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안내원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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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안내원 아저씨
  • 최미자
  • 승인 2011.10.3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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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가주 샌디에고에서 살고 있는 재미수필가 최미자씨가 미국 생활의 소박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레몬향기처럼>(2007) <샌디에고 암탉>(2010) 등의 수필집을 발간한 그는 재미동포들이 일상에서 겪는 삶을 그려낼 예정이다.<편집자주>

안내원 빌 씨.
자동차의 안전벨트 경고등에 불이 왔다. 나이가 거의 열 살이 된 자동차. 별로 많이 타지 않아 성능은 중년이다. 자동차 수리 서비스센터로 갔다. 업소의 직원들은 한결같이 친절하다. 일제 강점기에 자란 부모님이 일본산 자동차를 사지 말라던 충고때문에 망설이다 팔 때도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핑계로 일본 차를 샀었다. 고맙게도 이듬해엔 한국산 자동차가 미국시장에 좋은 품질을 외치며 많이 들어왔기에 한대 사들여 여태 타고 있다. 다행히 우리 한국산 자동차가 성능과 서비스에서 일본산 못지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용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에서는 개인 신용 등급에서 나쁜 점수를 받으면 융자를 신청하거나 주택을 구입할 때 불리하다. 수년 동안 미국이 겪고 있는 심각한 불경기 이유 중 하나도 신용등급이 나쁜 사람들에게 부당 대출을 하였기에 큰 은행들이 하나둘씩 무너지지 않았던가.

자동차 수리업소에 가면 낯이 익은 안내원 미국 아저씨를 맨 처음 만나야 한다. 그는 이삼십 대로 보이는 직원의 책상으로 안내한다. 매우 친절하지만, 전문적인 담당자의 유창한 영어 설명을 알아들으려니 우리는 눈동자를 굴리며 온갖 신경을 곤두세운다. 생각보다 수선 시간이 길어지는 까닭은 부품을 다른 지점에서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란다.

웃는 내가 좋다며 곁에 있던 아저씨 안내원이 설명의 말을 덧붙였다. 난 그의 주름진 얼굴을 보며 아마도 칠 십 대 일 거라고 추측하면서 이름을 여쭈니 윌리암 싶펄리(William J. Shipperly)라고 소개했다. 그가 일본인이냐고 물어서 나는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며 아저씨의 나이를 여쭈었다. 자랑스럽게 그는 89세라고 했다. 이곳은 만의 나이를 말하니 한국 나이로 90세이다. 와! 회사에서는 그를 빌이라고 부르고 벌써 7년째 근무하고 있다. 아침 6시에 출근하여 준비해놓으면 7시부터 고객을 받아들인다고.

그는 슬픈 눈빛으로 우리 부부에게 2주 전 아내를 잃었다고 했다. 아저씨는 66년 동안이나 살아온 아내가 심장 수술 후 회복하지 못하고 떠났다며 그리워했다. 나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두 손을 다정하게 잡아 드렸다. 이어서 그가 태어난 고향이야기도 시작했다. 미시간의 디트로이트 북쪽, 시골(Utica), 집 부엌 식탁에서 1922년에 태어났다고 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병원이 없었기에 여자 가족과 친척이 모두 산파가 되었다. 그분의 할아버지가 독일에서 이민을 온 후 삼대의 가족이 함께 살았다고 했다.

빌 아저씨는 주 닷새 동안 날마다 7시간씩 일한다. 사무실 직원들도 그의 정정함에 혀를 내두른다. 20년 전에 심장수술을 했다는 그의 건강비결은 아마도 사람을 좋아하는 명랑한 성격 같았다. 4명의 아들과 25명의 손자 손녀가 있는 아저씨의 장수에 대하여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하니 뭐든지 물어보라며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근무하고 있는 회사로 놀러 오란다.

집에 돌아와 며칠 후 댁으로 전화를 걸어 건강비결에 대하여 여쭈었다. 좋은 음식과 채소를 먹고 담배와 술은 전혀 안 한다고. 이차대전 때는 육군 부사관으로 3년간 근무했다. 대학에서 일 년간 회계공부를 하여 1944년부터 제너럴다이내믹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어 샌디에고에서 와 살게 되었고, 세무 공무원으로 34년간 근무했다.

또 우리처럼 그는 5년마다 운전면허증을 받고 있다. 대부분 은퇴한 사람들은 벌어놓은 돈으로 유람선을 타고 세계 여행을 즐기는데, 일을 좋아하는 빌 아저씨는 남은 삶을 청년처럼 살아간다. 미국에 살며 그처럼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일하는 노인들을 여기저기서 만난다.

고국에 가보니 사오십대 후반에 직장을 나오면 재취업이 힘든 분위기였다. 아파트 경비원이 되거나 주말이면 등산가는 일이 대부분 한국인의 노후생활이었다. 100세 시대가 왔는데, 한국에서도 선진국처럼 경험이 많은 좋은 두뇌와 인력들을 재활용할 수는 없을까. 현대인에 유용한 법이 빨리 제정돼야 할 것 같다. 지혜도 넘치며 더욱 창의적인 한국사회가 될 것이다.

그날 우리 자동차의 안전벨트 문제는 제조회사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기에 돈을 내지 않아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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