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가리봉동 조선족타운 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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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가리봉동 조선족타운 사라지나
  • 뉴스메이커
  • 승인 2005.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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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귀국 인센티브제·디지털단지조성 발표로 동포·상인들 속속 이탈 중

지난 4월 6일 늦은 오후,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에 사는 송희수씨(70)는 처마 밑으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랴오닝성에 두고 온 둘째아들 생각 때문일까. 한국말을 어색하지 않게 구사하는 송씨는 교포1세다.

“3살 때 랴오닝성 테링시엔으로 갔어. 그러니까 호적은 한국에 있지. 2003년에 한국 와서 국적신청을 했어. 2주 후면 주민등록증이 나와. 그러면 중국에 있는 막내아들(40)을 초청할 수 있으니까 좋기야 좋지.”

현재 송씨와 함께 사는 큰아들(50)은 그녀보다 2년 앞서 몰래 한국에 입국했다. 이른바 ‘불법체류자’인 셈이다. 송씨는 2평 남짓한 단칸방이 다닥다닥 붙은 속칭 ‘벌집’에서 방 한칸을 빌려 불법체류자 신세인 아들과 단 둘이 산다. 임대료는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원. 방 크기가 다른 벌집에 비해 조금 넓어 보일러가 없는데도 월세는 비싼 편이다.

TV와 밥상을 빼면 두 사람이 눕기에 턱없이 부족한 공간에서 생활하지만 그녀는 곧 주민등록증이 나온다는 기대에 그저 즐거운 눈치다. 그 때문인지 몇년째 보금자리 구실을 충실히 해주던 이 벌집이 헐릴 것이라는 ‘예정된 미러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벌집이 헐리면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던 가리봉동 조선족타운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여기 헐리면 다른 데 가야지 뭐”

“지난달 집세 줄 때 집주인이 내년에 이 동네를 허무는데 그때까지 계속 살면 우리에게도 돈이 나온다고 하던데 우리에게 왜 돈을 주겠나 싶어. 그냥 우리를 붙잡아두려고 하는 것 같아. 우리야 여기 헐리면 다른 데로 이사 가야지 뭐.”

집주인이 송씨를 붙잡아두려는 것도 이유가 있다. 가리봉동 조선족타운에 울려퍼지는 ‘귀향아리랑’ 때문이다. 법무부는 3월 21일 국내 체류 중인 동포가 자진 귀국하면 일정기간 후에 재입국할 수 있는 ‘동포자진귀국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중국동포 등이 합법적으로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불법체류자 양산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또 3월 20일 이전에 출국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인센티브를 줘서 출국일 기준으로 통상 1년 이후에 입국사증 발급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과 달리 6개월만 지나도 사증발급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런 방침이 알려지면서 이곳 가리봉동 조선족타운에 머물던 중국동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가리봉1동에서 우리부동산을 운영하는 김학재씨는 “정부의 이번 조치로 벌집들이 임대매물로 쏟아져나왔다”면서 “가리봉1·2동뿐만 아니라 가산동과 대림동, 독산동 일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벌집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가리봉동 조선족타운을 위협하는 것은 또 있다. 가리봉동을 둘러싸고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 있는 디지털산업단지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2006년까지 1단지 8만평을 벤처전문단지로, 2단지 12만평을 패션디자인단지로, 3단지 34만평은 지식산업단지로 조성하겠다는 중장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헐린 ‘벌집’ 560여동 달해

과거 구로공단 60만평에 들어선 아파트형 산업단지는 이미 고층빌딩으로 숲을 이뤘다.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모두 1단지부터 3단지까지 조성된 이 산업단지가 가리봉동 벌집촌을 포위한 형국이기 때문에 단지 조성 이전부터 이곳의 벌집촌은 언젠가는 헐려야 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이미 인근 구로동 일대의 벌집과 쪽방들은 ‘구로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지난해 10월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헐린 벌집이 560여동에 달했다. 구로구 지역균형발전단 김덕연 사업3팀장은 “아직 구체적인 방침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서울시로부터 지역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가리봉동의 벌집촌 철거를 시작하려고 한다”면서 “현재 디지털1~3단지에서 외국인 바이어를 많이 유치하고 있는데 이들이 상담하거나 생산품을 전시할 공간도 제대로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구로구의 계획대로라면 마지막 남은 대형 ‘벌집촌’인 가리봉1동의 중심부는 호텔이나 컨벤션센터 등 업무지원시설이, 주변부에는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가리봉2동 역시 도심형 주거밀집 지역으로 재개발될 예정이며, 남부순환도로는 도시미관을 고려해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가리봉동의 중심이던 가리봉오거리도 사거리로 정비됨에 따라 가리봉사거리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가리봉 일대의 건물주들 역시 하루 빨리 재개발이 착수되기를 바란다. 조선족 동포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임대 수요가 없어 동네가 슬럼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물에 하자가 있어도 지금 같아서는 보수도 할 수 없다.

가리봉동에서 ‘이발관 아저씨’로 통하는 수정이발관 김시권씨(59)는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그는 가리봉동에서 30년째 이발사로 일해온 ‘구로공단의 산증인’이다.

“처음에는 공단에서 일하는 이른바 공돌이 공순이들이 주고객이었지. 비싸면 얘들이 못 오니까 이발비가 1500원이었어. 하긴 요즘 이발비도 5000원이니까 많이 오른 건 아니야. 그래도 당시에는 재미좀 봤지.”

1964년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 가산동 일대에 60만평 규모로 조성된 구로공단은 국내 공업단지 제1호다. 70·80년대 ‘한강의 기적’도 바로 이곳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을 발판으로 섬유나 봉제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을 주로 생산하다보니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경쟁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공돌이’ ‘공순이’도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이 바로 중국동포였다. 특히 가리봉동은 중국동포들에게는 약속과 모임의 장소로 기능했다. 가족과 떨어져 홀홀단신으로 한국에 넘어온 홀아비들은 이곳 노래방의 도우미들을 찾아 남루한 욕정을 해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IMF 이후에 조선족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집주인들이나 상인들이나 돈 좀 만졌다”면서 “그나마 이 사람들이 이곳 경기를 이만큼 끌어온 건데 현대식 재개발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조류라고 해도 시간을 두고 좀 천천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가리봉 일대 상인들은 이런저런 불만의 목소리를 곧 ‘상인연합회’라는 단체를 본격적으로 출범시켜 한데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일선 상인연합회 집행위원장(46)은 “벤처단지가 들어서는 것은 일단 잘하는 일이라고 본다”면서 “다만 기왕 이곳에 머물고 있던 우리 동포들이나 상인들이 계속 머물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선족 위한 소형 주택촌 마련을”

물론 구로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며 주변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선 보기 싫은 벌집촌이 말끔하게 현대식 건물로 바뀐다는 것도 그렇고 우중충한 공단의 이미지가 국내 첨단산업의 중추지역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사실도 그렇다.

다만 이곳의 누추한 쪽방과 벌집에서 작게나마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중국동포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중국인교회의 최황규목사가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호텔도 좋고 공원도 좋고 위락시설도 좋지만 이들에 대한 대책도 없이 밀어붙일 일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곳 가리봉동에서나마 200만 중국동포가 자연스럽게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한국 사회에 동화되는 기회를 가졌는데 이제 이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최목사는 이어 “재개발을 하더라도 이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소형주택촌을 마련해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물론 그의 이런 바람이 자본의 논리 앞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는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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