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새해’는 제발 한 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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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새해’는 제발 한 번만
  • 정길화
  • 승인 2007.02.2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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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화 문화방송 PD·본지 칼럼니스트
2월 18일 올 설날도 어김없이 TV방송의 출연자들이 곱게 한복을 입고 나와서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를 합창했다. 어느 방송사에서는 정시 뉴스의 앵커들도 나란히 한복을 입고 나와서 한결같은 말을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니. 지난 1월 1일에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듣던 얘기다. 그 때의 새해는 무엇이고 이번의 새해는 무엇인가. 나는 헷갈린다.

연전에는 ‘새해 해맞이’를 양력 1월 1일(신정)에도 하고 음력 1월 1일(설날)에도 하곤 했다. 1년에 두 번씩 하는 새해맞이. 생각하면 당치 않은 일인데 시속(時俗)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신정의 해만 새해로 치는지 설날의 새해맞이는 요즘 방송에는 덜 나오는 듯하다.

새해가 1년에 두 번이나 있는 나라. 바로 우리 한국이다. 과문한 탓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지는 나는 모른다. 태음력의 전통이 남아있는 나라는 많지만 가까운 중국도 원단(元旦)은 1월 1일이고 음력 1월 1일은 따로 ‘춘절(春節)’로 치고 있다. 물론 양력 원단 때보다 더 오래, 일주일씩 놀긴 한다.

그러나 양력 1월 1일엔 ‘신니엔콰이러(新年快樂 새해에 즐거우세요)’를, 음력 1월 1일에는 ‘춘지에콰이러(春節快樂 춘절에 즐거우세요)’를 외친다. 소위 신중국 이후에 정착된 일이라고 하지만 중국인에게 새해는 어디까지나 양력 1월 1일인 것이다.

올해는 정해년(丁亥年)이라고 한다. 600년 만의 황금돼지해라고 말이 많더니 이것이 근거없다는 얘기도 돌았다. 그런데 띠는 설날이 아니고 입춘을 기점으로 바뀐다는 것이 역술계의 정설이란다. 조금 있더니 그게 아니고 띠는 동지를 기점으로 바뀐다고 주장하는 도사들도 나왔다.

혹자는 “양력 1월 1일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정한 것이니 법적인 새해로 치고, 음력 1월 1일은 전통적인 설날이니 그 날도 새해로 친들 나쁠 것 없지 않느냐. 새해맞이를 또 하며 1년을 다짐하는 웅지를 새로 한번 더 품어 나쁠 것 없지 않느냐”와 같은 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 식이면 1년에 새해를 왜 2번만 하는지 모를 일이다. 입춘도 하고 삼월 삼짇날도 하고 우수, 경칩, 춘분, 청명, 한식은 왜 새해로 못할 일이겠는가. 칠정산 내외편과 앙부일귀, 측우기를 발명한 빛나는 과학적 전통을 가진 우리가 역법(曆法)의 기본인 새해조차 표준으로 확립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작금의 ‘새해상업주의’는 새해 신수보기를 한번이라도 더 띄워야 하는 미아리 역술업계와 새해를 한번 더 해서 시청률 올리기상 나쁠 것 없는 미디어의 합작품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돌이켜 보면 전통적으로 우리는 음력을 사용해 왔다. 그래서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기렸고 그것이 우리의 원단(元旦)이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일제가 양력을 강요했다. 당시 민간에서 음력 설날을 쇠는 것은 민초들의 말없는 반일운동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건국 이후에 국가의 공식 달력은 세계 조류를 따라 양력을 사용했고 음력설은 밀려났다. 이것은 박정희 정권 때에 더욱 확고부동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양력설이 거의 자리를 잡았나 했는데 이후의 유사권위주의 정권에서 음력설이 부활되고 설 연휴가 슬금슬금 3일로 늘어났다. 반대로 신정은 하루만의 휴일로 줄었다. 그야말로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가 되었다. 인기없던 정권이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국민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을 택한 것이었다.

이 때 음력설을 부활하되 ‘조상의 날’, ‘경조일(敬祖日)’ 등의 명칭으로 하면 어떠냐는 논의가 잠깐 있었는데 ‘설날 부활’이라는 거센 기류에 밀려났다. 결국 박정희 정권이 그렇게 막으려 했던 이중과세(二重過歲 ‘설을 두 번 쇤다’는 뜻)가 다시 확산된 것이다. 그러고 근 20년이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지금처럼 음력 1월 1일을 전통의 명절로 삼는 데는 이의가 없다. 이로써 전세계 한민족 공통공유의 문화가 된다면 환영할 일이다. 다만 새해는 모름지기 1년에 한 번이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두 번씩이나 아무 생각 없이 답습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새해 첫날은 신정인 양력 1월 1일로 하고 음력 1월 1일은 ‘원단(元旦)’의 뜻이 들어가지 않는 다른 명칭으로 삼을 수 없는지-‘설날’에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뜻이 들어가 있다-순수한 마음으로 사계에 제안한다. 2008년에는 달라질 수 있을지 또 1년 뒤를 기다려 본다. 부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는 1년에 한 번만 들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