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민족성 절대 잊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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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민족성 절대 잊지 않았으면”
  • 정재수 기자
  • 승인 2006.09.20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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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일동포 3세 혜정박물관 김혜정 관장

가을바람이 유난히 시원하게 불던 20일 경희대 수원캠퍼스 중앙도서관 4층에서 김혜정(60·사진) 혜정박물관장을 만났다.

막상 기자의 눈으로 본 고지도들은 한 수집가의 노력과 정열을 떠나 한 국가의 전문 박물관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그 사료적 가치 또한 높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00년 한학자이신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일본과 연을 맺은 김 관장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3세다.

일본에서 17년 동안 마케팅연구소장을 하며 번 돈으로 한국과 관련된 고지도들을 사 모으기 시작, 고지도만 1500여점에 이른다. 자료를 수집하게 된 계기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한국으로 오게 된 얘기, 20년 동안 이끌어온 제주 정박아복지재단 등에 김 관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 혜정박물관 김혜정 관장. 사진=오재범 기자
-한국으로 오게 된 계기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나는 어디에서 왔나?” 내 피가 조선인의 피라고 생각하니 당연히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형제들이나 친구들 모두 일본에 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의 조국인데 한국으로 오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지도를 모으게 된 계기는.
“30여 년 전 학생 시절 일본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고지도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됐다. 색채와 디자인,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뒤 지도 수집에 매달렸다. 이후 일본에서 마케팅 연구소를 운영하며 전 세계를 돌며 지도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요즘도 고지도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조선인으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기에 한국이 포함된 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 지도가 주류를 이루게 됐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도 고지도로 증명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있어 큰 자부심으로 다가온다.”
 
-소장하고 계신 고지도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대영박물관도 한국과 관련된 아시아 지도가 300여점 정도 가지고 있는데 반해 내가 수집한 것이 1500여점이다. 올해만도 324점을 모았다. 특히 혜정박물관의 자랑은 우리 역사와 관련된 지도는 시대별로 대부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유럽, 일본 등 세계를 돌며 더 모을 생각이다.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정도 입니까”라고 질문하시는 분들도 간혹 계시지만 여기의 고지도들은 돈으로 따질만한 가치를 이미 넘어섰다.”
 

▲ 김혜정 관장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지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오재범 기자
-고지도를 수집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치 있는 고지도가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바로 비행기를 타고 세계 어디든지 달려간다. 북경의 경우 67회를 다녀왔고, 유럽으로 거의 매년 수집여행을 간다. 어떤 경우에는 고지도 한 장을 수집하기 위해 여섯 번이나 비행기를 탄 적도 있다. 갈 때 마다 지도의 가격이 올라있는 경험도 했다.”

-소장품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소장품이 있다면.
“고지도 어느 한 장도 내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자식이 여럿 있어도 부모는 모든 자식이 예쁘다. 나에게 고지도들은 자식과 같은 존재다.”
 
-‘간도에서 한라까지’라는 전시회를 하는데 제주도에서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다음달 14일까지 제주한라대학 한라아트홀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다. 고지도를 통해 간도에서 한라까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행사를 하고 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외할머니의 고향이 제주도다. 외할머니를 13년 동안 모시면서 제주도 방언에 대해서는 제주사람들보다 잘 할 수 있다. 난 그 말이 한국의 표준어 인줄 알았다(웃음).”
 

▲ 혜정박물관 김혜정 관장. 사진=오재범 기자
-제주도에 정박아들을 위한 복지재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혜정원이라고 지난 1985년 설립했고 24시간 보호대상자가 40여명,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70여명 정도 있으며 올해 20주년 후원의 밤을 가졌다. 현재 나의 전 재산을 기부한 상태이고 평소 ‘사회의 어머니’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에 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평생 아이들을 보살피며 살아갈 것이다”
 
-세계 동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지도를 보면서 우리 지구촌에는 두 종류의 민족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는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민족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민족으로부터 지배를 받는 민족이다. 지배하는 민족은 지역문제를 잘 연구하고 지도를 잘 만들었다. 우리 한민족은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진 것이 늦었으며 부족했다. 우리 주변국가인 일본과 중국은 세계적으로 지도에 대한 관심이 높은 국가였으며 잘 만드는 민족이었다. 현명한 자는 역사 속에서 배운다고 한다. 박물관을 설립한 것도 우리 국민들이 고지도를 통해 지난 역사를 재검증하고 지배받지 않는 민족으로 성장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를 잊지 말고 피와 민족을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신다면.
“난 재일동포 3세다. 재일동포로서 대한민국에 와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적인 예로 핸드폰 하나를 사려고 해도 주민번호가 없으니 다른 사람 명의로 사야한다. 또 선거때가 되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선거를 하지를 못한다. 현재 세계에 나가 있는 동포들은 조선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 지역에서 꿋꿋히 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내 조국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대한민국이 이제는 넓은 포용력으로 이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혜정 관장은>
동경 공립여자대학 문학부 졸업(1968년)
동경산업대학 경영학연수실 연수(1969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1991년)
동국대 석좌교수(2000년)
경희대 석좌교수(현)
경희대 혜정문화연구소 소장(현)
경희대 혜정박물관 관장(현)

<혜정박물관은>
지난 2005년 경희대 수원캠퍼스에 개관한 혜정 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고지도 박물관이다.
혜정박물관은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 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 및 지도첩, 고지도 관련 사료, 고문헌 등이 전시된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고지도 전문박물관이다.
또 혜정박물관은 총 1000여평에 3개의 전시관 및 특별체험관, 수장고, 자료실, 연구실, 세미나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전시실에는 수장하고 있는 총 1500여점의 고지도 중 일부인 15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제1전시실은 고지도에 대한 개관 및 서양고지도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형태와 명칭표기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제2전시실은 서양고지도와 우리의 영토를 주제로 서양고지도에 나타난 우리나라, 제주도, 울릉도와 독도, 백두산과 간도 등을 볼 수 있는 장소다. 제3전시실은 서양고지도와 동해 명칭표기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혜정박물관에는 전시실 외에 혜정박물관 소장 고지도를 목판이나 고무판화로 복각, 직접 탁본을 해 볼 수 있는 체험정보실도 마련돼 관람객이 고지도와 더욱 친해질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은 이 대학 수원캠퍼스 중앙도서관 4층에 있으며 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사이에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