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능력은 곧 국가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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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능력은 곧 국가경쟁력”
  • 강성봉 편집위원장
  • 승인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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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국립국어연구원장 남기심

정부의 직제개편을 통해 ‘국립국어연구원’이 ‘국립국어원’으로 기관 이름을 바꾸고 문화관광부 국어정책과로부터 국어 정책 기능을 이관 받아 명실상부한 국가 어문 정책의 중심 기관으로 거듭난 지 만 1년이 지났다. 국립국어원은 또한 최근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문법1·2> 두권을 펴내기도 했고 시민과 함께 우리말 순화운동을 펼치기 위해 홈페이지(www.malteo.net)를 개설하기도 했다. 이처럼 활발한 국어원의 활동의 중심에는 50여년간 국어를 연구해온 국어학자이며 국어원을 4년째 이끌어온 남기심 원장이 있다. 올해말로 임기를 마치는 남기심 원장을 본지 강성봉 편집위원장이 만났다. <편집자주>

-정부의 직제개편을 통해 ‘국립국어연구원’이 ‘국립국어원’으로 바뀌었는데요, 이렇게 이름이 바뀐 이유는 뭔가요? “그걸 이해하려면 먼저 국어 연구와 국어 정책 수행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 개념이 확실해야 합니다. 국어 연구는, 마치 자연과학이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연구를 하듯이, 국어를 연구 대상으로 해서 탐구하는 거예요. 자연과학과 다를 것이 없어요. 그런데 국어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이거든요. 사회활동, 지식습득, 문화향상, 사회통합 등 우리 삶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핵심적인 기본 도구예요. 국어 정책은 사회생활의 기본 도구로서의 국어를 관리하고, 바르고 풍부하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행정입니다. 국어를 바르게 쓸 줄 알아야 갈등이 없는 사회를 이룰 수 있고, 국민 각자의 국어 능력이 좋아야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따라서 기술 향상력, 노동의 질 같은 것도 좋아지겠지요” 이렇게 되도록 계획을 세워서 시행하는 것이 국어 정책이에요. 국립국어연구원이 국립국어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이러한 기능이 강화되었다는 뜻입니다.” -아, 국어에 그런 기능이 있군요. 흥미로운데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써서 그렇지, 언어는 우리의 생각의 틀을 결정하기도 해요. 내가 문제 하나 내 볼까요” 강성봉 위원장은 100㎞라고 하면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느낌이 와요?” -물론이죠.“난 안 와요.(웃음) 옛날 사람이라서 아직도 백리, 2백리라고 해야 느낌이 오지요. 미국에 가면 백마일, 2백마일 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 안 돼요. 우리는 ‘리’나 ‘㎞’로 거리 개념이 박혔기 때문이에요. 이런 게 '말'이지요. 말은 이렇게 우리의 개념을 고정해 버리는 힘이 있어요. 한 번 개념화되면 바꿔지지 않아요. 번역을 해야지요. 말은 이렇게 우리의 생각, 사고방식을 지배해요.” -왜 국어연구원이 아니라 국어원이라야 하는지 이제 짐작이 좀 됩니다. 국어를 그저 연구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통합적인 측면으로 보면서 뭔가 좀 더…“언어의 사회적 기능을 큰 틀로 봐야 한다는 거죠. 국어원에서 하는 일은 언어와 사회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나, 언어와 사회심리, 언어와 문화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느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국가권력을 가지고 국어 정책을 세워서 시행하는 것이지요.” -이제 국어원으로 이름이 바뀐 이유가 선명해집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평생 국어를 연구만 해온 사람들에게 쉽지 않겠습니다. “그래요. 내가 대학에서 하던 국어 연구와는 많이 달라요. 행정하는 입장에서 언어와 사회가 어떻게 어울려 돌아가느냐 하는 것을 봐야 해요.” -정책 기능이 사회 흐름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겠군요. 그러면 국어 정책은 어떤 틀을 가지고 세우나요? “국어 정책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의 국어 사용 실태 조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회 계층별, 직업별, 연령별 등에 따른 어휘력, 표현력, 언어습관 등에 대한 실태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파악하여 정책을 세워야지요. 사회언어학, 문화학, 심리언어학 등 응용언어학적 이론과 연구에 근거해야 하는데 국내에는 이 방향에 종사하는 인력이 없는 것이 좀 문제라고 하겠지요.” -네, 하지만 일반인들은 국어정책은 곧 표준어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국어정책은 맞춤법이 다인 것처럼 생각되는 걸까요? “국어 정책은 왜정 때, 탄압받던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국어사전을 만들기로 하고, 1933년에 맞춤법 통일안, 1937년 표준말을 만든 것이 시작입니다. 옛날엔 표준어가 정말 필요했어요, 그때는 방언 차이가 얼마나 심했는지 내가 대구에 교수로 갔을 때만 해도 학생이 질문하는 걸 알아들을 수 없더라구요. ‘잘 가입시더’ 하길래 ‘같이 갑시다’ 하는 말인 줄 알았더니 잘 가라는 말이더군(웃음). 서울 안에서도 마포 말, 왕십리 말이 달랐어요. 그 왜 ‘~걸랑’ 하는 말 있지요. 얼마 전 텔리비전 드라마에서 어떤 배우가 하던 말. 그게 아마 왕십리 쪽 사투리지요. 그뿐 아니라 당시에는 상류, 하류의 사회계급이 있어서 계급에 따라 말이 달랐구요. 한글 표기는 사람마다 제각각이었고. 그래서 이쪽에만 힘을 쏟았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생긴 거지요.” -그런 차이가 어느 시기까지 지속됐나요? “의무교육이 되면서 없어졌지요. 왜정 때 국어운동 하던 분들은 언젠가 나라를 찾을 것이라고 앞을 내다보고 미래의 시민사회를 위한 표준말, 맞춤법을 만든 셈입니다. 오늘의 국어 정책은 그 전통을 이은 거예요.” -그러면, 그 때 잡혔던 틀이 아직도 유지되는 것이 국어정책은 곧 맞춤법이라는 인식을 가져온 건가요? “말하자면 그래요. 아까 말했듯이 그 당시에는 그게 필요했어요. 하지만 너무 오래 그것만 하다보니 국어 정책이 바로 맞춤법인 양 되어버린 거지요. 그래서 내가 국어원에 처음 왔을 때까지도 그런 것만 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국어의 문제가 그게 다가 아니잖습니까” 어휘력이나 독해력 등 국민들의 국어능력을 키우는 문제도 아주 중요한 문제지요.” -맞춤법이나 표준어를 넘어서 국어능력으로까지 정책을 확장하면 국어원 입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나요? “먼저 전국적 규모의 국어사용 실태 조사를 해야 해요. 그에 근거해 무엇을 향상시키고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그걸 학교나 사회 교육에 반영케 하고.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해야지요. 이게 진짜 국어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 국어연구원은 한국어 교육의 기본 방향을 정하고, 관계법안, 제도를 정비하고, 이론을 개발하는 등의 총괄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남기심 원장.
-이제 한국어 보급 이야기를 해 보죠. 한국어가 전세계에서 13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국어에 관해 총괄적 책임을 지고 있는 국어원의 활동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재외동포는 물론 외국인들에게 한국, 한국문화,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켜 한국어 보급에 절호의 기회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국어원은 전세계에 한국어의 보급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한국어 교육의 기본 방향을 정하고, 관계법안, 제도를 정비하고, 이론을 개발하는 등의 총괄적 지원을 하는 거예요. 한국어 교사 자격 검증 제도를 만들고,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을 출판한다든가 하는 것도 그런 일 중의 하나입니다.”

-아, 그럼 표준 한국어 문법책이 나오는 건가요? “벌써 나왔지요. 최근에 발간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문법1, 2>가 그거예요. 그동안 일본인, 미국인 등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국어원에서 여러 해에 걸쳐 개발한 겁니다. 우리말이라고 아무나 무작정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정해진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을 가진 사람이 가르쳐야죠. 이번에 나온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문법1, 2>는 한국인에게는 자연스럽지만 외국인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사항도 다 언어적 문법적 원리를 밝혀 찾아보기 쉽게 정리했기 때문에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배울 때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이 책은 여러 나라 말로도 번역할 겁니다. 이미 월남과 태국에는 번역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습니다.”

-한국어문법 책을 각 나라 언어로 번역한다니, 생각보다 국어원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군요. 그런데 2백만 동포가 있는 미국을 제치고 왜 동남아인가요? “이번에 한 바퀴 돌아보고 동남아가 급하다고 생각했죠. 한국에 결혼해서 살러 오는 여성들, 동남아에서 오는 노동자들도 많은데 말이 안 통하니 인권 문제도 있고... 미국 같은 곳은 재외동포재단 같은 데서 지원도 하고 있고, 형편이 좀 낫잖아요. (웃음)”

-국어원에서는 또 전 세계 재외 동포 교육을 위한 ‘표준 한국어 교육과정 정비 사업’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국어기본법이 만들어졌고, 그에 입각해서 커리큘럼을 개발해서 각 대학의 한국어교육과에서 한국어 교사를 양성할 겁니다. 그게 표준 한국어 교육과정입니다.

이전에는 시험에만 합격하고 일정 조건만 충족되면 한국어교사로 인증해 주었지만 이제는 이런 교육과정을 거쳐야 인증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표준 문법 정비 사업 결과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1, 2>도 나왔고 하니 일차 사업은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죠.”

-그렇군요. 여쭤볼 것은 많지만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외동포신문 독자와 재외동포 관련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재외동포에게는 한국어 교육 자료가 더 급할 겁니다. 우선은 이번에 나온 책으로 만족하시고, 앞으로 더 좋은 책을 만들어 한류 등 한국 문화를 전할 방법을 찾겠습니다.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등 해외 사업을 하시는 분들께서는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재미난 한국 관련 책을 그 나라 말로 만들어서 배포하면 좋겠어요.

우리 역사상의 재미있는 사건들, 전설, 민담 등 쉽고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책 말이에요. 그러면 한국을 알고 싶어하고 한국말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요. 그게 한국어 교육이나 한류 확산을 돕는 길이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희도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국어원도 정책기관으로서 계속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정리=이명신기자 mslee@ee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