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당 벌써 초심을 잊었나
상태바
<시론>신당 벌써 초심을 잊었나
  • 경향신문
  • 승인 2003.10.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랜 진통 끝에 국민참여통합신당이 출현했다. 새로운 정치를 기치로 내건 신당이지만, 분당 과정에서 보여준 구태의연한 대립상과 지도력 부재로 말미암아 창당의 의미가 반감한 가운데 국민의 시선도 차갑기만 하다.
이런 와중에 신당 창당주비위원회가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 인선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위원장 면면을 보니 신당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가 아닌가? 한나라당에서 한창 세대교체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나 배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당을 만들려 한 본래 의도는 잊어버렸는지, 분당 과정에서 소신 있게 행동하지 못한 채 다분히 기회주의적 행보를 보인 인물 다수를 포함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소장 개혁파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 마디로 신당의 첫 얼굴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개혁파 배제한 위원장인선 '실망'
이것을 민주당 내 중도파를 좀더 많이 견인해 내려는 전술 또는 노무현당을 만들려 한다는 국민의 시선을 피하려는 전술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개혁을 바라며 신당 창당에 기대를 걸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던 수많은 국민들에게 이번 인선은 희망의 일단을 접게 하는 또 다른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의 불안정한 국정 운영과 지루한 신당 논의 속에서 개혁세력의 동력은 현저히 약화됐는데, 이번 일로 개혁세력 내에서도 냉소주의가 퍼지는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되었다.
신당 준비위원회 측은 기득권 포기를 주장하며 탈당을 결행한 초심을 잃지 말고 새삼스레 감투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신당 창당 과정에서 기회주의적 면모를 보였던 정치인은 자중하고 백의종군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제 그만했으면 충분하니, 무조건 국회의원 숫자만 늘리고 보려는 '수의 정치'도 그만두어야 한다. 신당은 정말 새로운 정당다워야 한다. 그래야 신당이 살고 나라도 산다.
앞으로 나올 정당은 철저히 원내 중심의 민주적 정당이어야 한다. 원내 중심의 민주적 정당에서 원외정당은 평당원, 곧 일반 유권자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원외정당의 대표는 평당원 가운데에서 선출해야 하며, 현역 국회의원은 여기에서 빠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신당은 창당발기인 모집 후 이른 시일 내에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평당원 가운데에서 대표를 선출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은 원칙적으로 원내정당에서만 보직을 가져야 한다. 원내대표로부터 원내총무-원내부총무로 이어지는 의사진행팀, 원내대표로부터 정책위원장-정책부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정책기획팀, 원내대표로부터 선거위원장-선거부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총선대비팀으로 원내 조직을 다변화하고 강화하여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 개개인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조직으로 나가야 한다.
공직 후보자 경선과 관련하여 신당은 상향식 국민경선 제도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이것은 민주당 탈당과 신당 창당의 최대 명분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상향식 공천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원외정당과 원내정당 공히 경쟁력을 지닌 후보자군의 발굴에 힘써야 하며,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후보자가 동일한 출발선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상향식 국민경선 제도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눈가림식 구태 답습땐 국민심판
신당이 새로운 정당으로 대의명분을 이어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새로운 정치문화, 새로운 정당문화를 이끄는 역사적 역할을 수행하려면 각별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장난으로 생각하고 과거의 관례를 은근슬쩍 부활시켜 술렁술렁 넘어가려 했다가는 국민의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신당은 애초에 내건 창당 명분에 따라 한 단계 높은 정당문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으로 나머지 정당의 변화를 견인해 나가야 한다.
국민참여통합신당의 성공 여부는 비단 신당 추진주체만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이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 접어들어 선진 민주국가로 진입할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전 국민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다. 신당 추진주체는 이 '역사의 무게'를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가벼이 여겼다가는 지난 10년간의 민주화 여정이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이종훈 국정경영원 원장 정치학
   [경향신문] 2003-09-26 (오피니언/인물) 칼럼.논단 06면 45판 2037자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