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뒤늦게 어미구실 하겠다니
상태바
[칼럼] 뒤늦게 어미구실 하겠다니
  • 남혜경 동북아평화연대
  • 승인 2005.11.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1월8일, 한명숙 의원(열린우리당) 주최로 열린 ‘사할린동포 영주귀국과 정착지원을 위한 특별법안 입법 공청회’에서 한 의원은 “자식이 밖에서 맞고 들어왔으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자식의 상처부터 치유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한국정부를 원망한 사할린동포의 말을 인용했다.

한의원은 더이상 일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모국으로서 도리를 해야되지 않겠느냐며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해방을 맞이한지 60년, 사할린 동포들이 귀환청구소송을 제기한지 30년. 자식이 어미의 관심을 끄는데 이렇게 긴 세월이 걸린 것이다. 자식이 밖에서 죽도록 얻어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싸우고 있는데도 부모는 집안 살림이 바쁘다, 당사자들끼리 해결해라면서 방치해 온 꼴이다.

물설고 낯설은 이국만리 동토의 땅에 좋아서 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가난 때문에 부모형제를 대신해 몸 값을 치르러 끌려 간 자식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주권을 찾고도 60년이 되도록 이들을 부담스러워하면서 방치해 왔다. 뒤늦게나마 애미 노릇을 하겠다고 나서니 반가울 뿐이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엔 답답함과 초조함이 가시질 않는다.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는 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해도 영주귀국 실현까지는 적어도 2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법 시행까지 과연 몇분이나 생존할까? 또 다행이 목숨을 유지한다고 해도 제발로 반세기만에 조국땅을 걸어보지도 못하고 방안의 천정 만 바라보다 돌아가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며칠전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적으로 끌려와 중노동과 온갖 인권침해를 겪어온 소록도 국립병원의 한센인들을 만나보고 왔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보상청구재판에 대한 취재에 동행을 하게 되었던 것인데 10월25일 재판관은 정부측의 손을 들어주었고 80세를 넘긴 100여명의 고령 원고들은 억울함에 떨고 계셨다.

한센인 자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명호씨는 이 재판을 지켜보기위해 1주일간 일본 출장을 다녀와 보니 그 사이에 벌써 원고 세분이 돌아가셨다며 이들의 연령을 생각해 앞으로는 법정투쟁이 아닌 정치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문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입법 과정 중에 시기적 긴급성에 대한 정부측의 관심과 이해를 끌어내어 고령의 1세들을 하루라도 빨리 영주귀국 시킬 수 있는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또 한가지는 형평성 문제다. 위 법안은 돌아오는 자와 남는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사할린 잔류를 희망하는 1세들과 그 유가족들에게는  한국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겠다 했다.

그런데 형평성을 고려해야 할 또 한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고향에 두고온 처자식 곁으로 가기 위해 독신을 고집하다 일찍이 세상을 뜬 분들의 한국가족들이다. 한국 가족들은 생사확인도 못한 채 가난과 싸우며 남편 없는 설움, 애비없는 설움, 빨갱이 가족들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아가며 살아왔다.

같은 운명으로 이들을 대변하던 중소이산가족회의 이두훈 회장은 어려운 협회 살림 꾸리기에 교통사고까지 겹쳐 지금은 바깥 출입도 못하고 병석에 누워 있다. 이제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사람도 없다. 일본정부도 모른척 한다. 한일조약으로 국내거주자들에 대한 보상책임은 청산되었다는 것이다.

이산가족회에 등록된 회원가족수는 500여 가정. 이들은 본격 조치가 시행되기도 전에 잊혀져 가고 있다. 사할린 동포 실태조사에는 이들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며 이들에 대한 구제책 또한 잔류자나 유가족들 못지 않게 고려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