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산업화 발맞춰 지면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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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산업화 발맞춰 지면혁신
  • 하얼빈=김용필
  • 승인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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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언론 현황취재-중국] 주요 동포신문사들 생존 전략짜기

▲ 연길 시내에 위치한 연변일보사 사옥 전경. 건물 위쪽에 연변일보라는 큰 글자가 보인다. 건물의 왼쪽 부분은 기존건물에 붙인 것으로 최근에 신축했다. 12월4일 이른 아침 중국 동포언론 취재팀이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 하지만 폭설로 심양하늘까지 갔다가 항공기가 회항해 연길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날 오후 6시였다. 연길공항과 연길시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이며 중국동포 85만이 거주한다는 생각에 연길시는 처음 방문하는 한국인에게 낯설지가 않았다. 공항으로 취재진을 마중나온 박민자 회장(전 연변여성 총편)은 조선족사회가 겪어온 역사를 들려주었다. 그중 조선족사회의 상징 인물이 된 정판룡 교수와 소설가 김학철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조선족사회를 이해하려면 이 두 분의 삶을 이해해야 합니다. 정판룡 교수가 원칙주의와 실용주의를 겸해 중국사회에서 소수민족이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면, 김학철 선생은 혹독한 문화혁명기 때도 ‘꺾일지언정 휠 수 없다’는 강직한 정신으로 조선족의 자존심을 지킨 어른이죠.” 박회장은 “김학철 선생님같은 분이 계셨기에 그나마 조선족이 한국사회에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학철선생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조선족의 노신”이라는 평을 받는다는 말도 들었다. 중국조선족, 13억 인구속의 200만 소수민족으로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기 전부터 오늘날 중국이 있기까지 중심과 변두리를 오가며 정체성을 지켜온 민족이다. 바로 그러한 자취가 연길 곳곳에 숨쉬고 있었다. 연길에는 조선족의 3대 자랑거리로 통하는 연변대학 연변텔레비존방송국 연변가무단이 있고, 신문으로는 연변일보가 있다. 연변은 한국소식에 늘 가까이 있었다. 집집마다 위성방송을 설치해 한국방송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연변의 동포들은 한국소식을 서울처럼 접할 수 있어 오히려 현지 방송이나 신문보다 한국방송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족 언론출판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6일 방문한 연변조선족자치주신문잡지출판국의 방용선 국장은 “연변은 문화의 고향이라 할 만큼 신문 잡지가 많이 발행된 곳이지만, 한국의 영향으로 인구가 줄고 당연히 독자가 줄어드니까 신문과 잡지발행부수도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연변일보는 85명의 기자를 둔 대규모 신문사지만 발행량이 5000부를 밑돌고, 월간지 연변여성은 94년 최고 4만8000부 이상을 발행하다 현재 2000부라는 것, 방용선 국장은 “독자층이 농촌에 많았는데 한국 등 해외로 나가고 도시로 이동하고 또 학력이 높아져 중문을 선호하는 독자층이 늘어나 조선어로 된 신문과 잡지를 보는 독자층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 연길 시내 신문 가판대의 모습. 연변일보에서 펴내는 종합신문과 가정보건등 한글 제호의 신문이 눈에 띈다.
6일 밤 비행기로 도착한 장춘, 600만 인구에 조선족 8만명, 한국인 5000여명 정도가 현재 거주하는 곳, 원래 조선족은 2만명 정도가 거주했지만 최근 농촌에서 이주해오는 조선족이 늘고, 한국인 중에는 노년을 편하게 살고자 오는 생활 이민자가 는다는 사실, 독일의 폭스바겐 자동차회사와 제휴한 중국 최대 제1자동차회사가 있는 공업도시로 한국기업으로는 금호타이어가 들어왔다.

한정일 길림신문 주임(편집국장)은 “장춘은 대학이 많고 교수로 조선족 인재만도 200여명이나 되며, 성급 조선족지도자들이 모여산다”고 소개한다.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리규광 회장은 “장춘시에는 조선족이 비교적 집중되어 있고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면서 조선족문화센터 기능을 할 수 있는 ‘장춘조선족문화빌딩’ 설립계획에 대해서도 설명해 인상깊었다.

장춘에서 기차로 3시간 30분을 가면 하얼빈에 도착한다. 흑룡강성의 성도인 하얼빈은 동북3성에서 가장 큰 북방도시, 안중근의사의 활동이 있었고, 731부대가 있다. 흑룡강성은 석탄, 석유, 황금, 물자원이 풍부한 곳이고 또 얼음이 많아 12월이면 빈등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한국기업의 진출이 저조한 흑룡강성의 조선족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흑룡강신문의 이진상 사장은 “동북3성 중에서도 흑룡강성에 한국진출기업이 늦은 이유가 국유기업이 많아 개방이 늦어지고 또 대기업이 들어와야한다는 환경적조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사장은 “흑룡강 발전을 위해 흑룡강신문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진상 사장이 갖고 있는 흑룡강신문 발전전략이다. 독자를 잃어버릴 위기에 놓인 흑룡강신문은 일찌기 한국인과 조선족이 몰려드는 청도, 상해 등 연해지역에 눈을 돌려 지역판을 발행하고 전국지를 선언하고 나왔다. 게다가 흑룡강성에 한국기업의 투자를 끌어드릴 목적으로 인터넷사이트를 새롭게 만들고 한국에 해외판을 낼 계획까지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