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5명 입양해 키운 백인 셜리 애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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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5명 입양해 키운 백인 셜리 애인리
  • 미주한국일보
  • 승인 2006.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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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자녀들 “키워준 어머니에게 항상 감사”

   
▲ OC 레지스터지가 소개한 10자녀의 어머니 셜리 애인리와 두 딸 캐린(왼쪽), 카니(오른쪽). 1965년께 촬영한 가족사진 속엔 아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아태문화유산의 달’ 맞아
OC레지스터지 특집 보도

전쟁의 그늘은 벗었지만, 배고픔이란 굴레를 쓰고 있던 1960년대 한국. 5명의 자녀를 두고 있던 OC의 백인 부부는 한국에서 2명의 남자아이와 3명의 여자아이까지 입양해 총 10명의 자녀를 길러냈다.

입양자녀들은 이미 성장해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이혼의 고통도 극복하고 ‘가슴으로 낳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있다.

OC 레지스터지는 1961년부터 5명의 한인을 입양해 키워낸 셜리 애인리(71)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아태 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한인 커뮤니티를 조명하는 특집기사로 실었다.

애인리 가족이 첫 미디어의 조명을 받은 것은 1963년. 레지스터지가 자녀 입양과정에서 비자문제로 당시 대통령 영부인 레이디 버드 존슨에게 편지를 쓴 가족의 이야기를 보도하면서였다.

오렌지에 방 5개의 큰집을 갖고 있던 셜리 애인리와 당시 남편 로버트는 3남2녀의 자식을 낳았지만 1961~1964년 한국에서 5명을 입양해 왔다.

1961년 캐린(한국명 원주연·46·브레아)을 시작으로 카르멘(한국명 강춘옥·45·유타), 카메론(한국명 최태웅·48·시카고), 카니(한국명 김영선·48·요바린다), 클라크(한국명 장인우·49·조지아)가 차례로 애인리의 가족이 됐으며 모두 ‘C’로 시작하는 이름을 얻었다.

지금은 캐린과 카니만이 OC에 남았고 다른 입양 형제들은 타주로 떠났다.

1970년대 초 남편과 이혼 후 10명이나 되는 자식을 건사한 어머니 애인리는 “때론 옛날을 생각할 때 그게 나였는지 믿기 힘들다”며 지난 시간을 추억했다.

5명의 입양아가 한 가정에서 자라나 정신적 고통은 덜했으나 역시 이들도 학교와 가정 밖에서의 이방인을 대하는 듯한 시선은 싸워 이겨나가야 하는 어려움이었다.

캐린은 “항상 ‘너는 누구냐’는 대답에 ‘미국인’이라고 답하면 ‘그게 아니고 어디서 왔냐’는 질문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초기 한인도 거의 없어 한국적 문화를 접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5명의 백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미국인으로 자라났다.

카니는 3년 전 인터넷을 통해 친모와 연결돼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하면서, 또 다른 가족을 찾게 됐다. 뿌리와 정체성을 찾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겐 현재를 있게 한 어머니와 생활환경이 더욱 소중하다.

캐린은 “당시 제3세계 같던 불우한 환경에서 우리를 데려와 희생하며 키워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면서도 “입양이 되지 않았으면 내 삶이 어떨까라는 의문은 항상 따라다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