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나들이 계획만 짱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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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나들이 계획만 짱짱
  • 내일신문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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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아프리카 등 고전하는 공관은 외면

연초 재외공관장 회의 때 연계 또는 4년1회로 제한해야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국정감사는 한가지 구태 고질병을 앓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 때도 어김없이 이 고질병은 도질 기세다. 20일간의 국정감사 기간 가운데 11일을 해외공관 감사라는 명목으로 의원들이 사실상 외유에 나설 예정이다.

9일 현재 국감 실시계획에 따르면 통일부와 외교부를 관할하는 통외통위는 전체 국감일정 20일 가운데 11일을 재외공관 감사에 쓰기로 했다.

22일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묶어서 다루고, 23일에는 외교통상부, 국제협력단, 국제교류재단, 재외동포재단을 묶어 하룻만에 해치우도록 되어 있다.

주말을 쉰 후 26일 출국해 국감마감을 3일 앞둔 10월6일 귀국한다. 통외통위 국회의원들은 미국을 비롯한 미주, 중·일이 포함된 아주, 영·프·러·독을 다루는 구주, 이집트·아랍에미레이트를 관할하는 아중동 등 총 4개반으로 나눠 재외공관 감사를 실시한다.

통외통위의 국감일정은 한반도정세가 급박하고 근본적으로 큰 문제가 걸려있는 시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13일부터 북핵 4차 6자회담과 남북장관급회담이 동시에 열린다.

지난 1년간 외교통일분야는 한미동맹, 북핵, 쌀협상 등 통상문제를 비롯해 숱한 쟁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에 대한 찬반양론이 들끓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통외통위는 외교통일문제가 냉전에 고착돼 별로 할일이 없던 시대에 짜여진 틀 그대로 국감을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의원회관에서조차 “이렇게 한가하게 일정을 짜도 되는건갚라는 반문이 나올 정도다. 한 야당 초선의원실 보좌관은 “이대로 국감 일정이 확정된다면 부실감사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외통위의 재외공관 감사에 대한 대안은 일찍이 각계에서 제시된 바 있다. 매년 초에 전세계 재외공관장들이 서울에 모여 공관장 회의를 개최할 때에 연계하여 여의도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진행하는 방안이다.

효율성과 집중성은 물론 재외공관의 활동에 대한 국감이 국민들에게 바로 공개되어 공관활동에 대한 국민적 검증도 동시에 받는 장점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현지에 나가 하는 외유성 국감은 국민들의 시선을 벗어난 곳에서 진행됨으로써, 재외공관의 문제점과 애로점을 개선하는 효과가 없었다. 지난해 김선일 피살사건때 재외공관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몰렸던 것은 국민의 눈을 피해 국감이 진행되어온 후유증의 하나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통외통위는 해외공관의 현장을 직접 살펴봄으로써 공관업무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또 현지공관원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도 기대하는 것이라고 외유국감을 옹호한다.

그러나 이번 국감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지역의 공관을 배제하고 외유하기 즐거운 지역에 치중돼 있어 외유국감임을 감추기 어렵다.

우리 군대가 파병돼 있는 이라크 공관이 의원들의 신변안전을 이유로 배제됐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가지 않는다.

2010년 월드컵을 치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기본인프라 구축과 관련해 우리나라 경제에 갈수록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맹주로 부상하고 있어, 일본의 유엔안보리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아프리카 외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라다. 또 아프리카는 새로운 자원외교의 개척지이다.

그런데 통외통위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이집트를 제외하고는 아프리카지역 공관에 대한 감사를 포기했다. 격려성 국감이라 할 때 이런 곳에 파견된 공관이 1차대상이어야 하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9일 현재 의원들은 자신이 방문할 재외공관을 상대로 한 자료목록도 만들지 않았다. 일단 현장에 가 보고 판단하겠다는 즉흥식 국감이 될 공산이 크다.

통외통위 위원들의 이런 비겁한 행태에 대해 의원보좌관들조차 비난이 거세다. 한 고참급 보좌관은 “차라리 남아프리카 지역을 돌면서 현지사정을 보고 2~3명씩 근무하는 소규모 공관을 격려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국감”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부부처의 경우 특별한 쟁점이 없는 산하기관은 2~3년에 한번 국감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에 비해 통외통위 의원들은 매년 꼬박꼬박 외유국감에 나서고 있어 국감을 빙자한 해외나들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