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광장/마지막 손을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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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광장/마지막 손을 흔들며
  • 김동열
  • 승인 200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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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과학계의 주목과 대한민국 국민의 애증 속에 줄기세포 진위 공방이 숨바꼭질을 거듭하고 있다. 진실은 정녕 하나일터인데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진실게임을 보자니, 비 내리는 12월의 끝자락이 더욱 허전하고 쓸쓸하다.

대국민적 상처를 입으며, 지난 한 해도 우리는 절묘한 색깔로 한 폭의 수를 놓았다. 억울하고 손해도 봤으며 창피하고 슬펐던 일들은 잿빛으로,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했던 시간은 꽃 분홍 연 보라 연두빛깔에다 금빛 은빛으로 출렁일 것이다.

한해만큼의 오색찬란한 무늬로 열심히 살았지만 어쩐지 이맘때가 되면 늘 후회가 앞선다.

대나무가 꼿꼿하게 잘 자라는 이유는 맵고 끊는 매듭을 잘 짓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는 질책대신, 열심히 사느라 수고한 자신들을 위로하고 칭찬으로 매듭지으며 새 출발을 하면 어떨까. 그만하면 잘 했어, 다 괜찮아.

선데이 교차로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 3년 반이 흘렀다. 변수 많은 삶의 소용돌이 속에, 저마다 한 줄기 희망을 붙들고 행복 하고자 애쓰는 나를 포함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썼다. 글이 아니었다면 계절의 순환을 경이로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고 들풀 하나 꽃 한 송이에 마음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별과 하늘에 의미를 두었고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스한 눈길을 보낸 귀한 시간이었다. 추억 속 시간을 드나들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살았다. 두 나라 사람들을 두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외로우며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간의 고독과 슬픔, 사랑을 가까이서 보았고, 받은 사랑보다 주지 못한 사랑으로 아파하며 죽어간 사람들도 보았다. 그들은 내게 진정한 사랑은 고통 속에 있으며 사랑은 순환한다는 믿음을 주었다. 사랑을 받은 대상은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고, 이웃과 사회를 통해 결국은 내게 되돌아올 것을 굳게 믿게 했다. 서로에게 베푼 사랑은 바로 보상은 되지 않아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며, 사랑과 용서만이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도 글을 쓰며 얻은 깨우침이다.

글을 고치고 다듬으며, 구부려지! 려는 내 마음부터 피고 두들기는 시간이 힘들긴 했지만 축복의 시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해되고, 과거와 화해하며 마음속에 조용히 내리는 평안을 여러 번 맛보았다.

마음껏 생각의 장을 펼치도록 믿어 준 선데이 교차로에서 지면을 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로 커뮤니티에 눈과 귀가 되어, 교포 매개체로서 매주 사명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나도 약속을 어기기 어려웠다. 재미가 없으면 메시지가 있고, 그도 저도 아니면 정보라도 하나 건네려 노력했지만 얼마큼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3년 반을 꾸준히 읽어주고 격려하며 호흡을 불어넣어 준 주위의 사랑은 큰 힘이었다. 나의 짧은 글 한 줄이 누구에겐가 희망이 되었다면 큰 보람이고, 작은 위로가 되었거나 팍팍한 삶에 잠시잠깐 작은 미소라도 짓게 했다면 다행이라 하겠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가는 2005년과 함께 나도 이제 작별의 손을 흔들려한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원고 마감시간이라는 이유로 놀러 온 친구를 문전 박대했으며 전화를 매몰차게 끊기도 했다. 때로는 밥상을 제대로 차리지 않았으며 비즈니스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책상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매주 글쓰기를 멈추지 못했던 이유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조용히 나를 만나는 시간이 좋아서였다. 글의 소중함과 함께 읽는 이들도 그러하기를 소원하며, 보지 못한 사람에 대한 소중함도 가지게 됐다.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늘 말상대가 되어 주었던 독자들의 얼굴들을 고마운 마음으로 그려본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자니, 마지막보다 더 슬픈 말을 알지 못한다는 시인이 말이 생각나 금방 슬퍼진다. 시간에 금을 긋고 새로운 시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보라고, 새해가 병술 년 새 이름으로 오고 있다.

누구든 늙고 누구든 같은 시간이 주어지는 공평한 세상을 거짓 없는 눈으로 바라보면 감사뿐이다. 나의 글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충만한 꿈이 이루어지는 새해가 되기를 소원한다.
‘운명은 있되 정해진 운명은 없다’는 희망의 말을 전하며, 훗날 더 익고 좀 더 훈훈한 글로 여러분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김영란 컬럼니스트 1229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