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이상의 제자 소프라노 윤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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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이상의 제자 소프라노 윤인숙
  • 연합뉴스
  • 승인 2005.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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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10주기 맞아 내달 추모음악제 열어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마음으로 하는 추모음악회를 열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의 영혼이라도 와서 위로를 받으실 수 있게요."

소프라노 윤인숙(단국대 초빙교수) 씨가 스승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의 10주기를 맞아 다음달 11일 오후 7시 30분, 23일 오후 5시 장충동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에서 추모음악제를 연다.

   윤씨는 성악 쪽에서는 윤 선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다. 독일서 유학 중이던 1979년 처음 만나 가르침을 받은 뒤 윤 선생이 1995년 베를린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선생을 모셔왔다.

   "10년 새 세상이 많이 변해서 이젠 선생님 곡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죠. 선생님에 대한 재조명도 활발해지고 있고요. 조금만 더 살아계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안타까워요."

   윤씨가 스승을 처음 만난 건 프랑크푸르트 음대에 유학 중이던 1979년 초 가을. 당시 학교가 주최한 독일 현대음악제에서 윤이상의 '가곡'(1972년 작)을 부르기로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음악제가 열리기 전, 곡에 대한 레슨을 받기 위해 교수님들의 주선으로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있던 윤 선생을 프랑크푸르트 음대 교수실에서 처음 만났다.

   윤씨는 교수실 문을 열며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윤인숙 학생이오?"하며 들어오시던 스승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윤씨는 이 일로 뜻하지 않았던 시련을 겪게 된다. 동베를린 간첩사건으로 한국 정부가 윤이상과 관련된 해외의 음악활동까지도 제재를 가하고 있었기 때문.

   "선생님께서 걱정하시며 처음엔 독일 한국대사관의 허락을 받고 노래를 하라 그러시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대사관에 물어보니 윤이상은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작곡가이니 그 사람의 작품을 연주해선 안된다는 겁니다. 아름다운 우리 시조에 곡을 붙여 만든 그 곡이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윤씨는 대사관 직원에게 "사상이 문제가 된다면, 같은 공산권 출신인 쇼팽이나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은 얼마든지 연주하면서 왜 윤이상은 안된다는 거냐"며 따져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술서를 쓰라는 직원의 요구를 거부하고 예정대로 현대음악제에서 스승의 곡을 불렀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윤씨는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다가 출국이 금지돼 졸업도 못한 상황에서 독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만다.

   윤씨는 "당시 그저 음악 밖에 몰랐던, 순진한 학생이었던 내가 그 일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통일, 민족 문제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 때 일이 계기가 돼 윤씨는 이후에도 스승을 도와 남북을 위한 거국적 음악 행사에도 적극 나서게 됐다.

   대표적 행사가 바로 1990년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 통일음악회. 윤 선생이 위원장을 맡았던 이 음악회는 당시 남측 참가단장이었던 황병기를 비롯해 김덕수 사물놀이 등 한국을 비롯한 6개국 재외교포 연주인들이 참가한 대규모 행사였다.

   "선생님께서 판문점 남북합동 음악회를 제의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어 당시에도 망설이셨죠. 하지만 통일 음악회에 한국이 빠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 망설이시는 선생님을 제가 졸랐습니다. 그리곤 베를린에서 북으로 사람을 보내 남측 15명에 대한 초청장을 갖고 오게 했지요."

윤씨는 스승에 대해 "엄격하지만 정이 많고, 한번 결정하면 손해를 보더라도 끝까지 책임지는 성격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음악뿐 아니라 연극, 무용, 건축, 사회 등 내 머리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박식하셨던 분"이라고도 했다.

   죽기 전까지 고향 땅 통영을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모습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 병상에서 '이제는 틀렸다. 고향 가기는 틀렸다. 이제는 모든 희망도 잃었다. 나를 이렇게….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아…'라며 안타까워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지…."

 이번 공연에서는 윤 선생의 작품 중 일제 강점기 설움을 노래한 초기 가곡들과 실내악 곡, 오페라 '심청'의 아리아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추모의 춤과 윤 선생의 육성 및 1990년 범민족 통일 음악회 참가 영상도 선보인다.

   음악제엔 조영방(피아노), 강은일(해금), 유경화(장구.철현금), 허윤정(거문고), 이지영(가야금), 이주희(춤), 남상일(장구), 조영제(장구), 유은선(신시사이저), 신정희(피아노) 등이 함께 출연한다.

   "선생님께서 '내가 만약 고향에 못가면 너라도 대신 가서 통영 앞바다에서 초기 가곡들을 불러다오. 그럼 내가 가서 들을께…'라고 말씀하셨죠. 그 약속을 아직 못지켜 아쉽습니다. 언젠간 꼭 통영 앞바다에서 선생님 곡을 불러 드리고 싶어요."

윤씨는 통영에 못가는 대신 11월 10일 부산 동아대학교, 11월 17일 단국대에서도 추모음악제를 열 예정이다.

   공연문의 ☎02-335-1662.

   yy@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