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화가 최귀암씨 조난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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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화가 최귀암씨 조난死
  • 캐나다 한국일보
  • 승인 2006.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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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밴쿠버 그라우스山 등반 중

   
▲ 고 최귀암 화백
(밴쿠버) 토론토에 거주하다 산이 좋아 밴쿠버로 이주했던 중견작가 최귀암(52) 화백이 등반길에 유명을 달리했다.

연방경찰(RCMP)에 따르면 최 화백은 지난 11일(토) 오전 10시30분 그라우스 마운틴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선 뒤 실종, 하루 만인 12일 오전 9시경 구조대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최씨는 이날 혼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행에 나섰으며 오후 4시경 귀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후 늦게까지도 귀가하지 않자 가족들은 오후 10시 실종신고를 했다.

노스쇼어 구조대와 코퀴틀람 구조대, 연방경찰 등 30여 명은 구조견을 동원해 밤새도록 수색작업을 펼쳤으며 동틀 무렵에는 열감지기를 장착한 항공기까지 동원한 끝에 드리프티 크릭으로 알려진 300m의 60도 경사지역에서 시신을 찾아냈다.

 노스밴쿠버 마이크 핸니 경찰은 "평소에 건강이 좋았던 최씨는 산행 경험이 많으며 스노우 신발 등 완벽한 산행 장비들을 갖췄던 점으로 볼 때 이날 산행 중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후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듯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조대 측은 가파른 얼음지대에서는 겨울 산행용 아이젠이 장착된 등산화 등 장비를 철저히 갖추고 로프를 몸에 묶은 채 해야 하지만 최씨는 얕은 아이젠이 달린 산행 신발을 착용하고 있었다고 밝히고, 나무숲이 가려진 빙판 슬로프를 걸어 내려가다 추락, 뇌진탕으로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2000년 9월 제23회 BC미술전 최우수창작상 수상으로 캐나다 화단에서 주목받는 화가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밴쿠버선과 CBC뉴스 등 캐나다 언론도 '국제작품전을 갖는 등 지역사회의 유명화가'라고 표현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고인이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12일 오전 잠시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시간을 갖는 등 희망을 가졌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최씨의 친지는 14일 오전 본보와의 통화에서 "유족들은 갑자기 당한 슬픔에 쌓여 탈진 상태에 있다"고 전했다. 

 생전에 "밴쿠버 산이 좋아서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이주했다"던 고인은 지금 가고 없지만 교민사회는 지금 고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캐나다한인미술인협회 전임회장인 장주희씨는 "지난해 토론토에서 열린 아트엑스포에서 유리와 그림을 조화시킨 작품으로 많은 호응을 받았다"며 "올 3월에도 참가하겠다고 말했는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의 갑작스런 사고 소식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비보를 접하고 한동안 충격을 받았다"는 밴쿠버의 황택구 화백은 "의욕적인 작품활동을 하며 수시로 전시회를 여는 등 미술인들에게 여러모로 모범을 보였다"고 술회했다. 오유순 밴쿠버한인장학회 이사장은 "'사고 당일 오전 집을 떠나기 전 아내에게 오믈렛을 만들어주고 떠날 만큼 가정적인 가장이었다"며 슬퍼했다. 

 밴쿠버한인산우회는 고인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4월1일 오전 10시 최 화백의 49제를 맞아 그라우스 마운틴의 추모산행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고인의 포트무디 자택에는 빈소가 마련돼 있으며 장례식은 16일(목) 오전 10시30분 써리의 밸리뷰공원묘지(14660-72nd Ave.)에서 열린다. 

 유가족으로는 약사이며 약국을 경영하는 부인 최은선씨와 두 딸(아람·보람)이 있다. 아람(21)양은 사이먼프레이저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스를 공부하며 보람(17)양은 내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술을 전공할 계획이다. 

 54년 충무 출생인 최씨는 휘문고를 졸업, 고려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다 75년 가족과 함께 토론토로 이주한 후 80년 온타리오예술대학(OCAD)을 졸업했다. 96년 BC주 포트무디로 이주, 밴쿠버와 토론토, 한국, 미국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유리·한지·문짝 등 재활용 소재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그의 작품은 차갑고 단단단하면서도 빛과 그림자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유리의 특성과 부드러운 질감의 한지를 캐버스와 패널에 조화시킨 것으로 기업과 도서관·공공건물 등에 전시도 되고 있다. 

 박두운 기자 [dwayne@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