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당시 재일동포 양민학살추도회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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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당시 재일동포 양민학살추도회 열어
  • 연합뉴스
  • 승인 2006.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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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연합뉴스) 이기승 기자 = 제주4.3사건 당시 군.경의 초토화작전으로 주민 피해가 커지자 일본에서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이 모여 마을별로 양민학살 추도회를 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무라카미 나오코(츠다주쿠대 대학원 박사과정, 국제관계 전공)씨가 발표한 '프란게 문고 내의 재일조선인 발행 신문에 나타난 제주4.3인식' 논문에서 밝혀졌다.

   이 논문은 제주4.3연구소가 24일 펴낸 '4.3과 역사'책자에 실렸는데 고향 주민들의 학살피해를 접하고 재일동포들이 양민 학살에 반대하고 추도회를 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의 4.3사건에 대한 인식을 연구하고 있는 무라카미씨는 논문에서 48년부터 49년 10월께까지 재일동포들이 발행한 27개신문이 모두 400여건 이상의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고 분석했다.

   재일조선인이 발행한 신문이 4.3사건을 보도한 것은 48년 4월7일이 처음이고 '제주도에서 선거반대 대폭동 발생'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정보'와 '조선특신'이 보도했고 남한에서는 이 보다 하루 앞선 4월6일에 4.3사건을 보도했다.

   또 토벌대의 초토화작전 기간인 48년 11월 중순부터 49년 10월말까지 남한에서는 4.3사건이 보도되지 않았으나 일본에서는 제주도 상황이 보도됐다.

   무라카미씨는 재일조선인이 발행한 신문들이 ▲군.경의 초토화 전술로 인한 민간인 학살 피해 상황 ▲이승만 정부가 제주도에 선포한 계엄령하에 전개됐던 작전에 대한 비판 ▲ 제주도 인민의 무장 항쟁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고 밝혔다.

   논문은 제주도에서 양민 학살이 자행된다는 소식이 일본에 알려지면서 제주 출신 집단거주지역인 오사카 이쿠노에서 49년 1월3일 재판(在阪) 제주도대정면친목회가 인민학살반대추도회를 열었고 이를 시작으로 화북, 조천, 북촌, 신촌, 함덕, 한림, 삼양 등 순으로 마을단위 추도회가 열렸다.

   이어 49년 2월1일에는 재판(在阪) 구좌면친목회가 오사카 이마자토에서 추도회를 열었고 도쿄 아라카와에서도 같은 해 5월29일 애월면 고내리청년단 주최로 300여명의 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추도회가 열린 것으로 보도됐다.

   또 49년 4월25일에는 재일 제주읍 이호리 출신들이 오사카 이쿠노에서 이호리친목회 결성대회를 열고 폐허가 된 고향 재건사업에 힘을 모으기로 결의했다.

   무라카미씨는 "일본에서의 4.3사건 관련 기사는 외신이 대부분이었고 남한발 외신과 평양발 방송 및 통신이 이용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일조선인 발행 신문은 당시 남한 내부의 4.3사건 보도와는 내용이 달랐다"면서 "당시 게재한 기사 내용과 제목을 통해 각 신문의 4.3에 대한 인식과 경향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프란게 문고(Dr.Prange C0llection)'는 연합군총사령부가 일본에서 검열제도를 실시한 45년 9월부터 같은 해 10월말에 수집된 방대한 간행물로 잡지.신문.통신 등이 포함됐고 프란게 박사가 미국 메릴랜드대학에 보관한 자료들이다.

   l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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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01/24  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