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 출렁이는 내마음의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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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 출렁이는 내마음의 안식처
  • 이호산 수필가
  • 승인 2007.01.2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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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8.전라북도 부안군

▲ 새롭게 2007년 정해년을 맞이하는 격포의 일출 모습이 장관이다.
내 마음속 기러기 몇 마리 날아 서해로 간다.

그곳은 진펄밭 위의 겨울 강물이 따듯한 곳, 아내가 차를 몰아주고 내소사 앞에서 모항 고갯길을 넘고, 작당마을 고갯길을 내려섰을 때, 후끈한 저녁노을 속에 그 기러기떼 아직도 노을 딛고 차창 밖을 날고 있었다.

끼룩끼룩 찬 울음이 아니라 이렇듯 따듯한 울음을 이 地上에서 나는 아직 받아본 적 이 없다.

그래, 오늘 나는 격포에 이사 간다.
책 몇 권, 솥단지 밥그릇, 국그릇 한 벌 등에 지고 너희 울음 따라간다. 큰 울음 속에 작은 울음, 잠시면 저 노을 속에 묻힐 아무렇게나 차 속에 널어놓은 수저통에서 뛰쳐나오지 못하고, 나는 그 동안 얼마나 세상을 향해 요란한 소리를 냈던가 아아, 수저통에 마지막 비치는 저녁노을, 침묵 같은 울음 따라 간다

너희들이 발 디뎌 내려앉을 곳, 나는 안다 그곳은 이승의 십승지, 외변산, 내변산이 몇 마리의 기러기로 떠서 차창 밖을 날아 마지막 날개를 접는 곳, 너희 깃털이 地上의 이불을 덮은 곳, 나는 오늘 인생을 蓮꽃같이 접어 격포에 이사 간다

너희 따뜻한 울음 속에 큰 병 하나를 마미 밥통 속에 숨기고 따뜻한 울음 받으며 간다.
- 송수권의‘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중에서

고향이 그리워서일까, 한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해넘이나 해맞이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늘 가족과 함께 새해맞이 해돋이를 보러 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휴기간 중 고향 부안에서 해넘이를 보기로 계획을 바꾼 것이다.

해를 보면 경건해진다. 붉은 해를 보면 내 안에 숨겨 둔 마음들이 해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그리고 해는 나를 송두리째 빠져들게 만든다. 그런 마력 때문일까. 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기도가 나온다. “2006년도 아무 탈 없이 잘 보내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해가 수평선에 걸려 있을 때쯤이면 한 해에 있었던 액운들을 수평선 너머로 밀어버리고 2007년에 새로 돋아 난 해를 맞이하면 나는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다. 그런 기분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싶은 바람일 것이다.

환상의 섬 위도
위도는 격포로부터 40여 리 서해에 위치한 섬으로, 조기어장의 중심지이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해마다 봄, 가을이면 조기떼가 몰려들고,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 고깃배와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파장금항엔 파시(波市)가 들어섰다. 이‘위도파시’는 흑산도, 연평도와 함께 서해 3대 파시로 유명했었다.

영광굴비의 명성도 이 무렵에 얻어졌는데, 본래는 부안군 소속 섬이었던 위도가 한 때(1896년) 전라남도 영광군에 소속되었다가 1963년 다시 부안군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서해 훼리호 참사 위령탑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10분, 승객 362명을 태운 서해훼리호가 파장금에서 격포로 운항하다 임수도 북서쪽 3㎞ 해상에서 높은 파도를 2~3차례 맞고 침몰하는 사고 있었다.
이 사고를 당한 292명의 귀중한 생명을 기리기 위해 파장금항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언덕에 위령탑이 세워졌다. 그리고 이후 위도는‘통곡의 섬’으로 불리기도 했다.

위도 순환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입담 좋은 운전기사 아저씨가 위도를 흥겹게 설명한다. 아저씨의 구수한 말솜씨가 버스 차창 밖 풍광을 더 정겹게 느껴지게 하고, 그의 고향 사랑하는 마음이 진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섬 위도에는 치도리갯벌(설물 때는 바닷길이 열린다), 깊은강해수욕장, 위도 띠뱃놀이축제 등 볼거리가 많다.

위도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선상에서 노을을 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위도가 주는 선물에 감사했다. 우리는 이렇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삶의 기쁨을 얼마나 느끼며 살까? 잠시, 일상의 틀을 벗어놓고 마음을 열 때만이 느껴지는 행복이다.

배가 격포로 들어서는데 정말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격포 방파제에 모인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방파제 끝자락에 서 있는 등대 위로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람들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려고 격포로 모였든 것일까?

아마도 그들은 저무는 해를 보내며 마음속 소망을 빌 것이다. 나쁜 일들은 모두 노을 빛 속으로 보내고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들의 소망들이 햇살처럼 빛나기를 바란다.

등푸른 햇살이 튀는 전나무 숲길 지나
내소사 안뜰에 닿는다
세 살배기나 되었을 법한 사내아이가
대웅보전 디딤돌에 팔을 괴고 절을 하고 있다
열배 이배 삼배 한번 더,
사진기를 들고 있는 아빠의 요구에
사내아이는 몇 번이고 절을 올린다
저 어린 것이 무엇을 안다고, 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 문이 환히 웃는다
사방연속으로 새겨진
꽃창살무늬의 나뭇결을 손끝으로 더듬다보니
옛 목공의 부르튼 손등이 만져질 듯하다
나무에서 빼낸 옹이들이
고스란히 손바닥으로 들어앉았을 옛 목공의 손
거친 숨소리조차 끌 끝으로 깍아냈을 것이다
결을 살리려면 다른 결을 파내어야 하듯
노모와 어린것들과 아내를 파내다가 이런!
꽃 창 살 무 늬
옹이 박힌 손에 붉게 피우곤 했을 것이다

- 박성우의 ‘내소사 꽃창살’중에서

내소사의 일주문과 전나무 숲길
숲길을 걸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특히 눈으로 뒤덮인 숲길은 환상적이다.

부안의 대표적인 절경 중 하나인 600m에 달하는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은 절로 심호흡을 하게끔 하는 장관을 보여준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전나무 숲길을 걸어 다시 고향 부안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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