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슬람의 올바른 담론과 온전한 개념 (1)
상태바
[기고] 이슬람의 올바른 담론과 온전한 개념 (1)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3.07.06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국내에서 올바른 이슬람 담론

최근 필자에게 국내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질문 중의 하나는 “꾸란에는 ‘부인이 말을 안 들을 경우 동침하지 말고 그래도 안 되면 가볍게 때려라’라는 구절이 있다는데... 이 가볍게가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 건지요?”라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미 국내 출판물이나 SNS에서 떠도는 이런 말들의 진위를 필자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국내 학계와 언론 그리고 국내 무슬림 학자들이 이슬람의 올바른 담론을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위 질문 내용은 꾸란 4(알 니사)장 34절에 나오는데 아랍어 꾸란 본문에서는 “와드리부-훈나”라고 하여 “가볍게”라는 말은 아랍어 꾸란 본문에 나오지 않는다(이 구절에 대한 해석과 주석은 따로 다루려고 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성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에서 4장 34절을 찾아보니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가볍게 때려줄 것이니라”(140페이지)고 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성꾸란” 또는 “성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을 학술연구에 절대로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부정확한 꾸란의 의미 번역 책이 우리나라에서 이슬람에 대한 담론을 혼란스럽게 해 왔기 때문이다. 
   
이슬람 철학을 가르쳤던 하미드 따히르 박사는 ‘이슬람의 온전한 개념’이란 그의 글에서 다음 두 가지가 무슬림들의 이슬람 이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비무슬림에게도 잘못된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인데 이는 꾸란과 이슬람의 실제에서 벗어난 이해이다. 꾸란과 순나(무함마드의 말, 행동, 동의한 것)의 말에다가 개인의 생각이나 학설의 생각을 첨가해 이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민의 생각들 속에서 기름진 토양을 찾고 예외 없이 그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고 했다. 

두 번째는 이슬람에 대해 ‘모자란 이해’라고 했다. 이슬람 전체 중 부분만을 알고 다른 부분들은 무시하고 어떤 특정 부분만을 붙들고 있는 경우이다. 이런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슬람을 전공하지 않는 학자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또 꾸란학, 꾸란 해석과 번역 전공을 하지 않는 무슬림이 꾸란을 의미번역한 책을 학생들과 시민들이 그대로 수년간 학습과 연구에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랍에서의 이슬람 담론

한국뿐만 아니라, 아랍에서도 학자와 사상가 및 지성들은 이슬람 담론을 검토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아랍 젊은이들이 무신론에 빠진 이유 중 가장 두드러진 동기 하나가 이슬람 담론이 왜곡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슬람 담론이란 말은 이슬람의 문제에 대한 무슬림의  이해를 가리킨다. 

지난 몇년간 아랍에 널리 퍼진 이슬람 담론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갖고 있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이슬람 이미지를 왜곡했고 심지어 젊은이들을 무신론으로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극단적이고 강경한 담론이 무슬림들 사이에 퍼져 있는데 이들은 표면적이고 문자주의적인 담론을 이상적인 이슬람 이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아랍 무슬림들은 외적이고 문자주의적인 담론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꾸란이나 하디스의 텍스트를 해석할 때 외적이고 문자주의적인 해석을 올바른 이슬람이라고 생각하는 무슬림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무슬림으로 나뉜다.

외적이고 문자주의적인 담론을 따르는 무슬림은 그들의 기준에 따르는 옷차림과 사회생활을 유독 강조한다. 여성이 히잡을 쓰는 것은 논의 대상이 아닌 의무 사항이라고 주장하고 또 사회에서 남녀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그래서 일부 무슬림은 여성이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일부는 여성이 대학교에 가는 것을 금지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