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혐의 캄보디아 한인여성 '무죄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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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혐의 캄보디아 한인여성 '무죄판결'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2.08.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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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파견 법의학팀 무죄취지 진술 결정적 기여

지난해 6월초 교민 정모 씨 살인혐의로 캄보디아 현지 검찰에 의해 기소, 지난 15개월 동안 프놈펜 현지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가라오케 종업원 김모 씨와 조모 씨 등 두 한인여성이 최종공판에서 무죄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 27일 오전 8시 50분경 프놈펜 지방법원에서 속개된 공판에서 담당 판사가 법정 중앙단상에 좌정한 가운데 무려 15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무죄취지의 판결문을 낭독했다.

박광복 캄보디아 한인회장과 한인회 임원을 비롯한 교민 10여명과 윤규근 영사 등 대사관 관계자들도 촉각을 세우며, 판사의 입에서 최종판결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 최종판결을 기다리는 한인여성들(프놈펜 지방법원1호법정)
다소 지루한 30여분 간의 판결문 낭독이 끝난 후 드디어 '무죄판결'을 알리는 판사의 재판봉 소리가 들리자, 객석에선 '와' 하는 함성과 동시에 박수가 터져 나왔고, 두 여성은 서로 부둥켜 앉은 채 그동안 복받쳤던 울음을 토해냈다.

이번 무죄판결은 지난 3월 국립수사연구원 법의학팀(김형중 박사)이 직접 현지법정에 참고인으로 나서 과학적 수사에 근거한 무죄 취지의 진술과 소견서를 제출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다른 숨은 노력도 있었다. 우리나라 외교통상부는 세계적인 권위와 실력을 자랑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팀의 현지 파견을 위해 힘을 쓰는 등 외교적 역량을 발휘했다. 캄보디아 대사관도(김한수 대사) 공정한 재판과 해외자국민 보호를 위해 다양한 현지 외교채널을 최대한 가동하는 한편, 담당 영사가 검찰청과 법원을 수시로 드나들며 1년여 넘게 끈질긴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 무죄판결을 받고 기뻐하는 한인여성들.
사실 이번 재판은 판결의 향방에 따라 자칫 양국 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프놈펜 포스트 등 현지 언론들도 본 사건을 비중있는 기사로 다루는 등 재판진행 과정을 예의주시 했다.

이러한 중압감 탓인지, 캄보디아 재판부는 당초 7월 26일로 잡혀있던 최종 공판날짜를 불과 한 달여 사이 2번씩이나 연기했다. 이는 판사가 자체 수사능력의 한계와 결부된 ‘국가적 자존심’과 명백한 진실 앞에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사이의 ‘딜레마’로 나름 고심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두 여성의 변호를 맡았던 캄보디아 변호사 키엣 반씨는 검사 측이 항소할 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이번 무죄판결에 대한 더 이상의 이의제기는 없을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 캄보디아 프놈펜지방법원
단순자살로 판결난 숨진 정모 씨의 유가족 역시 현지 법원의 최종판결에 승복하겠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어, 두 여성의 이번 재판 결과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쥐와 벌레가 들끓고 간수들의 부정부패가 심하기로 악명높은 캄보디아 교도소에서 지난 15개월 동안이나 수감생활을 한 탓에 두 여성 모두 수척해보였다. 하지만, 곧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억울하고 악몽같던 수감생활은 잊은 듯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두 여성은 지방법원의 행정절차가 마무리 되는대로 곧 석방될 예정이다.

(글·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사건 개요

▲ 한인여성들이 수감됐던 프놈펜 현지 교도소
지난해 6월 7일 오전 6시 15분께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한국인 정아무개씨(43)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프놈펜 경찰은 시신에 난 상처 등에 의거해 사건 당시 이 아파트에 정씨와 같이 있었던 두 여성이 정씨를 목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보고 이들을 체포했다.

경찰 조서에 따르면, 숨진 정씨의 가슴에는 손톱자국이 있으며, 두 눈과 입술에는 피멍이 들어 있고, 두 여성의 손바닥과 손목에는 전깃줄을 묶었던 자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여성의 주장은 다르다. 새벽에 술에 취한 상태로 자신들의 아파트에 찾아온 정씨와 김아무개(36) 여성 사이에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으나, 김씨가 밖에 나왔다 다시 들어가보니 정씨가 화장실 안에서 목에 전깃줄이 감긴 채 쓰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즉, 정씨는 타살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정씨의 심장이 뛰고 있었으나 경찰이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며 병원 이송을 지체해 정씨가 숨졌다고 주장했다. 또 숨진 정씨가 당시 가지고 있던 현금 3000불을 경찰이 빼돌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의 가족은 또한 조씨가 사건 당시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휴대폰으로 통화중이었다는 사실을 진술했음에도 경찰 조서에는 기록돼있지 않고, 범행 증거로 지목되고 있는 손목의 상처 또한 한국에 있을 때부터 있던 것이라며 경찰 수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더욱이 경찰 조사와는 달리 정작 시체검안서에는 가슴의 손톱자국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필수적인 사체 부검을 하지않고 나흘 만에 화장해 버린 것도 문제다.

이 사건과 연루된 김씨와 조씨 등 두 여성은 프놈펜 시내의 한국인 가라오케에서 매니저 일을 하고 있었으며 숨진 정씨는 현지에서 중고자동차매매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여성들은 열악한 환경의 현지 교도소에서 언제 받을지 모르는 재판을 장장 9개월간 기다린 끝에 지난 2월 28일에야 프놈펜 지방법원에서 첫 번째 재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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