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후보 각기 20만달러 썼다. 대부분 본인 주머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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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후보 각기 20만달러 썼다. 대부분 본인 주머니에서”
  • 뉴욕타임스 보도
  • 승인 2009.04.0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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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한국인들의 낯을 뜨겁게 만드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지난달 29일 치러진 뉴욕한인회장 선거를 놓고 ‘돈 선거’라고 난도질한 기사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이 한인들의 정서를 어찌 이해할 수 있느냐고 성토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은 미국인들의 눈에 비치는 ‘우리들의 자화상’임에 분명하다. 세계 각국에 있는 우리 한인회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거울에 비쳐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기사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세 후보는 각기 20만달러 넘게 썼다. 대부분 본인 주머니에서 냈다. 선거 운동원들을 고용하고 선거사무실을 열고 유세하고 토론하고 지지도를 집계하고, 유세 노래를 녹음하고 대량의 포스터와 어깨띠, T셔츠, 전단과 풍선을 나눠주는데 썼다.

모든 것은 대뉴욕한인회 회장이라는 자리를 위해서다. 한인회장직은 직원들까지 포함한 한인 조직을 대표하는 자원봉사직으로 대체로 의례적인 일을 하는 자리다.

오는 일요일 선거로 막을 내리는 이 선거전은 2년마다 치러진다. 현지 미주한인들을 자극하며 일부에겐 기쁨을, 일부에겐 실망을 안기면서 뉴욕의 다른 주민들과의 시각차이도 드러내는 선거다.

한인 이민자 생활에서 사회 혹은 직업 조직이 갖는 중요성을 나타내기로는 이보다 더한 것도 없다. 한 후보의 선거 매니저로 일하는 김광수씨는 사실만 아니라면 재미있을 법한 내용의 자조적인 농담을 던졌다. 한국사람은 두사람 이상이 뭔가 하기만 하면 조직을 만든다는 것이다.

뉴욕에만 1천개가 넘는 조직이 있으며, 이중 절반 이상이 교회라고 퀸스칼리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민병갑 교수는 말한다. 뉴욕의 한국총영사관에 따르면 뉴욕과 뉴저지, 코네티컷의 한인 인구는 32만4천명으로 대부분 뉴욕에 있다.

한국일보가 만든 단체명부에는 수많은 미용재료상, 네일살롱과 미용인조직과 식품재료상 모임이 실려있다. 여기에는 은행인, 간호사, 약사, 법조인, 보석상, 택배, 부동산 중개인, 와인 공급상 등 있을만한 직업의 조직들이 망라돼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신문은 뉴욕에서 발간되는 5대 한글신문의 하나다.

적어도 12개에 이르는 전우회와 최소 56개의 학교 동창회가 있고, 뉴저지에도 같은 이름들의 우산형 조직들이 있다. 여기에는 뉴저지한인회와 뉴저지중앙회, 대뉴저지한인회, 중부뉴저지한인회, 포트리한인회도 포함된다.

오케스트라와 무용단, 합창단과 문화모임들이 있으며,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정명훈 팬클럽도 있다.

한인사회 지도자들이나 지식인들은 한인사회가 잘 짜여져 있고, 동질성이 높다고 말한다. 대부분이 하나의 언어만 쓰던 작은 나라에서 건너온 지 40년이 안된 새로운 이민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속에서 편안한 느낌을 갖는다”고 민교수는 말했다.

나아가 고국인 한국에서는 모임을 중요시하며 이 같은 관습이 이어진 것이라고 지식인들과 한인사회 지도자들은 말한다. 레크리에이션으로서의 가치를 넘어서 그룹 소속감이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위치를 재확인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동력이 미국에 있는 이민자들에게 특히 중요할지 모른다. 많은 한국계 이민자들이 잘 교육받았으나 그 교육수준에 적절한 직장을 찾지 못했다고 민교수는 말한다. 조직에의 귀속감이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느낌을 더해준다는 말이다.

헌터칼리지에서 아시안아메리칸 연구 및 도시계획문제를 강의하는 피터 궝 교수는 미국에 있는 중국계 이민자들에게도 조직이 생활의 중심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들 미국내의 화교조직은 본국에서 건너온 것인데 반해 한인들은 여기서 독자의 조직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뉴욕한인회는 1960년 창립 이래 오랫동안 새 한인이민자들을 돕는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조직이었다. 이 조직은 새로 온 사람들이 집을 구하고 합법적인 직장을 찾고, 재정적 지원을 받도록 도우면서 그들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했다.

한인회는 한국의 자연재해 구호 등의 명목으로 이민자사회에서 모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인들을 돕는 다양한 사회봉사조직들이 생기면서 대뉴욕한인회는 한인들의 사회생활에서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잃었다.
사실 이곳의 많은 한인들은 이 조직이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른다고 말한다. 이 조직의 이사인 정제영씨도 한인회가 과거와 같은 주도력은 없어졌다고 인정했다.

그는 한인회가 연간 70만달러의 예산으로 여전히 한인들에게 일자리와 집을 소개하고 영어수업, 직업훈련과 사회보장을 받도록 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한인회 업무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했다. 즉 전일제로 일하는 10명의 한인회 직원 중 두 명 정도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이 한인회는 뉴욕에서 매년 이뤄지는 한인축제를 주관한다. 또 웨스트 24번가 거리에 있는 6층짜리 한인회 빌딩의 소유주이기도 하다고 정씨는 말한다.

그러나 한인회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한인사회를 “대표하고 조정하고 뭉치게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사실 한인회는 한국에서 고위층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와 같은 특별 행사나 회의에서 한인사회의 ‘대사’처럼 행동하는 회장을 위한 ‘지원용 마차’ 처럼 보인다.

그는 가끔 ‘코리아타운의 시장’으로 불린다. 현직으로 재선에 도전한 이세목회장도 지난 2년간 200회 이상 스피치를 했다. “우리는 실질적인 일을 하지 않아요. 일종의 상징적인 조직이지요”라고 정씨는 말한다.

이 때문에 한인사회의 일부 사람들에겐 2년마다 치러지는 회장선거에 그처럼 막대한 돈을 쓰는 것이 놀랍고 이해가 안된다.

“너무 많은 돈과 에너지를 낭비해요. 한인회보다 더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많이 있어요”라고 민교수는 말한다. 선거비용은 선거에 깊이 관련된 사람들조차 놀라게 한다.

“정말 이상해요. 만약 이 돈을 선거가 아니라 조직 운영에 쓴다면 나아지는 게 많을텐데…”라고 김씨는 말한다. 그는 하용화 후보의 선거매니저다. 세후보 모두 한인 기업인이다. 이들은 재산공개법에 구속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들의 선거비용도 공개되지 않는다.

각 진영 모두 20만달러 이상 쓴 것으로 지적된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은 자신보다 수만달러는 더 썼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경험에 비춰보면, 한인사회의 아주 작은 부분이 일요일 선거에 참여할 것이다. 지난 2007년 선거에는 6500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에는 1만2500명이 참여했다.

현직 회장까지 포함돼 있는 후보들은 한인회의 이미지와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다. 2세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한인사회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시정부와 주정부는 물론, 다른 이민자사회와의 연결고리고 강화하려고 한다.

“작은 클럽에 의해 운영되지만, 50만명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져요”라고 보험회사 지사를 경영하는 하씨는 말한다.

인터뷰에서 후보들은 아무도 선거에 쓰이는 막대한 비용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정말 그래요”라고 후보 한창연씨는 말한다. 그는 회계회사를 갖고 있다. 그는 선거비용이 아마 바닥이 났을 것이라고 하면서 베테랑 정치인처럼 빠르게 다음처럼 덧붙였다.

“그게 새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지요”        

<뉴욕타임스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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