과 남편 '볼프강 슈미트'의 뜨거운 배려 덕분이었다.

의학을 전공하고 얼마 전 연세대 병원에서 실습도 마친 딸과 국내 굴지의 항공사에서 엔진니어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은 독일어, 영어, 한국어에 모두 능숙하다. 영남 씨는 시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한국어만 배우도록 했다.

그녀는 "남편의 배려 속에서 자신 만의 교육방법을 훌륭한 결과로써 증명하고 싶었다"며 "또한, 자서전을 통해 성공보다는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물론 본인도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남편, 아이들과는 물론이고 독일 함부르크 사회와도 별 문제없이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영남 씨의 자서전 표지 디자인은 남다른 사연을 갖고 있다. 23살 때 파독간호사로 근무하던 모습이 중앙에 있고, 독일 국기가 배경으로 자리잡고 옆면에는 태극기가 조그맣게 배치돼 있다. 가족들이 고심 끝에 고안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책 표지마저 다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서려있다.

물론 영남 씨도 독일에서 다문화 가정으로서 높은 벽을 체험했다. 양가 집안에서의 강력한 반대도 있었다. 그럼에도 "다문화는 장점이 더 많다"고 평가하며, "나는 한국인이면서 독일인"이라고 말한다. 양쪽 문화를 다 알아야 그 사회와 온전히 대화할 수 있고, 모국 문화도 현지에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럽한글학교협의회를 함부르크에서 공동으로 설립할 정도로 한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며, "교민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지 다른 정규학교처럼 한글학교도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엄마가 먼저 인식해야 아이들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닌다"는 것이다. 연극에도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는 그녀는 한글교육에 연극을 접목해 효과적인 학습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녀는 자서전이 조금 팔리면 함부르크 한인학교 아이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쓰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독일에도 한국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형편이 여의치 않는 한-독 다문화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영남 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피부색이 달라 놀림을 당해 하소연할 때, (외모가) 다르게 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단점은 결코 아니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과 관련해, "다문화 아이들이 사회에 잘 융합되도록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엄마가 흔들리면 안된다"고 말한다. 엄마가 흔들리면 아이들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종차별과 관련해 "독일도 인종차별이 있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잘 돼 있다"며, "인종차별을 오히려 나를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물론, 한국은 지금보다 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시 미래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한국인이고, 함께 건강하게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테면 베트남에서 온 엄마와 아이들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조성은 이들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전체사회를 위한 것.

영남 씨는 앞으로 2,500여명의 한인들이 거주하는 함부르크 한인사회 구석구석, 소소한 역사를 기록한 작은 역사책을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역사책 주인공은 소수 잘나가는 한인들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 동포들이 될 것이다. 그녀가 직접 쓴 희곡 제목으로 시작한 '하얀 꿈은 아름다웠습니다'에서 '하얀 꿈'은 다름아닌 파독간호사들의 꿈과 희망을 의미한다. 이제 그녀의 또다른 하얀 꿈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