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어’가 아니고 ‘헌국어’라구요?
상태바
[기고]‘한국어’가 아니고 ‘헌국어’라구요?
  • 김문백 (재캄보디아한인회장)
  • 승인 2010.07.19 1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캄보디아에도 불고 있는 한류 열풍 -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있는 어느 한국어 강습 학원 간판을 찍은 사진이다. 자세히 보면 ‘한국어’가 아닌 ‘헌국어’ 라고 잘못 쓰여 있다. 이렇게 엉터리 한글 간판을 붙이고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니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수강생들에게 ‘새’ 국어가 아닌 오래된 ‘헌’ 국어로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상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난다. 나중이라도 간판글자를 고칠 줄 알았는데, 정말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지, 벌써 1년 가까이 버젓이 그대로 걸어 놓고 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국어 학원임이 틀림이 없다.

최근 들어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에도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운 여름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한류 열품이 몰아치고 있다. 몇 년 사이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여, 한국어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늘어난 것도 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현지인들의 증가로 캄보디아 전역에 한국어 학원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학원은 서너 개에 불과하지만, 캄보디아 현지인이 직접 차린 한국어 학원은 그 수만도 프놈펜 시내에만 수십여 개에 달한다. 학원 앞 도로엔 수강생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들로 빼곡해 통행이 어려울 정도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듯싶다.

바로 얼마 전엔 24시간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 한국 인기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만 틀어주며, 심지어는 ARS를 통해 자체 인기순위까지 매기는 전문 방송채널마저 생겨났다. 작년에는 원더걸스의 ‘노바디’라는 댄스곡을 안무까지 그대로 베껴 불러 저작권 문제가 불거진 적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 네티즌들에게도 캄보디아 판 짝퉁 원더걸스의 명성(?)이 알려지자, 소식을 접한 담당 매니저 회사가 즉각 국제 변호사까지 동원, 저작권 침해에 따른 법적 대응까지 나설 채비를 서두른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일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캄보디아가 예술, 음악, 문학 작품 등 지적 재산권에 관한 베른 국제 협약을 맺지 않은 전 세계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음악이나 예술에 관련된 외국 저작물에 관해서는 아무리 능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 국제 소송을 걸더라도 캄보디아에서는 이길 방법이 없다. 해프닝으로 끝난 소송 사건 덕에 짝퉁 원더걸스는 원조 원더걸스만큼이나, 한동안 교민사회에서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일을 마치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현지인의 결혼식 파티가 열리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대형 스피커로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하객들은 음악에 맞추어 열심히 최신 유행하는 춤을 추고 있었다. 옆에 있던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에게 누구 노래냐고 물어봤다. 녀석이 심드렁하게 대답해 주었다.

“슈퍼 주니어의 최신곡 ‘너 같은 사람 또 없어’예요.”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