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 2,3세 정치인 많이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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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 2,3세 정치인 많이 키워야”
  • 이혜경기자
  • 승인 2005.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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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호범 미 워싱턴주 상원부의장

“언제나 생존의 절박함으로 열심히 살았다. 나에겐 위기가 기회였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던 신호범(70·미국명 폴신) 워싱턴주 상원부의장이 지난 25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낙원동 크라운 호텔에서 양일간 열린 (사)해외교포문제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교포정책 포럼’에 참석차 고국을 방문했다.

신의원은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모국과 재외동포는 ‘이빨과 잇몸’의 관계”라며 “동포사회의 미래가 모국의 미래와 강한 연계성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지난 1935년 경기도 파주시 금촌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가 네 살 때 돌아가신 후 아버지마저 행방불명되자 거리를 떠돌다 미군부대에서 허드렛일을 거드는 하우스보이가 됐다. 그후 미군 군의관 폴 대위의 입양아로 5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학업을 시작하려 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중학교 입학이 거절되자 독학으로 대학입학 자격을 따낸 후 브리검영대학에 입학하고 이후 피츠버그대와 워싱턴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메릴랜드대와 하와이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정계에 진출, 최초의 아시아계 하원의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꿈꿔 왔던 워싱턴주 상원의원까지 올랐다.

신의원은 “어린시절 교실 유리창 밖에서 도둑 공부를 하면서 선생님의 꿈을 꾸었고, 이십 년이 지난 후 선생이 되었다”고 회고하며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며, 위대한 꿈이 위대한 일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고국에 돌아와 수소문 끝에 생부를 찾은 그는 이복동생 다섯을 낳고 어렵게 살고 있던 아버지를 만나고 74년부터 동생들을 차례로 데려다 미국에서 교육시켰다. 그는 “양아버지가 준 교훈의 첫 열매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의 회복이었다”며 “미국문화와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난 후 부모 형제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모국과 재외동포는 ‘이와 잇몸’관계”

클린턴 행정부 시절 주한 미국대사 후보로 추천됐을 때 국무부 면접에서 미국과 한국이 싸우면 누구 편을 들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나를 키웠고 가족을 준 미국은 아버지의 나라이며 내게 생명을 준 한국은 어머니의 나라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면 누구 편을 들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신의원은 “군복무 시절 동료들과 함께 식당을 갔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사건이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며 “언젠가 이런 차별과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교포 2, 3세를 훌륭한 정치인으로 키우고 더불어 미국내 14만명에 이르는 한국 입양아들을 위한 일을 큰 사랑을 갖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교포정책포럼의 후원인 재외동포재단(이광규 이사장)은 이번 방문을 맞추어 그의 자서전 ‘사랑하며 섬기며’를 발간하고 포럼 참석자들과 함께하는 조촐한 축하자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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