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락’ 받은 재외동포법, 굴욕사대 외교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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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락’ 받은 재외동포법, 굴욕사대 외교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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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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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왕래 허락했던 재외동포법 수정한 외교부, 자국법 제정에 외국 자문 구했다?
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국내법 제정을 위해 외국의 수락을 받으면 이 법은 국내법일까, 국제법일까. ‘재외동포의 법적지위에 관한 특례법’(이하 재외동포법) 제정 문제로 논란이 거셌던 1998년 당시,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가 국내법인 재외동포법 제정을 앞두고 중국과 미국 정부에게 사전 승인을 받는 등 굴욕외교를 펼쳤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가 국내 입법 사안을 외국 정부에 의견조회하면서 오히려 중국의 강한 반발을 이끌어내는 등 ‘외교마찰’을 불러온 장본인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그 결과 재외동포법은 애초 취지와 달리 중국과 러시아 동포를 재외동포 범주에서 제외한 채 제정돼, 동포와 시민단체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01년 11월에는 헌법재판소가 이 법을 놓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2004년 3월 비로소 재중동포 등도 법적으로 재외동포가 됐다. “국내법, 외국 ‘수락’ 받아야 제정 가능?”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중국동포 인권침해 중단 촉구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자유왕래, 동포사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입수한 자료인 1998년 11월7일 박상천 전 법무부장관 명의의 ‘재외동포특례법 관련 활동보고’에 따르면 “중국정부는 법무부 장관의 수정 제안을 수락하기로 하였음”이라고 나와 있다. 또 자료에는 “재외동포특례법과 관련 중국은 여러 차례에 걸쳐 관심사항을 한국에 제시하였고, 한국이 충분히 유의하여 주었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료대로면 우리 정부가 국내법 입안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수락’을 받은 셈인 것. 애초 시민사회단체와 학계는 재외동포의 자유로운 왕래를 허용하는 등의 최초 법안을 요구했지만 외교부는 중국과 미국의 입김’을 구실로 무마시켰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 자료는 그 동안의 의혹을 증명하는 내용이기도 하다는 것이 관련 단체와 권영길 의원실의 분석이다.

법무부의 재외동포법 최초 법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재외동포의 이중국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에서 자유왕래, 참정권, 공직취임권 허용 등의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법안은 외교부의 반대에 부딪쳤고 이후 외교부가 중국과 미국에 법안 관련 의견조회를 수 차례 하면서 ‘외교마찰’이 현실화됐다. 이에 법무부는 법안 수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고 중국 정부의 ‘수락’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비화된 것.

실제로 국내의 재외동포법과 관련한 주변국의 반발을 유도하는 듯한 외교부의 이 같은 모습은 미국 국무성 정책과장이 11월 4일 주미한국대사관 김 아무개 총영사의 방문을 3차례 받은 후 11월5일 김총영사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외국이 국내입법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일반적으로 외국의 입법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한국정부의 거듭된 요청에 답하기 위해 코멘트를 제공한다”고 전제하면서 미국의 입장을 간단히 밝히고 있다.

처음부터 미국은 우리나라의 재외동포법 입안 관련해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으나 김총영사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관련 입장표명을 했다는 의미다. 이에 외교부가 미국으로부터 의도적인 반박의사, 즉 외교마찰을 유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권영길 의원의 주장이다.

“중국의 조선족 인식, 우리나라에 대한 내정간섭”

정부 부처인 법무부와 시민단체 등에서도 국내법을 만드는 데 타국에 법안 관련 문의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1998년 법 제정 당시 한 법무부 관계자는 “국내법 제정에 있어서 법안 단계에서 외교부가 대사관 등 내부 조직을 통해서 다른 나라의 의견을 묻고 그에 따라 법안을 조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외교마찰 때문에 재외동포법을 반대하던 외교부가 오히려 외교마찰을 촉발시킨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미국, 러시아와 달리 중국이 조선족 문제를 외교문제로 끌고 나온 것 역시 외교 관례를 깬 행동이다”며 “모국이 해외 동포들에게 비자를 주느냐의 여부는 해당 주권국가의 권리이기 때문에 타국인 중국에서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배덕호 지구촌동포청년연대 대표집행위원은 “이번에 드러난 보고 문서는 그 동안 추측만 무성했던 외교부의 굴욕적인 사대외교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며 “재외동포 자유왕래 및 취업보장을 위한 제도개선 논의가 최근 법무부에서 다시 이뤄지고 있듯이 조선족 동포 등을 대상으로 한 관련법규의 대폭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배 위원은 또 “외교부가 그간 주장해온 외교마찰 논리는 1999년 재외동포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며 “외교부가 외교마찰 사례로 들고 있는 헝가리 재외동포처의 ‘인접국에 거주하는 헝가리인에 관한 법률’은 오히려 헝가리가 주변국 루마니아와 슬로바키아와 법 이행 동의 협정을 끌어낸 좋은 사례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선족들 한국인 사기피해 가두시위.[사진=연합뉴스]

“외교마찰 해결 위해 외교관 있는 것 아닌갚

이구홍 해외교포문제연구소장은 “외교마찰의 해결을 위해 외교관을 두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중국과의 외교마찰이 우려된다면 주욱화교화인화예 정책이나 화교사무위원회의 예를들면서 우리도 조선족 동포들에게 꼭 필요한 한국어학교 등을 지원하는 것일 뿐이라고 충분히 설명하면 된다”며 답답해 했다.

권영길 의원은 “중국의 동북공정 등으로 인한 외교마찰에서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대처했듯이 일제 강점기하 중국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후손들의 동포지위가 보장이 안 된다면 이 역시 양보해서는 안 된다”며 “지난 재외동포법은 우리 민족 역사상 최악의 반민족적 입법이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재외동포기본법 발의를 앞두고 있는 권의원은 “외교마찰이 염려돼 외국에 입법 내용까지 문의하는 외교부가 ‘고구려 연구재단’ 설립은 왜 안 물어봤는지 모르겠다”며 “외교부는 대한민국의 동포문제를 국익 극대화 차원에서 재정립해야 하고 이를 위해 동포 관련 법안을 재정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교부 “상식적으로 법안 유출은 있을 수 없는 일”

이 같은 주장들에 대해 외교부는 재외동포법 제정 당시 주변국에 법안 유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허진 재외국민이주과장은 “외교문제로 비화될 것 같아 각국 재외공관에 훈령을 내리고 접촉해 알아본 사실이 있는 것으로는 확인됐다”면서 “하지만 이는 관례적인 정보수집차원에서 ‘적의 의중을 떠보는 것’일 뿐 굴욕외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당시 외교부의 외교마찰 논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며 “중국은 좁게는 불법체류자 가운데 한족에 비해 조선족 우대를 문제삼고 있고, 넓게는 통일 이후 조선족의 한반도 편입은 전쟁을 통해서라도 막겠다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998년 재외동포법 제정 관련 논의 당시 우리 정부가 소극적이긴 했다”며 “현재는 외교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친(親)동포적인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한편 재외동포법 제정 당시 외교부의 한 관계자도 “주변국의 항의를 미리 예상하고 반박논리를 우리도 준비했을 뿐 법안 유출을 없었다”며 “주변국들도 국내 신문 등을 통해 알고 반대의견을 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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