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해방직후 사할린 한인들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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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해방직후 사할린 한인들 학살했다”
  • 최선미 기자
  • 승인 2009.06.2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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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용 박사, 구소련 KGB 수사자료 번역출간

증언과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사할린 가미시스카 한인학살사건을 수사한 자료 「사할린 가미시스카 한인학살사건Ⅰ」이 지난 15일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 이원용 박사에 의해 번역출간 됐다.

이 학살사건은 일제가 항복을 선언한 직후인 1945년 8월 17일 사할린 가미시스카(현 레오니도보)에서 일어난 것으로 당시 20명의 한인이 ‘소련의 스파이’란 구실로 일본 경찰서에서 살해됐다.

같은 날 경찰서에 불을 지르고 시스카(현 포로나이스크)로 퇴각했던 일제 경찰은 다음날인 18일 가미시스카로 되돌아와 덜 탄 사체를 석탄더미 위에 던져 완전히 소각하는 만행을 보였다.

이원용 박사는 “이 학살로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김경순씨가 각고의 노력 끝에 1995년 10월 러시아연방보안국(KGB의 후신) 사할린 지부에서 관련 수사 자료를 입수했다”며 “학살직후인 1945년 8월 30일 소련군이 가미시스카 경찰서를 정밀 검시했고 1946년에는 학살에 참여한 일경 8명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등 수사에 적극적이었다”고 밝혔다.

김경순씨가 입수한 수사자료가 10여년이 넘는 기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훼손됐으나 이 박사가 복원, 「사할린 가미시스카 한인학살사건Ⅰ」(소련군·KGB 수사 자료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한 것.

이 박사는 “이 자료가 직접적으로 학살에 참가한 일경에 대한 수사 자료가 아니라 당시 일경의 협조자로 학살을 은폐하는데 참여한 이두복에 대한 심문조서, 증인심문조서 및 판결문 등으로 사건을 온전히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유일한 객관적 자료라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한편, 가미시스카 학살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일본의 르포작가 하야시 에이다이가 1991년에 출간한 <증언>을 통해서다. 이 책에서 하야시는 가미시스카 학살사건을 제2의 관동대지진과 같은 잔인한 학살 사건이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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