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아웃사이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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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웃사이더 이야기
  • 박채순
  • 승인 200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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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채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정치학박사
이민생활 중에 현지인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의 하나가 왜 여기에 왔느냐? (Por que vinistes aqui?)였다. 가끔씩 안타깝다는 뜻으로 또는 한심하다는 뜻으로 나에게 질문한다.

20여년의 남미의 이민을 접고 한국으로 영주 귀국하여서도, 또 지겹게 듣는 질문은 “그 좋은 데 그만두고 왜 다시 돌아 왔나?”이다. 몸이 떠난 곳에 마음을 두고 온 나를 다들 눈치 채며 묻는 말이다.

바람 때문이라고 궁색한 대답을 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졌던 모든 것을 팽개치고 떠났다가, 지구 반바퀴를 다시 돌아 빈손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겨울날 두꺼운 옷을 입고 출발한 서울 나들이 때는 비행기 속에서 여름옷으로 바꿔 입어야 하며, 뜨거운 여름의 고국방문엔 두꺼운 외투를 손가방에 넣어와야 하는, 계절과 모든 것이 온통 반대였던 이민 생활이었다.

혹시 동포 중에 누군가가 식당이나 공공 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도, 자기들의 한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 애지 중지하는 애완동물을 식용으로 한다는 한국 소문을 전하는 현지 방송에도, 한국 국회 의사당의 멱살잡이 의원들의 고국 뉴스도, 골프장에서 매너 나쁜 동양인의 이야기에도 늘 가슴 조여야 하는 이민자의 생활이다.

재외동포들은 사람이 살면서 생활하는 일상적인 짐 외에 한국인이라는 멍에를 하나 더 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정치 경제발전에 대하여, 한국의 월드컵 개최와 축구의 4강 진출, 한국 문화의 우수성 등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애국자로 살다가, 한국에 와서는 남미의 후진성, 게으름, 노동자의 데모, 독재와 빈곤 등, 따뜻하게 맞아주고 모든 것을 제공했던 그곳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면 결코 동조를 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이다.

현지인 앞에서는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우리말로 수군거렸지마는, 한국에 와서는 오히려 우리 동포들의 무례와 비인간성에, 다른 언어로 비웃곤 하는 이방인이다.

한국 방문 시에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가는 듯한 택시 기사에게 평소에 하듯이 한국말로 쌍소리를 하다가 몹시 혼이 났다는 친구의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식사하면서 큰 소리로 떠드는 내 동포가 부끄럽지 않으나, 아내와 다정하게 손잡고 걷는 나의 모습은 눈 흘김의 대상이 되며, 꼴불견이라는 젊은이들의 애정의 표시가 나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게만 보인다.

이렇게 이민지에서도 한국에서도 늘 이방인이며, 아웃사이더인 사람에게 재외동포신문에 칼럼을 써 보기를 권유받았다. 천생이 게으르고 재주가 무딘 사람이 생각도 안하고 덜렁 그러마 해놓고는 몹시 후회를 한다.

그러나 밖에서 보고 느꼈던 이상한 것들, 한국에서 느끼는 거북스러운 것들 등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경험, 교민들의 정서와 상이한 국내의 한국인의 생각, 한국에서 살면서 외국인에게 대하는 모습, 한민족의 자산인 세계에 산재한 7백만 재외 동포에 관한 것 등, 이제까지 아주 작은 경험에서 얻은 것들과 한국에서 보고 듣고 생각이 미치는 것에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자 가끔 써보고자 한다.

한국인의 역동성과 지혜, 한국 문화를 갖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한국인의 일원인 아웃사이더가 남미의 현지인에게서 배웠던 인간에 대한 가치와 존엄성의 존중, 자연과 신에 대한 경외를 바탕에 두고, 우리 한민족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당당한 세계인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