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을 멕시코 애니깽 농장에서 고통과 눈물 속에서 사라져간 1033명의 영혼들께 바칩니다’ - 연극 <애니깽> 작가 고 김상렬.
지난 1988년 고 김상렬 씨가 초연한 연극 <애니깽>이 18년이 지난 13일 1033명 영혼들의 후손들이 보는 앞에서 연극 무대로 다시 펼쳐졌다.
<애니깽>이란 선인장과에 속하는 용설란의 일종으로 독소가 많고 밧줄과 카펫의 원료로 재배되고 있는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특산물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국민들에게 <애니깽>은 1904년 멕시코로 간 조선인들과 그 후손들을 일컫는 말로 각인 돼 있다.
당시 조선인들은 하와이 이민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영국 선박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한달 반만에 도착한 곳은 멕시코, 지옥보다 더 한 곳이었다. 하루 1천개의 애니깽 잎을 따지 못하면 채찍으로 맞으며 노예처럼 생활했던 곳이다.
조선인들은 이 고통스럽고 힘든 생활을 견뎌내며 삶의 터전을 일구어 냈다. 그렇게 삶의 터전을 일구기까지의 슬픈 역사 이야기를 초연 당시에는 커다란 사회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조선인들의 슬픈 역사를 <애니깽> 후손들이 직접 ‘한국 땅에서 한국의 연극’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극단 김상열연극사랑(대표 한보경)은 지난달 4일부터 인천 부평에서 재외동포재단과 주멕시코한국대사관이 실시하는 제1회 멕시코한인후손초청 국내 직업교육 훈련생 30여명을 지난 13일 연극무대 손님으로 초청, 특별공연을 한 것.
대부분이 <애니깽> 후손 3,4세들인 훈련생들은 자신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멕시코에 와서 힘들게 정착했던 이야기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꼈다. 공연 내내 후손들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공연을 본 후 후손3세인 마리아(27)씨는 “모든 장면에서 감동을 받았다. 특히 농장에서 고생하는 모습들과 굶주림과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은 것이 가장 가슴에 아팠다”고 소감을 말했다.
또 후손4세인 호르헤(29)씨는 “충격적이었다. 할아버지와 친지들에게 들어왔던 내용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김상열연극사랑 이효숙 실장은 “<애니깽>후손들을 초청하게 된 계기는 저희 극단이 공연을 올리면서 ‘연극사랑나누기’라는 행사를 펴고 있는데 보통 소년소녀가장이나 장애우들을 초청하는데 이번 연극 내용상 멕시코나 쿠바쪽을 알아보다가 MBC 멕시코 이민 100주년 특집 3부작 <에네껜>을 연출한 정길화 PD를 통해 알게 돼 이들을 초청하게 됐다”며 “때마침 후손들이 한국에 와 있을 때 공연을 하게 돼 더욱 좋은 공연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