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포럼] ‘지못미’와 ‘흠좀무’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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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포럼] ‘지못미’와 ‘흠좀무’를 아시나요
  • 강성봉
  • 승인 2009.04.1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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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진 전 KBS 아나운서
이글은 지난 3일 희망포럼 광화문홀에서 이세진 전 KBS 아나운서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사용실태’라는 주제로 행한 제108회 희망포럼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ㅎㅇ’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ㅎㄷㄷ’은? 아마도 기성세대로 이런 말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ㅎㅇ’는 영어 ‘하이(Hi!)’, ㅎㄷㄷ은 ‘후덜덜’의 각 글자의 앞 철자를 하나씩 딴 말이다. 모두 젊은이들의 인터넷 용어이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흠좀무’는 ‘흠...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 ‘지못미’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줄임말이다.

젊은이들이 이런 말들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1.친근감이 있다, 2.간편하다, 3. 재미있다 등 대략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들은 세대간의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은어, 비속어, 막말에서 우리말은 또한 쉽게 파괴된다. 아르바이트를 의미하는 ‘알바’, 화장 안한 맨 얼굴을 의미하는 ‘쌩얼’, 얼굴 예쁜 사람을 의미하는 ‘얼짱’, 몸매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몸짱’ 등은 이미 일상 언어가 되고 있다. 화가 난다는 뜻의 ‘뚜껑 열리다’, ‘꼭지가 돈다’ 같은 말을 사용하면 그 의미는 통한다 할지라도 그런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아름다운 우리말 사용에 모범을 보여야할 방송 드라마나 영화가 우리말 파괴에 앞장서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 지난 3일 광화문홀에서 개최된 제108차 희망포럼 정책토론. 이세진 전 KBS 아나운서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사용실태’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몇 해 전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는 하루 저녁 방영되는 드라마 한편에서 ‘쪽 팔려’ ‘정말 죽여’ 등의 비속어가 7~8회씩 나왔다. 영화 ‘조폭 학교로 가다’에서는 상영시간 90분 중 욕이 217번이나 나왔다. 30초에 한번 이상 나온 셈이다.

우리말을 파괴하는 데는 사회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막말도 빼 놓을 수 없다. 일국의 지도자라는 분들이 ‘계급장 떼고 붙자’, ‘까발긴다’, ‘인간말종’, ‘밥이나 한번 합시다’ 같은 말을 사용하면 국민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얼마전 KBS스페셜에서 ‘실태보고 10대 욕에 중독되다’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대전의 어느 초등학교, 중학교를 조사 보고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욕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정말 놀라웠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들에게 욕은 일상어였다. 한 반 30명 중 욕을 안 하는 사람이 한 명에 불과해 욕을 안 하면 오히려 신기해할 정도였다. 보통 5~6학년생들은 30개 정도의 욕을 사용했고, 초등생 96.9%가 욕을 한다고 대답했다. 기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자연스럽게 욕이 나오는 것이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담 너머에 바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가 있어서 아침 저녁이면 아이들이 등하교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아침에는 조용히 웅크리고 지나가지만 오후에 하교할 때는 엄청나게 많은 욕을 하며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KBS스페셜을 보면서 아이들이 욕하는 게 우리 동네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달에 성대 한문학과 안대희 교수가 정조어찰 299통을 발굴해 학계에 보고한 바 있다. 그 서찰들에서 성군이라 알려진 정조가 원색적인 욕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걸 보며 ‘정치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욕을 많이 하는구나’라고 느꼈고, ‘최근의 언어환경이 우연이 아니라 뿌리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말의 최후의 보루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들과 대중매체 종사자들이다. 이들이 표준어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는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따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외계언어 수준의 인터넷 언어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 인터넷 언어에 물든 어머니가 자식에게 그대로 가르치면 언어가 바뀌어 영원히 회복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바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교양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고 이를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뜻있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이 국어를 만들고, 국어가 국민을 만든다’고 한 피히테의 말이 그 의미를 더해 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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