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에게도 고향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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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에게도 고향은 있는 걸까
  • 도연 스님
  • 승인 2007.03.3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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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인간에게 있어서 ‘고향’ 의 의미는 참 중요하다. 우리에게 고향은 곧 ‘시골’을 떠올리게 되는데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왠지 포근하게 느껴지는 건 익숙한 산과 강과 들 그리고 낯익은 부모형제와 친숙한 마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 알고 지내는 분이 전원주택을 마련했다고 하여 방문한 적이 있다. 주인의 말대로 전망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아담한 주택이 지어져있었다.정원과 집 둘레에는 갓 심은 갖가지 비싸 보이는 나무들도 여기저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심어져 주택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그러나 너무 조용한 게 흠이었다.

첫째는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둘째는 새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창문 밖에서 재잘재잘 아이들 노는 소리는 얼마나 정겨운가. 언제부턴가 도시의 주택가에서도 아이들 뛰노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새들도 아이들처럼 공부하기에 바쁜 것도 아닌데 숲에서 새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새와 더불어 사는 내겐 조용한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는 나무, 새, 곤충, 야생동물 등등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다. 나무 하나만 보더라도 그저 아름답고 멋진 나무만을 고집한다. 새들은 어떤 열매를 좋아하는지, 조금 더 나아가 어떤 곤충의 애벌레가 어떤 나뭇잎을 좋아하는지를 알고 특정한 나무를 심는다면 새와 곤충을 불러 모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 감나무를 심으면 동고비, 박새, 딱새, 직박구리, 딱따구리 같은 새들이 잘 익은 감을 먹기 위해 모여들 것이다. 붉나무 열매는 소금기가 있어 염분을 섭취하기 위해 새들이 모여든다. 강아지풀이 많다면 부처나비를 볼 수 있으며 족도리풀에는 애호랑나비가 살아가고 산초나무를 심으면 제비나비를 볼 수가 있다.

그러니 없애기 위해 제초제를 살포하는 것은 곤충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며 곤충의 애벌레를 먹기 위해 모여드는 새 또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댁의 정원은 온갖 비싼 나무가 심어져있을 뿐 정작 곤충이나 새들이 살아갈 수 있는 흔한 나무와 초본식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내가 수행하는 암자 주변의 나무에는 수십 개의 인공 새집이 매달려있다. 숲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질 뿐더러 늘어나는 들고양이와 청솔모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번식을 도울 생각으로 인공 새집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는데 인공 새집의 입주율이 80 퍼센트나 된다.

인공 새집은 초겨울에 달아주어야 새들이 낯을 익히고 추운 겨울 한파를 피하게 된다. 인공 새집과 더불어 먹이를 공급하는 먹잇대도 만들어주었는데 먹이는 주로 겨울에 공급하며 청싸라기, 수수, 조, 홍화씨, 해바라기씨, 호박씨 등을 주며 한겨울에는 단백질 공급을 위해 쇠기름을 나무에 매달아준다.

겨울에 영양공급을 충분히 받은 새들은 이듬해 봄 번식률이 늘어나는 게 확인되었다. 내가 관심을 갖는 새들은 암자 주변의 새들 뿐 아니다. 매년 10월이면 멀리 몽골, 중국, 러시아 습지에서 흰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월동을 하기 위해 철원평야로 날아오는 두루미도 나의 관심분야이다.

나는 10년 전부터 두루미를 관찰하고 촬영하고 있다. 두루미는 지구상에 약 2천여 마리가, 흰두루미는 1천여 마리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들의 반 수는 일본으로 날아가 월동하고 나머지는 철원 DMZ 인근 들판에서 겨울을 보낸 후 이듬해 3월 말을 전후로 모두 북쪽 고향으로 돌아간다.

두루미는 멸종 위기종으로 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흰두루미 202호, 재두루미 203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루미는 평생을 일부일처로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어린새들을 데리고 다니며 양육을 하거나 가족단위로 생활하는 등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인간을 빼닮기도 했지만 오히려 귀감이 되기도 한다.

새들의 고향은 어디일까. 고향을 묻는 질문에 무슨 산부인과 병원, 이라고 대답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듯 누구나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태어난 곳은 ‘출생지’ 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예전처럼 이동이 쉽지 않을 때에는 출생지에서 소년기를 보내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에 ‘고향’ 운운하는 말이 설득력이 있었겠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이사가 잦은 요즘 세대들에게 고향을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새들은 어떨까, 새들도 고향이 있는 걸까. 철원 들판에서 일 년의 반을 보내는 두루미들에게 고향은 어디를 말하는 걸까.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정 붙이고 사는 곳이 고향’ 에 해당되는 것일까...?

북쪽 아무르강(흑룡강) 습지의 넓이는 가로 세로 200-300 킬로미터나 된다고 한다. 많은 두루미들이 이곳에서 태어나는데 나는 이곳을 두루미의 고향으로 말하기보다는 ‘번식지’ 로 말하는 걸 좋아한다. 새들은 그곳에서 번식을 마치고 철원 들판으로 날아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두루미의 고향이 철원 들판이라며 억지를 부리고 싶지는 않다.

반야심경에서 ‘불생불멸하고 불구부정하고 부증불감 하느니라’고 이른 것처럼 굳이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하는 게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나는 것도 멸하는 것도,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느는 것도 주는 것도 없다는 뜻이다.)

두루미가 철원 평야에서 월동하는 시기인 겨울철 6개월간은 내가 들판에서 살다시피 하는 시간이다. 뜻 맞는 사람들과 먹이(옥수수나 밀)를 확보하여 두루미가 좋아하는 일정한 장소에 공급하며 어미와 어린새의 숫자를 조사하고 활동범위나 건강상태를 기록, 촬영하기도 한다.

재두루미는 철원 평야에 가장 많은 숫자인 1천 여 마리가 월동하고 있으며 김포평야와 천수만 정주영 들판에 수십 마리가 그리고 창원 주남 저수지에 50여 마리가 월동하고 있다. 순천만에는 약 200 여 마리의 먹두루미(흑두루미로 불리는데 나는 먹황새를 흑황새로 부르지 않는 것처럼 순수한 우리말로 먹두루미로 불려야 옳다고 여긴다.) 가 월동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나는 한달에 두세 번씩 두루미의 이동경로를 따라 월동지를 방문하여 며칠 씩 머무르며 새들을 관찰하며 촬영하고 있다. 불과 수십 년까지 만해도 두루미는 우리나라 들판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새였지만 환경이 바뀌면서 새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특별한 몇몇 곳에서만 목격되는 귀한 새가 되고 말았다.

인구가 늘수록 새 뿐 아니라 야생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겠고, 고향 들판에서 두루미를 만날 수 있는 확률도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고향을 찾을 때 낮 익은 얼굴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슬픈 일이 있을까.

겨울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과 망원경과 조류도감을 준비하여 철새도래지를 방문하거나 이번 설 때 고향 마을에 어떤 새들이 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우리가 정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누려야할 대상이며 마땅히 존중받아야할 대상이다.

사람도 그런 것처럼 그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대접 받을 때 그들은 우리를 친구로 여기고 해마다 새로 태어난 어린새들을 앞세우고 마치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찾는 것처럼 우리 곁으로 날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