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도량이 보통을 넘는 속 깊은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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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도량이 보통을 넘는 속 깊은 외교관
  • 김동열
  • 승인 2005.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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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강영미 영사 '제2회 발로 뛰는 영사상’후보로 추천
주말마다 산호세, 새크라멘토, 뉴왁, 유타주, 프레즈노 지역으로 순회영사 떠나
마지막 기대 걸고 찾아오는 총영사관, 이민생활에 의지할 곳 되었으면

전세계 129개의 공관에 약 400명의 영사들이 근무하고 있고 외국 근무 외교관의 절반에 이른다. SF 총영사관(총영사 정상기)은 동포사회의 길흉사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는 영사들의 노고를 기리자는 뜻에서 재외동포신문사(사장 이형모)가 제정한 ‘제2회 발로 뛰는 영사상’후보에 강영미(36세) 민원 담당 영사를 추천했다.

나를 드러내면 꼬이는 곳

그는 자신이 후보로 추천됐다는 말에 쑥쓰러워 했다.
"주말이면 산호세, 새크라멘토, 뉴왁, 유타주, 프레즈노 지역으로 순회영사를 다니다 보니 그런 영예가 온 것 같습니다."
먼 지역으로 떠난 순회영사 출장에서 지역민들이 반갑게 맞아줄 때마다 마음이 따사로워진다.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영사로서의 업무가 때로는 힘들고 지치지만 남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사는 이민생활의 고단함이 그 시간만큼은 느껴지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이 강영사의 속깊은 마음이다.
그가 관장하고 있는 업무는 여권 비자 발급, 영사확인(위임장, 병역, 국적상실, 호적 등) 등의 대민 업무. 바로 총영사관의 체감온도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민원실의 친절도에 따라 지역민들이 고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무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잘되면 내 덕이고 잘못되면 관 탓을 할 수도 예민한 곳이라 법의 적용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하는 곳이다. 일의 성격이 그러하니 나 하나 잘 드러내겠다고 나서기 시작하면 꼬이는 곳이다. 몸을 낮추어 일을 처리해야 하고 때때로 되고 안되고의 엄격함을 보여야 하는 곳이다.
"민원실 스태프 모두 경력이 오래되어 업무를 잘 처리해주시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어요. 근래 총영사관이 더 친절해졌다는 기사가 지역신문에 여러번 실린 것처럼 그분들의 노고가 큽니다."
젊은 영사의 마음 도량이 보통을 넘는다.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업무

그는 오전 8시 30분에 1층 민원실 옆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외교통상부 웹사이트에 접속해 동향을 체크한 후 10시부터 10시 30분까지 비자결제를 한다. 수시로 민원실 업무가 밀리지 않는지를 체크하며 민원실 동정을 주시한다. 리셉션리스트가 바쁘면 대신 리셉션리스트가 되어 밀려오는 전화를 받고 민원 업무나 방문자 리스트 작성법을 도와주기도 한다.
"전화를 늦게 받으면 불평의 목소리가 먼저 터져 나오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전화를 우선적으로 받으려고 합니다."
영사가 이렇게 세세한 데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이 알까 싶다.
그는 민원실에서 작성되어 오는 여권 결제를 수시로 한다.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공관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오후에 다시 비자 여권 결제를 하고 영사확인 결제 등을 하며 본국에서 내려온 보고서와 총영사에게 보고할 문서 등을 작성한다.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그가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 업무다. 가끔은 자신의 입장만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사람도 있어 논리정연하게 설명해야 할 때도 있고, 단호한 입장도 보여야 할 때도 있다.

내가 만든 가족의 소중함 깨달으며

또 본국에서 결혼한 후 이곳에 협의이혼하려는 사람들을 만나 진위로 이혼 의사를 묻고 이혼 확인을 해주어야 한다.
"결혼한지 몇 년 안된 제가 50대 부부 앞에서 결혼할 때는 여러 절차를 거쳤지만 이혼 절차는 짧다. 정말 이혼하시겠느냐고 묻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 일을 통해서 자신이 선택한 가족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들이 되었다.
그는 사실 이곳이 초임 해외 근무지다. 숙대 사학과 89학번인 그는 7급 외무행정직 공채에 합격하여 99년 외교통상부에 입부했다. 외교통상부 러시아과, 외교안보연구원에 근무하다가 영국 런던대 1년 연수만에 정치외교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국제연합과에 근무하다가 2004년 8월 SF총영사관에 발령받았다.
초임지가 남들이 모두 가고 싶어하는 샌프란시스코라 자신도 너무 설레였다는 것. "마치 천국에 오는 느낌이었어요."
단 하나의 가족인 남편에게 하루의 일과에서 벌어진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며 이곳의 사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마음 따뜻한 영사 되고파

"저는 여러 특혜를 받고 있는 사람인데도 가끔씩 벽에 부딪힐 때가 있어요. 그러니 타국에서 사는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나와요."
그래서 가족을 찾아달라거나 수사권이 없는 총영사관에 사기사건 용의자를 잡아달라거나 하는 민원 호소가 들어오면 딱히 좋은 해결책이 없어 마음을 태운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찾아오는 곳이 총영사관이기 때문이다.
몇달 전 미 경찰국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산책 도중 길을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드린 적이 있다. 이렇게 낯선 땅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당하는 막막함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어떻게 도움을 드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는 정상기 총영사가 늘 영사들에게 강조하는 말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하려고 한다. "어떤 행사에 참석하셔도 일반 동포들에게 총영사입니다라며 먼저 두손을 잡고 인사하시는 총영사님을 뵈면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함 뒤에는 포용과 겸손, 덕과 선을 잘 실행해야 하는 더 큰 가치들이 그들의 자리에 더 요구된다는 말인 듯싶다.
지난 10여년 동안 해외출국자가 10배나 늘어 영사 업무가 급격히 늘어났음에도 그만큼의 증원이 이뤄지지 않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주인공 윤재희 외무관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
"대체로 영사 임기는 3년입니다. 이제 1년 반이 지났으니 중간 점검시기에 돌입했네요. 남은 기간 동안 후회스럽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는 다시 결제할 서류가 쌓인 책상 앞에 앉았다. 어느 조직이나 기관이나 성실한 사람 하나가 진정한 헌혈자임을 오늘도 강영미 영사를
통해 확인했다.
(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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