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도박과 도박중독, 한인사회 좀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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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도박과 도박중독, 한인사회 좀먹는다
  • 데일리 뉴스
  • 승인 2006.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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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9일 한인이 운영하는 만화가게에 설치된 성인용 오락기계 6대가 경찰에 압수당하는 모습
[ 데일리 뉴스 06/02/2006 ]

한인사회의 명암 진단... 도박, 파멸에 이르는 병(1)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도 아니면 모' 또는 '흑 아니면 백' 식의 극단적인 경향이 강하게 존재한다고들 말한다. 이런 성향은 정치적인 문제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민오락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고스톱으로 상징되는 도박은 한국인의 극단성을 가장 극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다. 물론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도박을 즐기는 민족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 번 도박의 늪에 빠진 후 패가망신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이나 비율에서는 타민족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성인 중 20%가 도박을 즐기고 이중 20%가 중독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의 결과대로라면 전체 성인의 4%가 도박중독인 셈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본국의 한인들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1998년 강원랜드가 개장된 이후 비로서 일반인들의 카지노 출입이 허용됐지만 이미 1930년대부터 라스베가스를 중심으로 대규모 카지노장들이 도박이 합법화된 미국에서는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도박에 빠질 수 있는 환경이 일찍부터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합법적인 도박시설이 더 심각

하지만 시간과 거리상의 이유 때문에 먼 거리에 있는 카지노들로 인해 도박에 중독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합법 또는 불법적인 도박공간들이다. 본국에서도 강원랜드 개장 이후 연예인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거액의 돈을 탕진했지만 도박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것은 합법의 탈을 쓰고 운영되는 실내경마장, 경륜장, 성인오락실 등 무수한 도박공간들이 생겨나면서부터다.

불법적인 도박은 숨어서 해야 한다는 속성상 일부 중독자들만이 음성적으로 빠져들지만 합법화된 도박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쉽게 도박에 빠져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마사회가 국민들이 건전한 여가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했다는 경마장은 원래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사행심과 한탕주의를 조장하는 합법적인 공간이 된지 오래다. 특히 과천경마장 외에 전국적으로 32곳이 존재하는 화상경마장은 시간의 제약없이 자신의 거주지에서 쉽게 경마에 빠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피해사례가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마사회의 작년 매출 5조원 중 70%인 3조 5천억원 이상이 화상경마장에서 올려진 것이라고 하니 이곳을 찾는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매일 100억 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온 셈이다. 이처럼 정선카지노나 최근 붐을 일으키는 실내경마, 경륜장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일반인들에 파고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집과 직장을 잃고 가정까지 파탄나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 애틀랜타에도 50개 이상의 성인오락기계 운영 중

마찬가지로 애틀랜타에도 곳곳에 존재하는 성인용 오락기계로 인해 적게는 수천 달러에서 많게는 수십만 달러까지 탕진했다는 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뷰포드와 둘루스 곳곳에 자리잡은 다방, 당구장, 만화가게, PC방, 카페, 싸우나 등에는 적게는 2-3대 많게는 10여 대의 성인오락기계들이 운영 중이다.

한인 사회 전체에 최소 50개에서 100개 가까운 성인용 오락기계들이 설치되어 있는 셈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오락기계들은 원래 주인이 따로 있고 한인업주들은 기계주인과 계약을 맺어 수익금을 5:5, 6:4, 또는 7:3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분배한다.

원래 조지아법상 카지노 이외의 각종 성인용 오락시설은 현찰 대신 상품권으로 상금을 지불하도록 되어있으나 대부분의 한인업소들을 비롯해 주류사회에서도 현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타인종들은 주유소나 바에 설치된 오락기계들을 재미삼아 소액을 투자해 배팅하는 반면 한인들은 한탕을 노리고 거액을 배팅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사례가 늘고있는 실정이다.

일단 지역경찰은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오락기계를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는 이상 단속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다만 이 시설이용자들이 피해사례를 신고했을 경우 개별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다. 지난 월요일 한인이 운영하는 만화가게의 오락기계에서 5만 달러 정도를 잃었다는 피해자의 신고에 의한 수사가 단적인 예에 속한다.

한인 A씨는 “평소 친분관계를 유지하다 최근 금전관계로 사이가 틀어진 이 업소주인을 신고했다”고 주장했다. A씨의 신고를 받은 귀넷경찰이 이 업소를 급습했을 때 업주 B씨는 자리를 비운 상태여서 6대의 오락기계와 수천 달러의 현금, 오락기계를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상영해주던 포르노비디오 등을 압수하고 말았지만 업주에 대한 차후 처벌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씨는 “이 만화가게 뿐만 아니라 다른 업소에서도 15만 달러 정도의 돈을 잃었다”면서 “필요하다면 불법도박 근절을 위해 불법적으로 오락기계를 운영하는 업소들을 신고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A씨에 의해 신고를 당해 오락기계와 운영자금 일부를 압수당한 B씨는 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A씨와는 작년 식당개업을 준비하면서 동업관계를 맺었다가 청산한 후 채무관계가 남아있는 상태”라면서 “A가 평소 게임을 즐기는 편으로 다른 업소에서 수만 달러를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 가게에서는 한 번도 게임을 한 적이 없고 5만 달러를 잃었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B씨는 “이번 사건은 A씨가 내게 돌려줘야 할 5만 달러를 갚으라는 요구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자작극”이라면서 “A씨의 허위진술과 내가 받지 못한 5만 달러에 대한 법적 서류와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를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B씨는 불법오락기계 운영에 대해서는 “경위야 어떻든 불법으로 오락기계를 운영한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경찰 당국의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 재미삼아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만에서 수십만 달러 탕진하기도

이 사건에 대해 한인사회 일각에서는 “A씨의 경우와 같이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신고를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현금으로 상금을 지불하는 호객행위에 휘말려 수만 달러를 잃었다 해도 업주가 구속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재미삼아 10-20 달러 정도 가지고 잠깐 동안 게임을 즐기는 거라면 몰라도 일확천금을 노리며 달려들다가는 십중팔구 수천, 수만 달러를 순식간에 탕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힘들여 번 돈을 잃지 않도록 먼저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인사회 소식에 정통한 K모씨는 “주로 백인들이 오락기계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한인업자들과 계약을 통해 제공하는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변호사들을 통해 빠져나올 구멍을 다 마련해놓고 있기 때문에 한 두 건의 신고로 한인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오락기계가 뿌리뽑히기는 힘들다”면서 “중요한 것은 그런 식으로 돈을 벌었다 해도 수익의 일부를 한인사회에 환원하면서 공생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선의의 피해자들이 거액의 돈을 잃게 하고도 대부분의 업주들이 한인사회에 공헌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알려진 대로 한인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성인용 오락기계를 통해 돈을 잃은 사람은 한 두명이 아니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는 사안인 만큼 이용자들의 개별적인 증언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적게는 수천 달러에서 많게는 수십만 달러를 잃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그 피해규모가 만만치 않은 것은 분명하다.

자영업을 하는 20대 청년 C씨의 경우는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PC방과 당구장 등에 설치된 오락기계를 통해 3만 달러의 돈을 잃었다. 웬만한 한인 샐러리맨의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도박으로 잃은 셈이다. 하지만 B씨의 경우는 그나마 피해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한인사회 곳곳에는 B씨보다 열 배 이상의 돈을 잃고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만 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며 취재에 협조하지 않는 상황이라 구체적인 사실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주변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하루에 수천 달러를 잃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이들은 가끔 거액의 상금을 받은 적이 있어 그 재미 때문에 오락기계에 계속 매달리다 결국에는 거액을 탕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뷰포드의 한 당구장 주인은 “최근 이 지역의 오락시설들은 대부분 파리를 날리는 상태로 저녁 11시 이후에나 손님들이 와서 오락기계를 이용하곤 한다”면서 “그나마 이용객들의 기술이 늘어 상금으로 지출되는 돈이 더 많을 때도 있어 요즘은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끔 친구들과 유흥업소를 찾아 재미삼아 오락기계를 이용한다는 C씨 역시 “웬만한 사람들은 큰 돈을 걸지 않고 소액배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내 경우도 하루에 100달러 이상을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주변 친구들을 보면 돈을 잃을수록 배팅액수가 커지고 이용 빈도수가 높아지면서 나중에는 후회할 정도로 큰 액수를 배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재미삼아 오락으로 시작한 게임이 도박으로 발전해 거금을 탕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 최성진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