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타 출신의 돌아온 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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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란타 출신의 돌아온 홍도
  • 데일리 뉴스
  • 승인 200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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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꿈꾸는 맹렬 여성

애틀랜타에 십년 가까이 거주한 사람이라면 지난 1999년 공연됐던 ‘홍도야 울지마라’라는 연극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고등학생(12학년)의 몸으로 홍도역을 맡았던 김은정(미국명 제인)양은 바로 뉴욕대에 진학한 후 연기수업을 받고 배우의 길을 걸었다.

CF와 연속극 출연을 하며 경력을 쌓아가던 은정양은 최근 매트 매후린 감독의 `필(Feel)‘에서 여주인공 수젯역을 맡아 배우로서 도약의 발판을 내딛었다. 촬영을 마치고 오랜만에 맞는 여가를 이용해 부모가 살고 있는 애틀랜타를 방문한 은정양을 본사 사무실에 만났다. 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더욱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진 은정양을 기억하는 애틀랜타 한인들을 위해 그녀의 근황을 자세히 소개한다.<편집자주>

   
▲ 유에스 코리아를 방문한 김은정양이 애틀랜타 한인들의 성원을 부탁하며 밝게 웃는 모습
1981년생인 은정양은 세살 때 뉴욕으로 이민온 후 6살 때부터 애틀랜타에서 자라며 초, 중고등학교를 이곳에서 마쳤다. 어린 시절 이미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던 은정양은 8학년과 11학년 때 각각 ‘미스 조지아 어메리칸 틴’과 ‘미스 틴 조지아’ 대회에 출전해 모두 1위를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당시 시민권자가 아니었던 은정양은 자격이 박탈돼 트로피를 반납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힘들었어요.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요. 미스 틴 유에스에이가 될 수도 있을 거라며 기대가 컸었는데...” 세 살 때부터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또렷한 한국어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은정양은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당해야 했던 예기치 못한 경험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NYU 입학을 통해 본격적인 배우수업 시작

이런 아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은정양은 중학생 때부터 당시 애틀랜타에서 춘추연기학원을 운영하던 문고은씨에게 연기수업을 받으며 장래 배우로서의 꿈을 다져나갔다. ‘홍도야 울지마라’에 출연했던 것도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배우던 은정양을 연극동우회원들이 적극 추천한 덕분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연기에 대한 정열을 갖게 된 은정양은 고교 졸업 후 전세계 영화연극인들이 선망하는 뉴욕대(NYU)에 진학해 본격적인 연기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도 은정양의 존재는 거의 독보적이었다. 아시아계 학생들 대부분이 연출이나 제작 을 전공하는 추세여서 연기를 전공했던 은정양은 일부 중국계 학생들과 더불어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NYU에서 이론과 실기를 겸한 연기수업을 받으며 배우의 길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던 은정양은 대학 3학년 때 미스코리아 뉴욕대표로 선발되면서 한국을 방문했다.

비록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은정양은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을 계기로 1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편입하려 하는 등 한국에서 먼저 배우의 꿈을 이뤄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국대의 한 교수로부터 “남들이 선망하는 NYU를 다니면 그곳에서 배우의 꿈을 이루려 노력해야지 왜 한국의 대학에 편입하려는 생각을 하느냐”는 충고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은정양은 “뉴욕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배우로 자리 잡는다면 금방 세계적인 배우가 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최고의 배우가 된다 해도 세계적인 배우가 되는데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지름길이라 생각했던 한국 연예계 진출이 오히려 멀리 돌아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은정양은 이왕 배우의 길을 고집한 이상 세계적인 배우로 우뚝 서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졸업을 전후해 '로 앤 오더(Law & Order)'나 `가이딩 라이트(Guiding Light)' 등 몇 편의 연속극(Soap opera)에 출연하며 실전경험을 쌓았고 CF에도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메릴 스트립, 미쉘 파이퍼,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가 나의 우상

“메릴 스트립, 미쉘 파이퍼, 안젤리나 졸리 등을 좋아해요. 평범하지 않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로 전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는 그분들처럼 되고 싶어요.” 특히 <화이트 올랜더>(White Oleander, 2002)에서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올랜더 꽃에서 추출한 독약으로 남자친구를 살해하는 잉그리드역의 미쉘 파이퍼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여성판이라 불리는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 1999)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보여준 섬뜻한 내면연기가 인상적이었다는 은정양의 꿈 역시 외모를 무기로 상업적인 영화에서의 성공을 이루기보다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영화에서 깊이있는 내면연기를 펼치는 배우로 자리잡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헐리웃보다는 뉴욕의 예술적 풍토가 더 마음에 들고 그곳에서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더 키워가고 싶다는 것이 은정양의 생각이다. 물론 전세계 영화의 메카라 할 수 있는 헐리웃에 진출해서 상업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작품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필’의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다

작년 겨울 촬영을 시작해 최근 마무리작업을 하고 있는 ‘필(Feel)'은 그래서 은정양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다. 남녀관계의 다양성을 그린 이 영화에서 은정양은 알렉 볼드윈의 동생 윌리엄 볼드윈의 상대역으로 영화 전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수젯역을 맡았다. 영화 초반 부유하지만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그려지는 수젯은 후반으로 가면서 내면의 고민과 감정의 기복을 거듭하며 점차 감춰줬던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다중적인 캐릭터다.

이 영화는 칸이나 토론토 영화제에 출품된 뒤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은정양은 2004년에도 ‘커팅 룸 플로어(Cutting Room Floor)'이라는 독립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필’의 성공 여부가 배우로서의 이후 진로를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영화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은정양은 작년 개봉되어 화제를 모았던 ‘게이샤의 추억(Memories of A Geisha , 2005)’에서 장쯔이가 연기했던 사유리역을 맡을 뻔하기도 했다. 당시 오디션에서 장쯔이와 함께 3명의 최종후보로 선발됐던 은정양은 아쉽게도 미국에서 자라 너무 서구적이라는 배경이 단점으로 작용해 탈락하고 말았지만 언제라도 대작에 캐스팅돼 세계적인 배우로 우뚝 설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래서 처음 주연급으로 출연한 ‘필’의 성공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한인 배우지망생들의 자부심이 되고 싶다

“산드라 오나 김윤진씨처럼 헐리웃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인배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인2세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저 또한 그분들처럼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개척자로서 자리잡고 싶습니다.” 은정양이 처음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던 중학생 시절 한인들 중에 는 그녀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만한 역할모델이 없었다. 그 점이 아쉽지만 자신이라도 배우가 되고 싶다는 후배들에게 ‘본받고 싶고 뒤를 따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성공적인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직까지 인종의 벽이 높은 헐리웃에서 소수인종인 한인들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은정양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미’기 때문에 순간의 성공과 실패에 좌우되지 않고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걷고 싶다”고 말한다. “얼마나 성공했는지 보다는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정양은 성공적인 배우의 길을 걷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우로 살아가는 일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오래 동안 사랑받으며 연기생활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힘든 순간을 극복해왔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어릴 적부터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해보라(Don't give up, try again)"고 격려해준 부모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기도 했다.

이제 은정양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영화의 마무리 작업을 지켜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할 것이다. 당분간 뉴욕에서 기반을 닦으며 전세계 영화인의 메카인 헐리웃의 문을 두드릴 준비를 할 예정이라는 은정양. 그녀에게 “뉴욕이나 헐리웃에서 소수인종이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지만 하늘을 봐야 별을 딸 수 있는 것처럼 은정양이 줄리아 로버츠에 이어 애틀랜타가 낳은 또 한명의 명배우로 성장하길 바라는 애틀랜타 한인들을 기억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정진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최성진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