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의 교집합으로 당당히 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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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의 교집합으로 당당히 서기를
  • 고유정
  • 승인 2007.01.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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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브라질 혼혈 아동의 정체성
▲ 브라질 교육은 교과서나 시험 위주의 학습만이 아니라 다양한 야외 학습을 통해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울림의 학습을 위주로 하고 있다. 사진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브라스 밴드의 공원 연주.
지난 해 미국 슈퍼볼 대회의 MVP 하인즈워드가 한국에 왔을 때의 한국 언론 보도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오늘의 화려한 영광 뒤엔 가슴 시린 날들을 이겨낸 그의 어머니 김영희 씨가 있었기에 그 작은 동양여자에게 키스 세례를 퍼붓는 크고 강인한 피부색의 하인즈워드의 모습을 대서특필하는 것을 멀리서 보면서 혼혈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올해로 이민 44년이 된 브라질에도 서서히 타민족과의 결혼이 늘어나고 있다. 브라질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를 배워 브라질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게 섞여 살아가고 있지만, 결혼만큼은 한국 사람과 하는 것을 크나큰 축복으로 여기던 어른 세대들은 그래도 이왕이면 한국 며느리나 사위를 얻고 싶어 하는 마음에 아쉬움을 남몰래 성토하곤 한다.

하지만 사랑엔 국경도 없다는데, 1억 8000만 명의 브라질 사람 속에서 소수 집단인 한국 교포들끼리의 결혼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수요 공급의 불균형은 이미 예고된 것이기에 놀라운 것도 아닐뿐더러 사랑해서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자는데 꼭 한국인끼리의 결혼이어야만 한다는 논리도 어불성설이다.

국제결혼 중엔 브라질 사람과의 결혼이 가장 많지만 민족적으로는 일본 사람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아무래도 외모나 문화적으로도 이질감이 적어서 그런지 그나마 일본인과의 결혼은 대체로 반기는 쪽이다.

자식 가진 부모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바로 흑인과의 연애다. 브라질인의 원래 피부색은 까무잡잡할 정도의 진갈색이다. 그러다가 포르투갈의 침략에 의해 유럽 백인종이 섞이고 그 포르투갈인들이 다시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수입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독립 이후엔 전 세계를 향해 이민의 문을 활짝 열어 놓다보니 일본인, 중국인등의 동양인종도 섞이게 되고 최근엔 남미 인근의 경제 불황 여파로 점점 밀려드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파라과이 사람들까지 밀려와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인간 전시장 같은 곳이 브라질이다.

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모두가 친구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인종 차별이나 종교 등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적인 발언이나 글, 행동을 할 경우 보석금 없이 1~3년간의 감금형에 처하는 엄격한 법에 따라 브라질에서 태어나면 무조건 브라질인, 브라질에서 함께 살고 있으면 모두가 친구라고 받아들이는 어울림의 문화를 갖고 있는 곳이 브라질이다.

그래서 피부색이나 민족성 때문에 크게 차별을 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포들은 흑인과의 결혼만큼은 결사반대하는 뿌리 깊은 차별인식을 갖고 있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밖에 나와 살다보니, 국제결혼까지는 눈 감아 주겠으나 흑인만은 안 된다는 이중적인 인식. 그 것은 바로 눈에 티 나게 드러나는 혼혈 자손에 대한 염려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흑인은 무조건 제외시킨 상태에서의 내 사랑 찾기란 어쩌면 브라질에선 너무나 가혹한 반쪽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당연히 혼혈 아동이 증가하는데,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브라질 민족 자체가 섞인 민족이어서 그런지 브라질에선 피부색이 다르다고 두 번 쳐다보는 일은 없다. 그러나 단일민족의 혈통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은 여전히 조금은 껄끄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다보니 혼혈 가정은 아무래도 문화가 다른 두 집단의 어울림에 장애요소가 많아 자연스럽게 한국인 모임에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대게 한국인들은 한인촌을 형성하여 모여 살지만 혼혈 아동을 둔 가정은 한인들과의 모임에 참여율이 낮고, 특히 이혼을 할 경우 한국인 친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일반 한국 이민자들보다 어려운 처지가 많다.

이미 우리 한국인들은 세계로 흩어져 살기 시작한 지 오래고, 지금도 이런저런 이유로 밖으로 눈을 돌려 떠나고 있으며, 또한 한국에도 어떤 형태로든 타국의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언제까지 단일민족이라는 막연한 오만함, 거기다 정체불명의 순수혈통주의만이 곧 애국인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면 이미 한쪽을 한국인 부모로 두고 태어난 많은 아이들과 또 앞으로 태어날 더 많은 아이들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한국 정부에서 먼저 손 내민 따뜻한 지원과 혜택을 받는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은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브라질과 한국 양쪽의 피를 갖고 태어난 인연을 넘어 브라질과 한국을 잇는 당당한 가교의 역할을 해나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