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신호범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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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신호범을 기대하며
  • 데일리 뉴스
  • 승인 2006.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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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 뉴스 05/10/2006 ]

애틀랜타 한인사회가 급성장함에 따라 이곳을 찾는 유명 인사들의 발길도 늘어나고 있다. 본국의 유력 정치인들을 비롯해 스포츠 스타나 인기연예인들이 알게 모르게 공적, 사적인 이유로 이곳을 방문하고 그 사실이 가끔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 주말 애틀랜타를 방문했던 신호범 워싱턴 주상원의원도 그런 유명 인사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의원 후원의 밤’에 참석했던 한인 2세들에게 신의원은 단순한 유명인사가 아니라 본받아야 할 모범이자 뛰어넘어야 할 목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이날 자리를 함께 한 한인2세 중 한 명이었던 매튜군은 “5-6년 전 어린이 잡지에 실린 신의원의 이야기를 읽고 감명을 받아 그를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애틀랜타를 방문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에 의해 신의원을 직접 만나러 오게 됐다”면서 “한국인으로서 신의원같이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지난 해 고희를 넘은 신의원의 인생은 영화보다 드라마틱하다. 6세 때 가출해 뒷골목의 깡패 소년으로 전전하던 그는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일하던 중 말일성도 교인이었던 양아버지에 의해 1955년 열 아홉 살의 나이에 미국땅을 밟았다. 부산항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배에 오르면서 “한 맺힌 이 땅을 영원히 밟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던 그는 오직 미국인으로서만 살아가려했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뿌리를 인정하고 이중문화인의 삶을 선택해야 했다. 1950-60년대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을 때 자신을 지탱해줬던 힘은 결국 자신은 한국인이라는 자각과 지지 않겠다는 한국인 특유의 오기였기 때문이다.

“뿌리를 알아야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뿌리를 잃으면 부초처럼 흔들리고 맙니다.” 자신처럼 이중문화권에서 살아가는 한인 2세들에게 신의원은 이처럼 충고한다. 어설프게 몸만 한국인이지 뼈속까지 미국인 흉내내는 한국인도 꼴불견이지만 미국에 와서조차 한국적인 사고방식만을 고집하는 사람도 주변을 불편하는 법이다. 하지만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미국인으로서 신의원의 모습은 두 문화의 조화 속에서 남들이 이루지 못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듯이 보였다. 물론 그가 아무 어려움 없이 그런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던 그는 양아버지 덕에 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 9개월 만에 미국의 검정고시인 GED에 합격했고 브리감 영 대학을 거쳐 피치버그 대학과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각각 석사와 동양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시애틀 소재 쇼어라인 커뮤니 티 대학에서 22년간 역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91년에는 민주당의 지명을 받아 시애틀시 21지역구에서 주하원으로 출마해 주민의 대다수(94%)가 백인인 이 지역에서 3선의 현역 공화당 백인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주하원의원 당선 후 그는 백인과 동양인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을 모두 이롭게 하는 의원활동으로 유권자들의 인정을 받았고 이를 발판으로 연방 하원에 도전했지만 아깝게 패배했다. 이어 워싱턴주 부지사 선거에 재차 출마, 0.4% 차로 역시 석패했다. 하지만 1998년에 다시 주상원의원 선거전에 뛰어들어 시장까지 지낸 거물 우드(Wood) 여사와 맞서 58 대 42로 승리를 거두며 화려하게 정치 일선에 복귀할 수 있었다. 당시 지역 언론들은 ‘우드가 도저히 침몰하지 않는 타이타닉호였다면 폴은 그 배를 침몰시킨 빙산이 됐다(She was unsinkable Titanic. He just became the iceberg)’면서 신의원의 승리를 크게 평가하기도 했다.

이후 무난히 3선 고지에 오른 신의원은 이제 4선고지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도전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지면관계상 짧게 소개한 정치이력 이면에 담긴 수많은 사연들은 그의 자서전 ‘공부 도둑놈, 희망의 선생님’(웅진출판)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아무리 차별을 당해도 자신의 뜻에 의해 미국에 온 1세대는 온갖 어려움을 참을 수 있지 만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의 후손들은 어떡할 것인갚라는 고민 끝에 정계진출을 결심했다는 신의원은 이날 동석한 한인 2세들에게 “스무 살이 다 되어 미국에 온 내가 주상원의원이 됐는데 이곳에서 너희들이 미국 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느냐”는 격려의 말을 남겼다. “한인 동포들 중 자녀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되어 아들을 데리고 왔다“는 매튜군의 아버지 스티브 최 사장(SE다이어몬드)은 역시 그런 생각을 마음에 품었을 것이다.

“별을 세다 보면 꿈을 꾸듯 희망이 생기고 내 자신을 망각한 채 별 속에 서서 별만 셉니다.” ‘별을 세다 별이 되어’란 신의원의 자작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별을 세다 별이 된 신의원의 뒤를 이어 제2, 제3의 신호범이 나오기 위해 한인사회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민자로서 이중문화의 이점을 망각하지 않고 한국과 미국 양 문화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신의원이 던지고 간 화두 중 하나다.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았기에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다는 신의원의 고백처럼 뿌리를 잃지 않되 뿌리에 안주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저 넓은 하늘로 향해 뻗어나가는 나뭇가지처럼 우리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먼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 “내 무덤에 ‘이중문화를 알아 자신을 알았고 세계를 알게 된 사람’이라는 묘비명을 남겨달라”는 신의원의 말이 다시 생각나는 이유다.

   / 최성진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