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챔버오케스트라 첫 한인이사 헬렌 김
상태바
LA 챔버오케스트라 첫 한인이사 헬렌 김
  • 미주한국일보
  • 승인 2006.04.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르고 들어도 좋은게 음악 겁먹지 말고 자주 접하세요”

▲ LA 챔버 헬렌 김이사 하버드·줄리어드 거쳐 예일대 법대로내가 원했던 건 그저 음악을 즐기는 삶피아니스트 꿈 접고 변호사의 길 택해 음악을 사랑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LA 챔버오케스트라(LACO)의 첫 한인 이사가 된 헬렌 김(44·변호사)은 한 때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였다. 1973년 LA 필하모닉이 선정한 ‘학생 스타’로 뽑혀 열한살의 나이로 LA필과 협연했고, 그 해 여름 할리웃보울 모차르트 축제에서 피아노 독주무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녀는 음악 연주가가 아닌 오케스트라 후원자의 삶을 택했다. 피아니스트 출신 변호사 헬렌 김과의 인터뷰는 즐겁고 유익했다. 마음 속 깊숙이 자리한 피아노에 대한 그녀의 열정, 클래식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33년 전에도 한국일보에 났었어요”이 신문은 그녀의 스크랩북 속에 간직돼 있다. ▲ 33년 전 헬렌 김(당시 11세)이 LA필과 협연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한 본보 73년 2월3일자

▲LA 오페라의 스티브 김 이사, LA카운티 뮤지엄(LACMA)의 체스터 장 이사에 이어 주류 문화예술단체의 한인 이사 탄생은 반가운 소식이다. LA 챔버오케스트라를 선택한 이유는?
-변호사가 되기 전 피아니스트의 꿈을 향해 매진한 적이 있었다. 특히 실내악 연주를 좋아했다. 동부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7년 전 LA로 돌아왔다. LA는 내게 고향이고,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안겨준 도시다. LA 클래식 음악계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LACO 이사회에 의사를 표명했다. 이제는 오케스트라 후원이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 방식인 것 같다.

▲하버드 음악학사(1982), 줄리아드 피아노 연주석사(84), 예일대 법대 졸업(87)으로 이어지는 이력이 특이하다. 왜 갑자기 법학으로 진로를 바꿨는지.
-부모님이 피아니스트가 되는 걸 반대해 하버드대를 택했다. 알다시피 하버드는 전문 연주자를 양성하는 과정이 없다. 음악사와 이론 공부가 전부여서 피아노 레슨을 따로 받았다. 당시 레버렛 하우스(기숙사)에 첼리스트 요요마가 레지던트 뮤직 튜더로 있었다는 게 커다란 위안이었다. 갈수록 음악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줄리아드에 진학했다. 줄리아드 생활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프로 뮤지션의 삶에 대한 회의를 품게 했다.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믿음도 부족했다. 단지 내가 원했던 건 음악을 즐기는 삶이었다. 연습하고 연주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풍부하고 예민한 감성이 요구되는 피아니스트와 변호사는 부조화처럼 느껴진다. 변호사가 된 후에도 늘 피아노를 가까이 하는지.
-변호사, 풀타임 아내, 어머니의 역할을 하다보니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에 쏟을 여력이 없다. 과거 삶의 전부라 생각했던 쇼팽과 모차르트, 베토벤 음악을 듣는 정도다. 딸 레베카가 콜번스쿨 6학년인데 피아노를 전공한다. 사실 딸이 피아노 연습을 할 때는 정말 괴롭다. 음감이 발달했고 듣는 귀가 있다는 게 행복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웃음) 재미나는 건 지난번 한미변호사협회 모임에 갔더니, 같은 테이블에 앉은 변호사들 중 비올라, 바이얼린 전공자들이 꽤 있더라는 것이다.

▲LA 챔버오케스트라 이사로 한인 커뮤니티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다음달 6∼7일 UCLA 로이스홀에서 열리는 20시간에 걸친 LACO 챔버뮤직 마라톤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음악회다. 티켓도 12달러로 저렴하다. 가끔씩 자녀들과 함께 음악회를 찾는 한인들을 만날 때면, 알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해진다. 음악을 전공하는 한인 학생들은 굉장히 많지만, 그에 비해 음악을 들으러 가거나 음악가를 후원하는 사람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훌륭한 음악이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들어도 좋은 것 아닌가. 겁내지 않고 음악을 접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면 좋겠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부탁이 있다. UCLA 인근 거주 한인들 중에서 챔버뮤직 마라톤에 참여하는 바이얼리니스트 김지연과 레이첼 이에게 숙박을 제공하고 싶은 가정이 있으면 연락해 주길 바란다.

<하은선 기자>eunseonha@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