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와 고려인, 그리고 바리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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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와 고려인, 그리고 바리신화
  • 김종헌
  • 승인 2006.11.1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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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의 신화를 닮은 고려인

▲ 김종헌(동북아평화연대 교류지원국장)
해동조선국 일곱째 딸로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바리데기, 아버님을 구할 생명의 약수를 얻기 위해 서천서역 일곱 고개를 넘고 넘어 세월의 풍파를 헤치고, 마침내 아버님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수명을 관리하고, 죽음을 안내하는 무조신이 되는 신화속의 인물이다.

고려인의 운명이 그렇다. 140년전부터 한반도의 기근과 지방관리의 폭정으로 연해주로 살길을 찾아 떠났고, 나라를 일본으로부터 빼앗기자 연해주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세웠다. 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떠나야 했고, 남북이 분단이 되자 우리에게서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된다.

더욱이 소련의 분리, 독립으로 중앙아시아국가들의 경제, 정치적인 혼란과 민족주의의 강화로 고려인들이 아버지, 할머니의 고향인 연해주로 돌아오고 있는 걸 보면, 마치 바리데기가 버림을 받고 서천서역을 헤매고 있는 것과 같이 고려인은 지금도 유랑 중이다.

고려인이 바리공주와 비견될 수 있는 것은 고려인이 고국에 버림받고, 수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의 수난 속에서 고려인들은 좌절을 딛고 희망의 싹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해주의 영토는 남북을 합친 한반도의 약 3분의 2정도, 광할한 대지의 땅이 거의 비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철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계되는 지점이 연해주이며, 근처의 극동시베리아에는 석유, 가스 등의 에너지 자원의 보고이다. 드넓은 대지에는 개발 가능한 농지면적만 한반도 전체의 농지면적과 비슷할 정도로 엄청난 가능성를 품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연해주, 중국의 훈춘, 북한의 나선지대는 일개 국가에 갖혀 있으면 그냥 변두리에 지나지 않는 지역이지만 세 지역을 서로 연결하여 상호 보완하고 협력하는 길이 열리는 순간 국제적 협력개발지대로서 “금삼각”지대의 엄청난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연해주가 미래의 한반도에 차지할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감안했을 때 그곳에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선물, 험난한 민족사의 역경이 가져다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현대판 바리공주, 연해주의 고려인,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서천서역을 지나고 있다. 연해주로 돌아온 그들은 당장의 살 것을 걱정해야 되고, 한러관계이니, 민족문제, 동북아평화니 이런것들은 아직 사치스러운 고민일 것이다. 동북아평화연대의 활동도 우선 고려인이 정착지원을 지원하고 민족교육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지원을 위주로 펼져지고 있다.

그러나 신화가 꿈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듯이,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꿀수록 그 꿈은 신화가 아닌 현실이 되리라 믿는다. 고려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활동은 한계가 분명하다. 농업정착프로그램을 같이 하는 고려인의 땀과 눈물에서 그들과 함께 새롭게 러시아의 농업을 개척하고, 남과북, 러시아인이 함께 광할한 연해주 농토를 개간하는 그런 가능성을 본다. 새싹은 이미 여러군데서 뿌려지고 있다. 다만 우리가 새싹을 키우지 않는 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