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외동포와 서울의 택시
상태바
[시론] 재외동포와 서울의 택시
  • 박채순
  • 승인 2006.04.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사회는 그 변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해외에서 거주하다 귀국한 재외동포에게는 여러 가지로 변한 한국의 사회현상을 따라잡는 데 애를 먹는다.

예전에 서울에는 택시 합승 제도가 있었다. 택시기사가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손님을 위해 먼저 탄 손님의 양해를 구한 후에 뒤에 탄 손님을 동승시킨 제도다. 30년 전에는 서울에 총알택시도 있었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광화문 등 도심에서 강남이나 성남 등 변두리로의 귀가 길엔 총알처럼 질주하는 택시에 의지하곤 하였다.

그 시절 잡기 어려운 택시를 잡기 위해서 경매장의 경매사들처럼 두서너 배의 요금도 마다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가격을 흥정하는 경쟁의 장이었다. 더구나 통행금지가 있었던 때는 방범이나 경찰을 피하여 피해서 곡예를 부려야만 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서 태어나 언어와 풍속을 잘 몰랐던 한인2세인 로베르토 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 친구가 김포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가자고 했는데, 공항에서 호텔로 가던 택시 기사가 고속도로 중간에서 길을 멈추고는 손짓을 한 길가던 손님과 무어라고 속삭이더니, 건장한 체구의 남자를 기사 옆 좌석에 태우더라는 것이다.

또 조금 가더니 손을 든 다른 남자와 무어라고 이야기를 한 후, 이제는 그 남자를 자기의 바로 옆자리에 앉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친구, “내가 외국사람 같아서 이 사람들이 나에게 강도짓을 할 모양이구나.”라는 생각이 미치자, 두 가방을 양손에 움켜쥔 채 달리는 택시의 문을 열고 차에서 뛰어 내렸다고 한다.

한국 택시의 합승제도에 아는 것이 없었던 그 친구는 하마터면 공항도로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택시는 합승을 하지 않는다. 승객에 비해서 택시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 몇 사람이 가든지 한번 타면 목적지까지 그냥 간다. 택시 합승은 생각해 보지도 못하는 일이다..

택시 기사가 손님을 속이거나 위협을 가해서 소지품을 빼앗는다는 소식은 가끔 있으며, 택시기사도 되도록이면 앞좌석에는 손님을 잘 태우지 않는다. 권총의 소지가 가능한 승객이 가까이에서 기사에게 위협을 하고 강도짓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긴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엔 서울의 택시 제도가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 어디선가 감쪽같이 달려와 그들이 잡은 택시를 가로채어갔던 날쌘 서울 사람들, 낯선 많은 승객들을 합승시켜 빙빙 돌아서 가거나, 적당한 손님을 태우기 위해서 바쁜 사람 잡아두고서 서성되던 합승택시, 총알처럼 달려가는 위험천만했던 택시 기사 등.

옛날에 재외동포에게 낯설었던 이러한 택시에 관한 풍경이 이제는 서울에서는 볼 수가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물정 모르는 로베르토 김 등 한인 2세들이 한국을 찾아도 하이웨이를 달리는 택시에서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또한 서울거리 어디서나 손님에 깍듯하게 친절을 베푸는 빈 택시가 많아서 치열한 옛날의 택시잡기 전쟁모습이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변화는 비단 서울의 택시모습만이 아니다. 고국을 찾은 동포들은 한국의 자연과 인심이 바뀌어서 더 이상 옛날의 한국이 아니라고 낯설어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외국으로 떠났을 때의 한국의 사회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생각한다. 본인들이 밖으로 나갔을 당시와 견주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쳐 전반적으로 달라진 한국사회를 대하고 당황하기 일쑤이다.

유독 변하지 않은 것은 본인들이 가진 한국에 대한 애착과 아련한 그때의 기억뿐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