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사의 한인사회 방문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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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사의 한인사회 방문 후일담
  • 데일리 뉴스
  • 승인 2006.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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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퍼듀 주시사가 애틀랜타의 한인타운이랄 수 있는 뷰포드의 창고식품점을 다녀간 뒤로 말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한인사회의 중요성을 감안한 주지사의 배려에 감읍해하는 모양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떠는 모습이 애틀랜타 한인사회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선거를 코앞에 둔 정치인이라면 표가 있는 곳은 어느 곳이든 달려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주지사가 이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한인사회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할애했다는 사실 자체로 한인사회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자화자찬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가능한 많은 표를 원하는 해당 정치인에게 한인사회가 행사할 수 있는 표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해당정치인이 한인사회에 투자하는 시간과 정성의 질과 양이 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소니 퍼듀 주시사가 창고식품점을 방문한 시간은 길게 잡아야 15분 정도에 불과했다. 15분이라는 시간이 현직 주지사가 10만 명을 바라본다는 한인사회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이라는 점은 그리 억울해하거나 자랑스러워 할 필요도 없는 딱 그만큼인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일 뿐이다. 한인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유권자의 수도 늘어난다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투자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지난 주말 스네빌의 브룩우드 고등학교의 졸업예정자들에게 주지사 관저를 프롬파티 후 올 나이트 파티 장소로 개방했던 퍼듀 주지사는 아내와 함께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이들과 신간을 함께 했다고 한다. 시간이 돈인 사업가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표로 연결되는 직업정치인들은 만나는 사람들의 중요성에 따라 시간을 배분하는 법이다. 그런 만큼 소니 퍼듀 주지사에게 왜 고작 15분 정도의 시간만을 할애했느냐고 따질 필요는 없는 일이고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소니 퍼듀 주지사같은 조지아의 유력 정치인이 한인사회를 방문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소수인종의 목소리를 전달하거나 소수인종에 대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 소니 퍼듀의 창고방문은 그런 기회나 시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일회성 만남이었을 뿐이다. 일부 한인 참석자들은 취재진이 사진 촬영할 때 소니 퍼듀 주지사의 옆에 달라붙어 그와의 친분을 과시하는데 급급했을 뿐 최근의 반이민법 서명에 대한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전달하거나 소수인종에 대한 주지사의 입장을 들을 기회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유력인사들을 만나 사진이나 찍고 친분을 쌓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득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로 인해 한인사회의 위상이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소위 한인사회의 유지라는 사람들의 역할이나 기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인 사회 일각에서는 한인 유지들이 유력인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개인적인 이해타산을 떠나 순수한 마음으로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인지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사적으로 사업상 이익을 위해 유력인사들을 만날 수도 있고 그로 인한 반대급부를 바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인사회를 대표한다는 공적인 입장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면 비판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일이다. 한인사회에 수많은 단체들이 있고 그만큼의 단체장들이 존재하지만 정작 한인사회를 대신해 조지아와 애틀랜타의 유력인사들을 만나고 한인이민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는 소니 퍼듀 주지사가 아니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한인사회를 방문하다 해도 별다른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내실없이 겉치레만 요란한 정치성 행사에 치중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실속있게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함에도 자꾸 눈에 띄는 것은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소인배들 뿐이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 최성진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