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진,천관산...그리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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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천관산...그리고 바다
  • 전기철 시인
  • 승인 2006.11.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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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살던 고향은..전남 장흥군

▲ 천관산 억새풀
서울에서 남쪽으로 한없이, 정말 한없이 내려가면 바다가 보이고, 그리고 멀리 높은 산이 희미하게 보이는 곳,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이 있다. 지금은 승용차로 서너 시간이면 가지만 십 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가려면 기차를 타고 광주까지 다섯 시간, 광주에서 장흥 읍내까지 버스로 세 시간, 그리고 장흥읍에서 버스로 안양과 용산을 지나 한 시간을 가야 하는 먼 곳이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곳은 서울의 광화문으로부터 정남쪽에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워낙 남쪽에 있다 보니 여름이 길고 겨울이 짧다. 그래서 요즘은 점점 아열대 기후가 되어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고향 사람들은 늘 광주보다 제주의 소식을 더 잘 안다. 왜냐하면 제주 방송이 더 잘 잡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맑은 날이면 제주도가 희미하게 보이는, 그래서 어린시절 제주도를 꿈의 나라처럼 생각하며 자랐던 곳이 바로 관산이다.

바다의 파도는 거세지 않고 땅은 따뜻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이 많고 온화하다. 사람들은 깡촌의 때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어서 자라면 서울로 광주로 부산으로 떠나곤 했다. 간척지가 생기기 전에는 농토가 부족하여 먹거리가 늘 부족했던 곳이다.

▲ 장흥 회진 일대는 바다낚시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남진은 읍내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인 신동에 있다. 그곳은 김이나 젓갈, 돔을 많이 생산하는 어업과 농업을 생계로 하고 있는 곳으로 남쪽 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접해 있는 장안도에는 돔, 숭어를 낚는 바다 낚시터로도 유명하여 낚시꾼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정남진의 표석이 하발리 옆 마을인 남포 소등섬 앞에 서 있기도 한데, 남포가 경관이 수려하고 영화 촬영이 있었던 곳이기도 해서 관청에서 정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혀 싸우지 않는다.

읍내에는 명산 천관산이 있다. 천관산은 예로부터 신산(神山)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쳐다보면 위 봉우리가 안개에 둘러싸여 있고, 걷히면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부터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산은 관산과 이웃해 있는 대덕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지주였으며, 꿈이었고 푯대였다. 대부분 학교의 교가에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천관산 속에 있는 몇 개의 절을 찾아 기원하며, 꿈을 묻고 오며, 맹세를 하고 오는 곳이기도 하다. 천관산은 이 지역의 아무 데서나 쳐다볼 수 있는 산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산을 의지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은 이 산을 중심으로 장흥의 문인들인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화가 김선두 등이 소재로 많이 그려내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해발 700 미터가 넘을 뿐만 아니라 기암괴석과 멀리 펼쳐지는 남쪽 바다의 풍경을 한눈에 담아오기 위해 등산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가을이면 억새가 장관으로 펼쳐져 있고, 정상 부근에는 문학비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이 고장의 문향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 자운영이 만발한 장흥 안양면 마을 뒤로 사자산이 우뚝 솟아 있다
천관산 들어가는 입구에 장천재가 있는데 이곳은 동백의 군락지이기도 하고 가을이면 여는 축제인 억새제가 열릴 경우 이곳을 거쳐 천관산 산행을 하면 그 수려한 산길과 깊은 계곡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장천재는 장흥 위씨들의 제각으로 위나라 위(魏)씨의 본향이 바로 관산이다.

과거 여름에 가물으면 기우제를 지내는데, 읍내의 모든 마을에서 울력을 하여 산봉우리에 커다란 풀을 몇 무더기씩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이삼일 안으로 비가 내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학교 학생들에서부터 어른들, 관청 사람들 모두 너나할 것 없이 천관산에 모였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른 동네 사람들과 연대해서 서로를 사귀고 힘을 합쳤다.

천관산과 관련하여 삼국유사의 천관녀 전설이 있는데, 삼국 통일의 주역 김유신이 사랑했던 천관녀가 이곳 출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김유신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말을 죽이고 사랑을 배반한 것이 천관녀 설화인데, 사랑에 비정했던 게 아닌가 싶다. 천관녀는 그런 김유신의 출세지향적인 배반에 머리를 깎고 천관산으로 깊숙이 들어가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명예도 권세도 날려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천관녀의 지극한 사랑과 가슴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이 곳 사람들이 예로부터 얼마나 정이 많고 가슴 따뜻한 사람들인가를 알 수 있다.

이제 바다를 얘기해 보자. 이곳은 남쪽 바다를 품고 산다. 북쪽이 육지를 향해 있다면 남쪽은 온통 바다다. 아침 밥상부터 바다가 오른다. 돔이며, 갈치, 고둥, 가오리, 숭어, 이런 해산물뿐만 아니라 바다를 눈으로, 입으로, 귀로 넘기는 것이다. 철석거리는 바다에서 먼 남국의 전설을 듣고 바다에서 소곤거리는 조개들의 옛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도 바다 냄새를 풍긴다.

늘 사람들은 바다처럼 철석거리며 밀려왔다 밀려가고 먼 이국을 꿈꾼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청색을 띤다. 산도, 들도 파랗지만 파란 바다 또한 파래서 파란 색깔의 사람들이다. 대덕에 이어져 있는 삼산의 바다에서부터 남포에 연해 있는 하발, 죽청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펼쳐져 있다. 그래서 여름이나 겨울, 혹은 봄가을에도 바다는 삶의 터전이면서 제주도나 먼 남쪽 나라를 그리워하는 매개이다.

그 바다 한쪽에 도리섬이 있다. 이 섬은 주로 남포 사람들이나 하발, 죽청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다. 그 섬은 육지에서 백여 미터 거리를 두고 있는 소나무 섬이다. 그런데 이 섬은 하루에 두 번씩 걸어서 갈 수 있다. 진도의 기적의 섬이 일 년에 한 번 갈라진다면 이 섬으로 가는 길은 조수간만의 차이에 의해 하루에 두 번이나 갈라진다. 이 섬을 둘러싸고 많은 해산물이 나온다. 굴, 고막, 파래, 새우 등 연안에서 나오는 많은 해산물이 나온다. 그래서 여자들은 길이 생기면 바구니를 끼고 고막이나 굴을 캐러 간다.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나 누나를 따라 소를 끌고 섬에 들어가서 소를 풀어 놓는다. 섬은 풀이 무성해서 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아이들은 소를 놓아두고 바다로 간다. 멱을 감기도 하고 바닷말을 듣기도 하고 고둥을 줍기도 한다. 혹은 짱구나 불가사리를 갖고 놀기도 한다. 어쩌면 도리섬은 이 지방 아이들에게는 어린시절 가슴에 담고 자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죽청이나 장안도를 통해서 완도나 고흥, 혹은 수문포나 율포로 나가기도 한다. 작은 통통배를 띄워 이곳저곳 널려 있는 작음 섬들을 지나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면 수많은 부표들이 떠다닌다. 뱃사람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쳐 놓은 것을 표시하는 부표들이다. 대나무를 따라 떠 있는 부표들이 쭉 펼쳐져 있는 풍경을 보면 장관이다. 울렁거리는 가슴이 더욱 울렁거린다.

항구라고 해 봐야 몇몇 뱃사람들이 오가는 작은 항이어서 드나드는 배라곤 고깃배나 이웃 섬을 오가는 낚싯배, 혹은 연락선 등이 고작이다. 그러한 통통배를 통해서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물어오고 듣고 나가고 들어오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격한 한이 있을 수 없고 신명나게 기쁠 수도 없다. 늘 바다와 들과 산, 파란 세상 속에서 끼룩거리며 산다.

이곳에서 나는 해산물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먼저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키조개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남포에서부터 장안도까지 걸쳐서 분포되어 있는 키조개는 그 맛이라든가 신선 정도에서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조개 특유의 고소하고 감칠맛은 말할 것도 없고 목을 확 뚫어주는 듯한 느낌은 정말 속을 시원하게 한다. 위장에나 목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제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돔은 제주산 돔과 같은 종류라고 생각하면 된다. 살이 지고 신선하여 반쯤 말려 구워 먹으면 쌀밥에 잘 어울린다. 그 다음으로 굴과 김, 매생이이다. 굴은 지금은 일부 양식도 되지만 자연산이 많고 김은 청정한 해역에서 겨울이면 끌어올린 것들이어서 고소하며, 매생이는 장흥 지역에만 나는 특산물로 겨울 비타민 씨이다. 매생이국에 굴을 넣어 마시면 밥이 두 그릇 들어간다. 이 맛이 하두 유명하여 서울 광화문 근처나 서울의 큰 음식점에 가면 겨울이면 매생이국을 꼭 내놓는다.

내 고향, 장흥 관산, 너무나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청정한 정남진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짱둥어처럼 뛰놀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전기철(숭의여대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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