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 조선 여성부터 파독 간호사까지”
상태바
“재중 조선 여성부터 파독 간호사까지”
  • 최선미 기자
  • 승인 2008.12.19 1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사전시관, ‘여성과 이주-100년간의 낯선 여행(女行)’ 특별기획전


타국으로 이주한 근현대 한민족 여성들의 발자취를 조명한 특별기획전 ‘여성과 이주-100년간의 낯선 여행(女行)’이 지난 6월부터 지난 17일까지 서울 여성사전시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그 시대 이주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증언, 조형물 및 자료, 작가들의 창작품 등을 통해 ‘여행을 말하다’, ‘이주의 기억’, ‘길 위에 선 여인들’,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여행한다’의 총 4개 부분으로 구성됐다.

특히, ‘길 위에 선 여인들’에서는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재중 조선 여성, 1910~1924년 사진신부, 1920년대~1930년대 신여성, 1940년대 일본군 위안부, 1950년대 한국인 미군아내, 1960년대 서독 간호사들의 이주 역사가 상징적인 조형물과 함께 전시됐다.

여성사전시관 측의 해설에 따르면, 1860년대와 1870년대 사이 조선에 재해와 흉년이 연속으로 발생하자 많은 이재민들이 간도지역으로 대규모 이주를 시작했고, 그 결과 이주 초기 두만강과 압록강 등으로 퍼져나가  중국 동북부 지역에 조선인 사회가 형성됐다.

이들의 움직임은 일제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더욱 확장됐고, 이 와중에 상하이임시정부 애국부인회를 비롯해 훈춘애국부인회, 난징조선부녀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 부인독립회 등이 만들어져 해외 여성단체들이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전시 조형물에 포함된 글귀, “동무들아 잘 있거라. 나 간도로 떠나던 비 나리는 그날을 못 잊겠노라. 기차는 달려서 두만강 건너, 백설이 자욱한 북만주로다”에서는 그 당시 한 재중 조선 여성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1910년대 초반에는 결혼을 희망하는 미국 내 한인 이주자들이 자신의 사진을 조선에 보냈다. 그리고 이 사진을 보고 결혼하기로 결심한 조선 여성들이 사진을 동봉해 답장을 보냈다. 이 중 최초의 사진신부는 하와이 한인 이주자 이래수와 결혼하기 위해 1910년 11월 호놀룰루에 도착한 최사라로 알려졌다. 이들 사진신부의 평균 연령은 15~17세로 대부분이 수도권 및 남부지방의 반가출신 소녀들이었다.

전시관 측은 이 밖에도 아시아 각지의 일본 점령지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들, 미군과 결혼하고 언어·인종·계급의 장벽 앞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았던 ‘군인아내’들, 해외 원조의 조건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서독으로 일하러 간 간호사들에 대해 조명하면서, “이주가 전 지구적 현상이 되고 있는 요즘, 지난 100년 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들의 경험과 기억을 더듬으며,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여성들의 이주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했다”고 이번 전시회의 의미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