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그날 그리고 그후
상태바
6.25 그날 그리고 그후
  • 실비아 패튼
  • 승인 2006.06.28 0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5 그날 그리고 그후

1950 년 한민족끼리의 전쟁으로인해 그후로생긴 전쟁의 산물, 색깔이다르고 낮설은 사람들이 한국을 도와주기위해 미국에서 많은군인들을 파견했다. 그럼으로인해 국제결혼은 형성되고, 우리와 피부색깔이 다른 혼혈이 태어나게된다.

6월25일 밤 몰아치는 폭풍우와 천둥소리는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어천아배 어천아배” 어머니 나라에서는 나를 천대하고 아버지 나라에서는 나를배척하네” 혼혈아들이 태어나면서 우는소리이다. 우르렁거리며 하늘은 수만가지로 빛을쪼개 고 분노에찬 응어리를 토해내고있었다. 56년전 전쟁의 광음소리도 이랬을것이다.

국제결혼으로인하여 미국으로 남편을 따라 이민을 오게되고 지금까지 살아온날들과 다른사회에서 삶의 터전을 잡아야했다. 고독과 외로움속에서도 서로의지하고 친목을 나누기위해 시작한 국제결혼여성들의 모임인 한미여성회를 조직하게된다.그러나 우리는 친목의 성격에서 더나아가 미주한인사회를이루는데 많은봉사를 하는한편,

40여년동안 우리는 가족의 이민정착을 도와가며, 미주류사회와 징검다리역활을하며, 이민 백년의 역사 속에 진정한 봉사와 사랑의 참뜻을 심었다. 또한 우리가 구성하게 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에게 한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왔고, 미주류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도 노력을 아끼지않았다

국제결혼여성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혼혈인들의 차별금지를위해 기지촌여성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한국인속해 잠재되있는 인식을 전환시키고자 노력하며 우리의 목소리를 하나로 우리의 희망을 하나로 우리의 열정은 타오르는 용광로같이 식지않을것이다.

지난주말 각지역에서모인 한미여성총연의 회원들은 그들의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미주 구석구석에서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실행하고있었다. 30대부터 70대까지 우리는 국제결혼을 했다는 이유하나만으로도 하나로 똘똘 뭉칠수가있었다, 우리에겐 무언가 통하는것이있었고, 친언니, 동생같이 또는 엄마같이 그렇게 어우러져 6월25일의 슬픔과함께 따뜻한 정을 나누며, 언제나 우리가 모든사람이 평등한 세상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날이 오길 간절히 바랬다.

한인사회의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갓 이민 온 가정을 이끄는 우리의 어머니를 위해, 차별과 멸시속에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온 혼혈인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그리고 이중의 문화 속에서 갈등하는 다문화 가정 여성들을 위해 우리는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할것이다.

실비아 패튼
한미여성회 총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